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주 민주화항쟁 기념일인 5월 18일, 하루 전일 17일. 기념등반인가. 백두대간 종주 열번째 산행에 나섰다. 세월이 흘러 흘러 벌써 열번째가 되었구나. 열번이란 '악의 축적'이 아니라 '양의 축적'을 이뤘다. 변증법적 철학에 따르면 '양의 축적을 통한 질적 전환'이라는 테마가 있다. 열번이나 산행에 나섰으면 나름대로 '도'나 '물미'가 트일 법도 한데. 콩이 거의 익으면 가을 햇볕에도 콩깍지를 터뜨리는 것처럼.
이헌태, 니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더 느꼈는지, 대자연의 품안에서 인성과 품성은 더 나아졌는지, 더 나아가 생명사상이 더 깊어졌는지 묻고 싶다. 당신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보니 이빨과 구라만 갈수록 늘고 있는 것 같구만. (몸둘 바를 모르며 머리 쓱쓱)
불교의 수행법에 '돈오점수'(頓 悟 漸 修)와 '돈오돈수'(頓 悟 頓 修)가 있다. 전자는 갑자기 깨달은 후에도 점차 수양을 해야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한번의 깨달음으로 수행이 완성되고, 갑자기 깨달은 후에는 수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렴 어때,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깨달아야지. 내가 너무 무식한 소리했나. 굳이 말한다면 백두대간 산행은 '돈오점수'에 해당되지 않을까. 산행이 열번에 이르다보니 그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깨달음을 얻었으나 아직 갈 길이 멀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이때 도중하차하면 어설픈 사꾸라 도사 하나 탄생하는 거지 뭐. 이런 말 해도 되나 모르겠어요. 돈오점수, 돈오돈수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 한문의 '돼지 돈'이 떠올라 돈까스종류인가 생각했어요. 돈까스집 상호명으로 괜찮죠. 아이디어하나 제공했죠. 불교신자들은 오지도 않을 거라구요. 그러면 사용하면 안되네. 죄송. 꾸벅.
참조. 돈오점수와 돈오돈수논쟁은 80년대초 당시 조계종 종정이었던 성철스님이 돈오돈수의 입장에서 조계종의 종조인 지눌의 돈오점수사상을 정면 비판하면서 본격화되었다고 하네요. 돈오점수사상을 신봉하는 자들은 전부 지해종도(知解宗徒, 깨달음을 체득이 아닌 지혜로 이해하는 무리)라고 비난하면서 선문에서 이들의 폐해가 커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죠. 수행도 제대로 안 한채 고승대덕인양 하며 종단을 타락시킨다는 것이죠.
두분은 달랐죠. 스승도 없이 외롭게 수행하고 독학으로 경전을 공부하면서 정혜결사를 완성했던 지눌과 용맹정진으로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성철스님은 수행과정이 달랐고 자연 수행방법도 다를 수 밖에 없었죠. 이 논쟁을 통해 '깨달음'에 대한 생각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많은 스님들이 당황했죠. 종조는 돈오점수고 현재의 종정은 돈오돈수고. 그래서 어물쩍 넘어간 게 종조를 받들지 않을 수 없으니 돈오점수가 큰 방향이지만 스승인 종정 성철스님만은 예외규정으로 두어 돈오돈수,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얘기가 전설따라 삼천리.
토요일 낮 여의도에 볼 일이 있어 나의 분신인 10년지기 친구 아반테 승용차를 국회의사당안에 세워두었다. 고양 화정집에 갔다 올 시간이 없어 차안에서 등산옷으로 갈아입은 후 지하철을 타고 오후 3시쯤 약속장소인 길동 청산학원 앞에 도착했다. 일부 선배들의 무지막지한 지각으로 전세버스는 한참 후인 오후 4시 40분에 출발했다. 총 14명의 '따뜻하고 멋있는' 인간 고기덩어리 1톤 가량을 싣고. 인간들이 시원찮으면 다 고기덩어리지 뭐. 짐승이니까. 도인이 되면 영혼덩어리. 우리 백두대간팀들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영혼덩어리죠.
