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李會昌) 전 한나라당 총재가 15일 불법 정치자금 문제와 관련, 대국민사과를 한 뒤 검찰에 자진출두했다.
지난 10월 30일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법적 책임을 포함해 모든 책임을 지겠으며, 검찰의 소환요구가 있으면 응하겠다"고 다짐한 뒤 두번째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측근이자 개인후원회 부회장 겸 법률고문을 지낸 서정우(徐廷友) 변호사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고 500억원대의 불법 대선자금 수수가 사실로 드러난 뒤 '이 전 총재가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재차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지난 대선에서 우리 당(한나라당)은 기업으로부터 500억원 가량의 불법 대선자금을 받아 선거에 썼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선승리만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는 심정이 아무리 절박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불법적인 방법을 택한 것은 결코 옳지 않은 일이었다고 깊이 뉘우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전 총재는 "한나라당의 불법대선 자금은 대선후보였던 제가 시켜서 한 일이며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라는 것을 국민 여러분 앞에 고백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이 말은 자신이 직접 대선자금 모금을 지시했다는 뜻이라기보다 당시 대선후보로서 책임통감 차원의 사죄로 풀이됐다.
다만 그가 '검찰에 자진출두하겠다'고 한 말에서 보듯 대선자금과 관련, 일정부분 알고 있는 사항이 있음을 암시한 것으로도 풀이돼 추측을 낳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이날 회견에서 지금까지 한나라당에서 기업들로부터 받은 500억원대의 불법 대선자금을 사전에 인지했는지 여부와 직접 모금과정에 개입했는지, 대선잔금 부분에 대해 뚜렷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아 실망감을 안겼다.
지난 10월 처음 사과 때와 발언 수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선후보이자 최종책임자인 제가 처벌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표현은 불법대선자금과 관련, 한나라당이 현재 처한 현실에 비춰 괴리감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이 전 총재는 "대리인들만 처벌받고 최종책임자는 뒤에 숨은 풍토에서는 결코 대선자금의 어두운 과거가 청산될 수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어두운 과거 청산을 위해' 노 대통령과 여권의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수사를 압박한 것으로 상당한 파장을 낳았다.
일종의 '반격'을 꾀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이 전 총재는 14일 저녁 유승민(劉承旼) 전 여의도연구소장과 이병기(李丙琪), 이종구(李鍾九) 전 특보 등 측근들을 불러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대국민사과 내용에 이 전 총재가 단순히 사죄만 할 것이냐, 아니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곁들일 것이냐를 두고 논란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추가로 뭐가 드러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검찰에 자극을 주는 용어는 쓰지 않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따라 발표내용을 다소 조율했다는 후문이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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