주간 데스크-뻘밭에서 희망을 보자

입력 2003-12-19 11:34:41

오늘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당선된 지 꼭 1주년이 되는 날이다.

노 대통령은 당선 후 기자회견 등을 통해 정치개혁을 화두로 내세웠다.

지금도 개혁을 얘기한다.

그 후 1년. 그러나 정치권은 여전히 별로 바뀐 게 없다.

노 대통령은 며칠전 기자회견 자리에서 현 정치판을 '뻘밭'이라며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 '뻘밭 속에서 펼쳐진 대선 구장'으로 비유했다.

이회창(李會昌) 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을 보고 "착잡하다"며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며 한 말이다.

이회창 개인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면서도 정치환경으로 인해 '오물'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가슴 아파했다.

노 대통령은 "정치구장이라는 데는 잔디구장이 아닌 진 '뻘밭구장'이라 여기 들어오면 사람이 변할 수밖에 없고 누군들 큰 소리칠 처지가 아니다"고도 말했다.

"저 스스로도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느냐. 50보 100보 아니겠느냐"고 누구든 오염될 수밖에 없는 현실정치의 한계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점차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잘 다듬어진 잔디구장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뻘밭' 정치와 '오십보 백보' 논쟁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현실정치에 몸담으면서의 아픈 기억으로, 또 최근의 대선자금문제로 발가벗기워진 정치권을 보면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정치개혁 내지 변화소망을 담고 한 표현이었기에 더욱 가슴에 와 닿는 말이었다.

정치판이 대선자금 회오리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마치 양파 속같이 벗겨도 벗겨도 실체는 나타나지 않고 어느 것이 알맹이인지 끝도 보이지 않는다.

자고나면 수억원에서 수백억원까지 대선 관련 정치자금이 고구마 덩굴에 달린 고구마같이 줄줄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컴컴한 지하주자창에서, 고속도로에서 차떼기를 하고 책처럼 포장해 배달하는 마치 007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정치자금 전달 백태를 접하면서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아예 절망하고 있다.

정치자금이라면 면죄부를 받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명백한 불법행위로 처벌받아야 하며 처벌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여야 가릴 것 없이, '뻘밭'에 발을 깊숙이 담근 채 '50보 100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때묻지 않은 사람들로 여겨지던 대통령 주변의 젊은 386 측근들까지 부패고리의 사슬에 얽혀 줄줄이 쇠고랑을 차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쯤 달라진 정치판의 모습을 보게될지 한심할 뿐이다.

부패방지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정치개혁을 하자는 몸부림도 많다.

그러나 여전히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겉으로는 응하는 체하면서도 저희들끼리 담합해 '안돼'를 외치며 높은 장벽을 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에서 마련한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누더기로 만들고 있는 국회 정치개혁특위다.

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 등으로 정치개혁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지만 기득권을 가진 의원님네(?)들이 이를 외면한 채 자기네들 입맛에 맞게 요리조리 뜯어 맞추고 있는 것이다.

'혹시 이번만은' 했던 국민들의 기대를 산산이 무너뜨리고 있다.

거꾸로 가는 정치개혁 논의

선거구제 등 민감한 현안 문제는 각 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저울질하고 재단하면서 '예비후보자 사전선거운동 기간'과 '의정활동 보고 금지기간' 등 자신들의 밥그릇과 관련된 문제는 철저히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유능한 정치신인들에게 길을 터 주기는커녕 오히려 진입장벽을 높이는 데 혈안이다

돈 안 드는 정치를 위한 개혁 방안도 거꾸로 가고 있다

법안 논의과정에 선관위 관계자의 참석도 막았다고 한다.

이미 내년 4월 총선전의 정치개혁은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염통에 털이 숭숭 난 사람들이나 국회의원 하는 것 아니냐"며 국회의원들을 별종(?) 취급하는 이들이 있다.

거짓말도 잘하고 권모술수에도 능한 사람들이라야만 정치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치인들의 모습이고 자화상이었다.

'낡은 정치 청산'은 노 대통령의 정치모토이기도 하다.

그는 비록 '뻘밭' 속에서 때가 묻기는 했지만 깨끗한 정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도 여전히 강한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도 강조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한다.

올 한해도 끄트머리에 걸려 있다.

내년에는 대통령부터 국민에게 신뢰를 심어주고 정치인들은 남부터 먼저 생각하는 해가 되길 바란다.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정치인이 대접받고 금배지를 달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본다.

'뻘밭'속에서 희망을 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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