이들 인간들도 식인종 마을에 가면 맛있는 고기들일텐데. 요즘 인간고기들은 맛이 없을 걸. 자연방목의 인간이 최고인데. 공장 고기만 먹고 돼지처럼 살만 뒤룩뒤룩 쪘으니까. 근당 만원에 팔리려나. 나는 백두대간을 산행하면서 육질이 좋아졌기 때문에 근당 3만원에는 팔릴 수 있을텐데. 한우보다 비싸나 싸나. 책에 보니까 인육은 짜다고 하든데. 이헌태, 니 미쳤다. 초반부터 와이카노. 탁무권선배와 이수연씨는 따로 저녁 늦게 현지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세버스가 중부고속도를 내달리면서 차창으로 비친 산야는 바야흐로 시리도록 푸른 신록의 계절이었다. 지난 3주만에 천,지,인 가운데 땅지인 '지'가 온통 변해있었다. 하늘과 인간은 변함이 없는데 유독 지만 확 바뀌었다. 자연의 대변신. 봄에서 여름으로의 '급격한 전환'이였다. '급격한 전환'도 좋구만. 동서고금에 있어 '급격한 개혁'이 성공한 일은 거의 없어서. 이헌태, 니는 인간성이 문제가 많으니까 인간성을 급격하게 전환시켜라. 제가 어때서. 니 인생이나 잘살어. 이만하면 나쁜 놈은 아닌데. 장자선생도 "너무 착한 것도 너무 악한 것도 모두 좋지않다. 물흐르듯이 자연처럼 살아라"라고 했는데. 틀렸다구요. 무조건 착하게 살아야한다고요. 무지무지하게 착하게 산다고 욕할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잘 안되니까 그렇지.
산야는 싱그러운 초록빛 물결이었다. 그야말로 '초록빛 바다'였다. 동요 한토막.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파란 하늘빛 물이 들지요 /어여쁜 초록빛 손이 되지요/ 초록빛 여울물에 두발을 담그면/ 물결이 살랑 어루만져요--". 서정주 시인의 시 '푸르른 날' 가운데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대목도 떠오른다.
나무와 풀이 입는 옷인 초록빛을 보면 웬지 마음이 편안하고 푸근하죠. 완전 누드가 된 휑한 겨울철 산을 보세요. 우락부락하고 징그럽게 생긴 흉측한 모습이죠. 얼굴색도 거머틱틱한게. 산 자체로 보면 여름산이 겨울산보다 훨씬 더 낫죠. 이헌태 아부꾼. 겨울되면 겨울산이 좋다고 할 놈이지. 제가 여름산에 아부해서 득 볼 게 뭐있습니까.
질문하나. 여러분, 당신의 피부 색깔에 만족하십니까. 어떤 색깔이 되시기를 희망하십니까. 신이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면서요. 초록색보다 흙색이 더 나으려나. 모르겠다. 신께서 어련히 알아서 좋은 색깔을 정하셨겠지.
얼마전에 비가 많이 왔잖아요. 비가 오니 너무 너무 좋더라구요. 이 비로 인해 나무와 풀들은 신이 나서 싹을 틔우고 잎이 자라고 더욱 푸르게 되었잖아요. 나무와 풀들이 좋아한다는 생각을 하니 저도 너무 좋더라구요. 도인이 다 되어가는구만. 백두대간 산행을 한 번 해보세요. 인간이 아주 악질이 아니면 다 이렇게 변해요. 진짜에요.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하면서 달라진 저의 모습입니다. 작년 이맘 때의 이헌태란 인간과 지금 이순간 이헌태란 인간은 전혀 다릅니다. 천양지차. 즉 하늘과 땅 차이이죠. 거의 무한대라구요. 너무 뻥이 셌나. 그러면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와 비봉 차이라고요. 그건 너무 작은 차이고요. 하여튼 크게 달라졌습니다. 백두대간 산행을 가능하게 해준 '백두대간 한걸음 이어가기' 팀에게 한없는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만약 제가 잘 되면 이분들에게 가장 화끈하게 보답하겠습니다. 나중 은혜 갚으려고 하지말고 지금이나 잘하라구요. 나중에 나중에 떠드는 놈 치고 막상 나중 되니까 잘하는 사람 못 봤다구요. (고개를 떨구며) 여태까지 식사한번 대접 못하고 쐬주한잔 못사고 걸뱅이처럼 얻어 먹기만했습니다. 입만 갖고 다녔는데. 죄송합니다.
도닦는 게 별 것입니까. 자연을 사랑하고 초목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도닦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은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죠. 자연의 이치를 깨달으면 그것이 바로 도인의 길이죠. "자연을 닮았다" 내지는 "자연 대로 살다가 죽었다"가 인간에게 있어 최고의 칭찬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완성, 자아실현으로 가는 지름길이죠. 쉽게 생각해서 산에 자꾸 가면 인간이 되는 겁니다. 좋은 거 하나 가르쳐주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이헌태는 우리 나라의 국보급 인물이야.
옛날 선조들은 꽃과 나무를 매우 사랑했죠. 한국이 나은 위대한 사상가 퇴계 이황선생도 죽음에 임박, 설사를 하면서 악취가 나자 "매형(梅 兄)에게 불결하니. 마음이 절로 미안하구나"라며 매화 화분을 치울 것을 지시했다. 또 죽는 당일 아침에는 가족 걱정보다는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고 까지하며 매화를 형님처럼 깍듯이 모셨다. 멋있다. 현대 사람들도 퇴계선생처럼 살아야지.
