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대구경북본영

입력 2003-12-13 15:54:16

빨간 냄비와 짤랑이는 종소리, 그리고 군대식 제복 차림의 사람들…. 행여 이러한 모습들이 없는 12월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상상만으로도 뭔가가 빠진 듯한 허전함을 느끼지 않는가. 이유는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크리스마스 캐럴과 함께 12월의 차가운 거리를 밝히는 대표적인 풍경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지난 9일 어김없이 자선냄비가 거리에 내걸렸다.

매년 12월이면 귀하고 아름다운 손을 기다리는 빨간 자선냄비와 그 곁에서 사랑을 전파하고 있는 구세군. 이처럼 12월을 밝히는 대표적 풍경이지만 자선냄비의 유래나 구세군에 관한 내용은 일반에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구세군은 자선냄비 사업을 위해 일시적으로 모인 조직쯤으로 여기기 쉽지만 엄연한 기독교의 한 교파다.

사회봉사 활동에 역점을 두고 있는 구세군의 창설목적도 빈민구제다.

추승찬 구세군 대구.경북지방관은 "구세군은 어려운 이웃들을 단순히 도와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데 역점을 둔다"고 말했다.

또 구세군의 특징인 군대의 조직형태를 따 온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 군사로서 사회악에 맞서 복음을 전파하는 단체라는 뜻"이라고 했다.

"자선냄비는 구세군의 대표적인 사회사업입니다.

1891년 미 샌프란시스코의 한 구세군 사관이 성탄절을 맞아 굶주림에 시달리는 1천여명의 도시 빈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안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요. 우리나라는 1928년부터 줄곧 12월의 거리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지요".

하지만 구세군 대구.경북지방본영 관계자들의 표정은 올해도 밝지가 않다.

전국에서 대구.경북지역이 해마다 가장 낮은 모금액 증가치를 기록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 구세군 자선냄비를 통한 지역 모금액은 1억2천여만원. 2001년의 모금액보다 1천만원 정도 증가한 수치지만 이 같은 증가치는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다른 지역 경우 20% 이상의 증가세를 보인 곳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항상 그래왔듯' 지역은 또다시 하위권을 맴돌게 된 셈이다.

"가까운 부산.경남지역만 봐도 구세군 교세는 지역의 절반정도이지만 모금액은 매년 두 배 이상 더 많아요. 지역 경기가 장기간 얼어붙어 있어서 그런지…. 전국 각지를 돌아 다녀봐도 대구처럼 기부를 꺼리는 지역은 없어요. 다른 사람을 한번쯤 생각해볼 줄 아는 시민의식이 필요합니다". 동대구 구세군교회 김영문(44) 사관은 "불모지와도 같은 대구의 기부문화는 보수성에다 나서기 싫어하는 지역민들의 정서 속에 체면중시 문화까지 가세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들은 지역의 낙후된 기부문화를 조금이라도 더 끌어올리기 위해 더욱더 열심이다.

황은자(38.여) 사관은 "자원봉사자 수가 적어 매년 다른 지역보다 늦게 자선냄비가 거리에 나오고, 교대 없이 하루종일 자선냄비 곁을 지키느라 힘들 때가 많다"며 "하지만 어려운 우리 이웃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보람있게 일한다"고 말했다.

"지역 경기가 다들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선냄비에 들어가는 성금은 큰 액수가 아닙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듯 조그만 정성이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이들은 춥고 쓸쓸한 12월을 따뜻하고 정겨운 12월로 바꾸는 사랑의 전령사들이다.

◇구세군 체험기

기자는 10일 오후 대구백화점 앞 구세군 자선냄비 옆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자선의 손길을 호소했다.

마이크로 쉼 없이 목청을 돋우는 김씨 옆에서 종을 흔들며 돈을 넣는 시민들에게 "감사합니다"를 말하는 일에 불과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선냄비에 돈을 넣는 시민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엄마 손을 잡고 돈을 넣는 아이들부터 가던 길을 되돌아와 지갑을 여는 주부까지. 2시간 가량 서있다 보니 이상한 현상이 발견됐다.

돈을 넣는 사람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김씨에게 물어보니 대답이 걸작이다.

"여자가 더 감성적이어서 그럴 겁니다.

게다가 대구 남자들은 체면을 중시해 부끄러워서 자선냄비 근처에도 오지 않지요".

그는 또 "20년 동안 자선냄비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기부가 많은 점과 함께 날씨가 춥고 눈이 오는 날에 성금이 더 많이 모금된다는 것. 또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자선냄비를 철저히 외면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날씨가 추우면 구세군 자원봉사자들이 더 측은하게 보여서 그렇겠지요. 하하하. 눈이 오는 날에는 분위기 때문에 그럴 것이고…. 하지만 부유해 보이는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은 이해가 안돼요. 어려운 사람이 힘든 사정을 더 잘 알아서일까요".

그 날도 김씨의 경험담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더러 좋은 현상들도 있단다.

"1995년을 기점으로 동전이 사라졌어요. 100원짜리 동전이 주류던 것이 1천원짜리 지폐가 대신하게 됐지요. 예전에는 동전 무게 때문에 냄비 들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게다가 모금액도 훨씬 늘어나게 됐고요".

"전국에서 모이는 20여억원이라는 자선냄비 모금액은 어쩌면 적은 돈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구세군 자선냄비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종소리를 듣는 사람에게 어려운 이웃을 한번쯤 생각해보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지요". 그렇게 동성로의 거리는 사랑의 종소리가 점점 퍼지고 있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