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부터 67년까지 방영됐던 미국 ABC방송의 TV드라마 '도망자(The Fugitive)'는 대단한 화제작이었다.
저명한 외과의사가 아내 살해범으로 몰려 호송되던 도중 탈출, 집요하게 쫓는 형사를 피해 도망다니면서 직접 진범을 잡아 누명을 벗는다는 실화 소재의 영화였다.
30년이 지난 1993년엔 동명의 영화로 리메이크 돼 빅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체포돼 세상이 떠들썩하다.
9개월만에 드러난 그의 얼굴은 더 이상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자가 아닌, '쥐구멍'속 초라한 도망자의 모습이었다.
미군 군의관이 DNA검사를 위해 입안 세포 채취를 하는 동안 얼이 빠진 듯 멍한 봉두난발의 그 모습에서 24년간의 화려했던 과거는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탈주범 신창원이 2년6개월만에 잡혔을 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던데 후세인도 그런 심정이었을까. 수많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였던 그의 강심장도 두더지처럼 땅 속에 숨어있을땐 콩알만큼 작아졌을 것이다.
"평화란 손(Saone) 강변에서 당신과 함께 마른 소시지와 시골빵을 덥석 깨물어 먹는 동작이 의미있는 일들이 되는 것"이라던 생 텍쥐페리의 글이 그야말로 의미있게 다가온다.
'일상 속의 작은 평화', '내적 평화'야 말로 진정한 평화일거라는 생각과 함께.
밀랍으로 붙인 새의 깃털을 달고 하늘을 날다 가짜날개임을 깜빡 잊고 너무 태양 가까이 다가간 바람에 밀랍이 녹아 죽고만 신화 속의 이카루스. 대선자금 문제로 연일 끓는 죽솥처럼 부글거리는 우리 사회에서 자기 한계를 망각한 탓에 끝없이 추락하는 이카루스들이 줄줄이 꼬리를 무는 광경은 우리를 참담하게 만든다.
종이 반쪽에 그림을 그려 접었다 펴면 똑같은 그림이 반대쪽에 찍히는 데칼코마니(decalcomanie)처럼, 예나 지금이나 꼭같은 사건들이 그치지 않는 이 현실이 우리를 화나게 만든다.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할 줄 아는 거안사위(居安思危)의 지혜를 조금이라도 깨달았더라면 포토라인에서 어색한 표정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받는 유명인사들도 줄어들 터인데…. 한 해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 앞에서 '쫓기지 않는 평화'의 의미를 새삼 돌이켜본다.
전경옥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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