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전업화가의 길

입력 2003-12-18 09:12:00

화가라는 직업은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예술적 감흥을 나타내는 일인데, 화가가 되려면 예술적인 재능을 선천적으로 타고나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후천적인 교육훈련에 의해 세계적인 명성을 거머쥘 수도 있고 그렇게 성공한 예술가들도 많다.

어느 날 사업하는 친구가 작업실을 찾아왔다.

널브러져 있는 그림들을 보면서 대뜸 "신선이 따로 있냐, 그림만 그리고 있으면 무슨 걱정이 있을라고…"라며, 유유자적하는 화가들이 은근히 부럽단다.

지난 외환위기 때 파산이 속출하던 그런 절망 속에서도 화가들은 여유가 있었다고 한다.

왜냐고 묻자 "항상 궁핍을 면치 못하는 게 화가들의 삶이었는데 IMF라 해서 더 나빠질 것이 없다"고 했으니, 이처럼 전업화가의 길이란 멀고도 고달프다.

실상이 이러하다 보니 대다수의 예비화가들이 미술을 전공하고도 일찌감치 그림 그리기를 제쳐두고 다른 직업을 선택한다.

생활방편을 도모하지 않으면 남은 꿈마저 보장받기가 어렵다는 절박한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화가가 돈을 밝히면 치열한 작가정신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이상한 논리에 화가들 스스로 미덕이라 여기며 주린 배를 참아왔다.

그나마 팔리는 그림은 저급한 상화로 취급하고, 매매가 없는 작가 역시 실력을 의심받는, 왜곡된 불문율에 얽매여서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화가 뒤에는 제작과정에 도움을 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버티고 있어 맘놓고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몽유도원도'로 유명한 안견은 안평대군의 절대적인 후원을 받았고, 라파엘로는 은행가를 후견인으로 뒀기에 예술가로서의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화가들은 우리의 후손에게 자존심과 부를 갖다줄 문화재를 만들고 있다.

주말에는 화랑에 들러 한집 한 그림 걸기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알고 보면 화랑 문턱은 원래부터 없었다.

남학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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