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군의 침공 20일만에 조선의 수도 한성이 함락됐다.
개전초기 이 같은 왜군의 파죽지세는 전술상 우위와 조총이라는 개인화기에서 비롯됐다.
왜병들은 100여 년에 걸친 내전을 통해 다양한 전술을 개발했고 잘 훈련돼 있었다.
반면 조선군은 제대로 된 훈련을 거의 받지 못했고 실전경험도 없었다.
특히 양국은 무기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조선군에도 총통류의 화기가 있었으나 주로 여러 사람이 조작하는 화포에 사용했고 개인은 활, 칼, 창을 지녔다.
조선의 개인화기 승자총통은 개인마다 불씨를 지녀야 했고 언제 폭발할지 몰라 계속 목표를 조준하고 있어야 했다.
이에 비해 일본군의 신식 조총은 S자로 구부러진 금속제 도구에 화승을 끼워 방아쇠 역할을 했다.
이 총은 병사가 원하는 순간, 원하는 목표를 향해 사격이 가능했다.
전술에서도 우열이 분명했다.
군대의 배치와 작전에 관한 유성룡의 한탄은 조선군대의 전술이 얼마나 형편없었는가를 보여준다.
'우리 장수들은 전법을 모른다.
활만 쏠 줄 알면 군관으로 삼는다.
군관들은 작전을 세울 생각을 않고 그저 적을 향해 활을 쏘아댈 뿐이다.
진격할 때도 무질서하게 우르르 몰려나갈 뿐이다.
이러니 조금만 형세가 기울어도 병사들은 겁을 먹고 도망가 버린다'.
이에 반해 왜군의 전술은 교묘하다.
적과 부딪히면 전방의 깃발부대는 좌우로 갈라지면서 적군을 포위한다.
조총부대가 앞으로 나와 일시에 조총을 발사한다.
재장전을 위해 조총부대가 뒤로 빠지면 활 부대가 앞으로 나와 쏜다.
조총부대와 활 부대가 번갈아 가며 적을 교란한다.
적의 주력이 무너지거나 적이 혼란에 빠지면 창과 칼로 무장한 보병과 기병이 돌진, 적을 섬멸한다
조·일 양국은 병력 수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일본군은 육군 15만 8천여명에 수군 6만명, 후방군 12만병을 보유했다.
이에 반해 조선은 관군 17만 명에 의병 2만 7천명이 고작이었다.
또 관군은 전국에 흩어진 문서상의 군사일 뿐 실전에 투입된 군사는 극히 적었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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