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고승 열반 모습 다양

입력 2003-12-19 09:16:18

백양사 방장 서옹(西翁) 스님의 좌탈입망(坐脫立亡.앉은 채 열반에 듦)을 계기로 새삼 스님들의 열반 모습에 세인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밝은 황토색 적삼을 입은 채 입적한 서옹 스님은 평소처럼 선정(禪定)에 든 듯했고, 오른발 위로 왼발을 올리고 오른 손바닥위에 왼손을 얹은 채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히고 있었다.

서옹 스님의 스승인 만암 스님도 1957년 좌탈입망한 바 있어 한국 근대 불교사에서 사제가 좌탈입망한 또 하나의 신화로 기록되게 됐다.

국내.외 고승들의 입적 일화는 매우 다양하다.

삶과 죽음의 자유로움을 보여주기 위해 앉아서 이야기 하다가 육신을 벗기도 하고, 서거나 물구나무서서 열반에 들기도 한다.

6.25 전쟁 중 군인들이 작전상 오대산 상원사를 소각하려 하자 한암 스님은 선상(禪床) 위에 단정히 앉아 열반에 들어 끝내 사찰을 지켜냈다.

보조국사는 제자들과의 백문백답을 마친 다음 법상에서 내려와 마루에 앉아 그대로 입적했다.

달마, 혜가를 잇는 3조(祖) 승찬 스님은 법회를 마치고 뜰을 거닐다 나뭇가지를 잡은 채 임종했다.

당나라 등은봉 스님은 "앉거나 서서 돌아간 스님들이 누구냐"고 묻더니 물구나무를 선 채로 입적했다.

혜수 스님은 밀양 표충사에서 스님들과 차를 마시다 "정말 좌탈입망을 할 수 있는 경지까지 갔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다"고 답한 후 찻잔을 손에 든 채 그 자리에서 열반했다.

한국불교학계의 큰별이었던 이기영 박사는 1996년 국제학술세미나장에서 기조연설을 마친 후 선사의 좌탈입망과 같은 자세로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스님들의 다양한 열반의 모습을 정리한 '적멸의 즐거움'을 펴낸 정휴 스님은 "나고 죽음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스러워야 자기의 죽음도 그렇게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가 있다"고 밝혔다.

고승들의 좌탈입망에 대해 의학자들은 고도의 수행과 정신력의 결과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곽정식 경북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고승들이 앉아서 돌아가실 수 있는 것은 굉장한 정신력이라고 본다"며 "기력이 쇠해 죽을 때가 되고 싶으면 눕고 싶은 것이 당연한데 정좌해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은 고도의 정신력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병조 경북대 의대 정신과 교수는 "사람의 뇌 가운데 생리를 관장하는 뇌줄기(brain stem)와 충동 내지 감정의 중추인 번연계가 있는데, 의식으로 통제할 수 없지만 고승의 경우 많은 수행을 통해 뇌줄기와 번연계를 컨트롤하는 능력이 생기는 듯하다"며 "입적할 때 많은 고통이 있겠지만 고통을 참고 좌선하던 자세로 좌탈입망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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