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기자가 본 세상이야기-아들낳는 비법

입력 2003-12-16 09:03:39

"9회말 홈런을 쳤군요".

'딸기(딸.기집애의 준말)' 엄마가 아들을 낳고 나니 주변에서 모두들 자신의 일처럼 축하해 주더군요. 120점 엄마라면서요. 아들을 먼저 낳고 딸을 낳으면 80점, 딸 아들은 100점, 딸 딸 아들은 120점이라고 합니다.

결혼해 마누라 눈치보는 아들보다는 부모에게 살갑게 대하는 딸이 낫다는 생각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든든한 아들도 필요하니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리 아들인줄 알고서 셋째를 낳은 걸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좀 놀랐습니다.

태아 성 감별이 법적으로 엄연히 금지돼 있는데도 말입니다.

보통 임신 7, 8개월쯤 되면 "얼굴이 예쁘네요"(딸), "씩씩하게 잘 생겼어요"(아들) 하며 성별을 암시해 주는 의사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출산일이 다 되가도록 아무 소리가 없어 셋째도 딸인 모양이라고 신경쓰시는 시어머니 핑계를 대며 슬쩍 물어보니 의사는 "당연히 알고 있는 줄 알았다"며 의외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기야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빛도 보지 못 하고 낙태되는 여아들이 수두룩한 현실에서 아들인지도 모르고 셋째를 낳을 생각을 했으니 "용감하다"는 얘기를 들을만 한가 봅니다.

딸 둘에 아들을 낳은 이웃집 아주머니는 "아들을 낳기 위해 지운 아이까지 합치면 7명은 될 것"이라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정도였으니까요.

딸기 부모에겐 유혹이 많습니다.

가만히 있는데도 돕겠다고 자청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바로 아들 낳는 비법을 알려주겠다는 것이지요. 이웃집 아주머니는 시기심을 최고로 꼽았습니다.

샘을 많이 내야 아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택시기사 한 분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식이요법을 권했습니다.

"계획없이 아이를 가지면 무조건 실패합니다.

아이를 가지기 몇 달 전부터 여자는 힘들더라도 풀만 먹고 살아야 합니다.

반대로 남자는 고기만 먹어야 합니다".

택시기사는 이른바 알칼리성.산성 체질론에 대해 열변을 토했습니다.

남편이 술.담배를 많이 하면 딸을 낳는다, 남편이 잠자리 전에 진한 커피를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 남편이 사우나를 즐기면 딸을 낳는다, 아들을 낳으려면 남편에게 헐렁한 트렁크 팬티를 입혀라…. 아들을 결정짓는 Y염색체가 알려지면서 아들을 못 낳는 것이 이제는 남자 탓이 돼버린 것 같습니다.

아들 낳는 비법들은 서점가와 인터넷 사이트에도 널려 있습니다.

과학적.의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확률론이지요. 아들 낳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니 안되도 그뿐인 주장인 것 같습니다.

현대판 씨받이 얘기도 한번씩 들려와 놀라게 됩니다.

얼마전 단골 약국에 들렀더니 약사 왈, 아들을 낳아준 대리모가 약국 앞 아파트 한 채를 대가로 받았는데 쉬쉬 해도 소문이 나있다는 겁니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요. 요즘 연말 술자리에서 딸기 아빠들은 "망한 집안"이라며 건배를 한다고 합니다.

정말 시대가 21세기가 맞는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호주제 폐지도 코 앞에 와있는 마당에 과연 아들 콤플렉스는 언제쯤 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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