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핵심부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며'킹 메이커'라 불렸던 허주 김윤환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우연찮게도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흥망성쇠를 근 10년 가까이나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그의 개인 사무실과 같은 빌딩에 작은 집필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YS의 킹메이커로 활약하던 1992년 무렵, 그의 사무실은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빌딩 앞에는 거의 모든 언론사의 보도차량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두 대의 엘리베이터는 최상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엘리베이터 안에서까지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만큼 그의 스케줄은 빡빡한 모양이었다.
YS가 당선되고 문민정부가 출범한 초기만 해도 그의 위상은 흔들리지 않는 듯했지만 조금씩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언론사 차량들이 줄어들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그의 일행들도 이제 두어 명 정도로 단출해져 있었다.
한가해진 탓인지 그는 가끔 마주치는 필자에게까지 농담을 건네오곤 했다.
하지만 1996년 총선무렵이 되자 다시 그의 사무실은 붐비기 시작했다.
그를 둘러싸고 떠들석하게 몰려다니는 풍채 좋은 중장년 사내들의 신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공천을 희망하는 정치지망생들이었다.
낯익은 기자들의 얼굴도 다시 눈에 띄었다.
이런 상황은 1997년 대선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권력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회창씨가 대선에 실패한 이후로 그의 주변은 눈에 띄게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수행비서만을 대동하고 움직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고, 어떤 때는 달랑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상해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호기롭던 그의 인사말도 점점 의례적인 것이 되어갔다.
2000년 총선에서 이회창씨에게 물을 먹은(?) 다음에는 거의 얼굴을 대할 수가 없더니 오래지 않아 사무실을 옮겼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보도를 통해 그의 와병을, 또 죽음을 알게 되었다.
어느 죽음인들 그렇지 않을까만 인생과 권력의 무상함을 절감하게 하는 쓸쓸한 임종이었다고 한다.
명복을 빈다.
보도에 따르면 이회창 전 총재가 병실을 찾은 적이 있다고 한다.
용서를 비는 이회창씨에게 허주는 끝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는데, 그것은 어쩌면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복수였을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이 이제 아무 의미도 없다는 허무한 깨달음이었을까. 일정한 거리를 두고나마 오래 그를 지켜본 관찰자로서 후자 쪽이었으리라고 믿고 싶어진다.
킹메이커로서의 화려한 이력도, 정치판에서 생겨난 모든 은혜와 원한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미 도달했다면 새삼스럽게 누구를 미워할 이유도 없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정객의 죽음이나 초라한 한 노숙자의 죽음이나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게 없으니, 삶은 불평등해도 죽음은 평등하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하지만 다시 눈을 돌리면 우리 정치판은 여전히 아수라장이다.
대선자금이라는 이름의 폭풍이 언제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그치게 될 것인지 짐작도 하기 힘들다.
그 와중에서 여야의 정치인들은 모두 저마다의 살길을 찾아서, 적어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그 모습들이 밉살스럽기보다도 오히려 가련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들에게도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온다.
지금 기울이고 있는 모든 노력과 발버둥질이 아무 의미도 없었다는 결론에 이르는 날이 오고야 만다.
그 때를 생각한다면 좀 더 겸허해지고 솔직해질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최소한 정치를 그만두는 날만이라도 한 번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죽음을, 종말을 의식할 때에만 사상과 철학은 생겨나는 법이다.
그리고 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용기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 죽음과 종말의 시점에 가상으로 자기 자신을 세워보라.가능하면 진실을 은폐하고 축소하고 왜곡하려는 지금의 행태들을 그 시점에서 돌아보라. 우습고 부끄럽고 무의미하지 않은가?허주 김윤환이라는 킹메이커의 죽음 앞에서 한 번쯤 눈을 감고, 자신의 죽음과 종말을 숙연하게 생각해보기를 이땅의 모든 정치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고원정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