나도 우리집 아파트 뒤 숲속에 가서 형님, 동생할 수 있는 나무와 꽃들을 많이 정해야겠다. 내가 7남매 막내인데 이러다가 20남매 13번째쯤 되지 않겠나 모르겠네. 친형님, 누나들이 인정하려나. 특히 대구에 사시는 엄마가 어떻게 생각할지. 괜찮습니다, 괜찮고요. '혈족적 형님, 동생'이 아닌 '사회적 형님, 동생'도 많으니까. 이수성 전국무총리의 경우 형님, 동생하시는 분이 5만명이라고 하네요. 대단한 분이시죠. 제가 볼 때는 '입신의 경지'입니다. 부럽습니다, 부럽고요. 또 안부럽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마당발'이 특정인맥을 쌓는 요인이라네요. 알아서 판단하세요. '마당발'이 그래도 '오래발'내놓는 것보다는 좋겠지. 닭발, 족발이 맛있는데.
얼마전 한반도 남녘에는 매화 향기가 온 천지를 가득 채웠죠. 조선중기 성리학의 양대 라이벌 이황과 이이의 매화시를 소개하겠습니다. 남인의 대가인 퇴계 이황, 노론의 대가인 율곡이이. 한때 노론과 남인은 살륙을 자행했죠. 돌이켜보면 조선시대 사색당파의 원조들이지 뭐. 오야붕,아시죠. 살륙을 저질렀다고 하니 야쿠자같네. 일본 야쿠자들이 최근 경기불황으로 경제계처럼 구조조정을 하는지 통폐합한다고 난리래요. 깡패들도 불황이구만. 왕권체제와 군신체제를 놓고 나름대로 철학적 기반을 들이대며 논리를 편 분들이니 이해하고 매화시를 한번 들어보죠.
퇴계 이황의 '도산 달밤에 핀 매화'. "홀로 산창에 기대서니 밤기운이 차가운데 /매화 가지끝에는 둥그렇게 달이 떴다/ 살랑살랑 미풍을 기다릴 것도 없이/ 온 집안에 맑은 향기가 절로 가득하다"
율곡 이이의 '매화가지 끝의 밝은 달'. "매화는 본래부터 환히 밝은데/ 달빛이 비치니 물결 같구나/ 서리 눈에 흰 살결이 더욱 어여뻐/맑고 찬 기운이 뼈에 스민다/ 매화꽃 마주 보며 마음 씻으니/ 오늘 밤엔 한 점의 찌거기 없네."
매화는 달밤에 꼭 봐야 하나. 두 분 모두 다 매화나무 가지끝에 달이 걸린 것처럼 뼝을 치고 있네. 한시를 자꾸 읽어보면 표현이 비슷비슷 하더라구요.
여름은 두 얼굴의 사나이다. 하나는 선한 얼굴. 연두색에서 진초록색까지 이르는 녹색계통으로 물감을 드린 산야를 보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차분해지고 심지어 시원한 냉목욕을 하는 느낌이 든다. 목욕탕이라고 할 때 목이 나무 목이구나. 아니라구요. 넘어갑시다. 다른 하나는 악한 얼굴. '움직이는 난로'들인 인간들이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불쾌하고 열받는 한여름, 지글지글 끓는 열기, 푹푹 찌는 찜통더위로 인한 짜증을 유발한다. 식물들은 왕성한 성장의 계절이어서 천지에 생명의 기운이 넘쳐흐르는 듯하다. 여름의 무더위에 대해 인간과 식물의 반응이 다를 수 있네. '어둠의 자식들'이 아니고 같은 '자연의 자식들'인데.
식물도 일조량이 너무 많아 짜증이 나려나. 이헌태, 다음 세상에 식물로 한 번 태어나지. 니 , 추억쌓기 좋아하든데. 추억도 쌓을 겸. 할 수 없이 태어난다면이야 할 말 없지만. 그래도 값은 값이면 들판에 마구 피는 잡초보다는 설악산의 고봉준령을 내려다보면서 도 닦는 선인과 같은 천년 이상된 소나무가 되어야지. 전봇대 위에 앉아있는 새구이용 새 보다는 베링해를 건너는 자유로운 새가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차창 밖으로 드러난 산야에는 특히 하얀 아카시아 꽃들이 초록색 산을 군데군데 염색하고 있었다. 흑인들이 검은 머리카락에 흰색을 조화롭게 염색해서 잔뜩 멋을 내듯이. 근래 청소년들의 염색이 갈수록 기기묘묘 하더라구요. 노란색에다가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심지어 까치머리에 흰색까지. 잘하면 '움직이는 예술품'이고 잘못하면 '양아치'가 되나. 몸 구석구석구멍뚫고 염색하고 몸을 어디까지 혹사하고 이용하려는가. 이런 몸의 치장을 학자들은 또 말을 만들었더라구요. '신체의 문화화'라고. 나 원 참. '신체의 문화화'까지는 좋은데 나중에 '신체의 장난화' 내지 '신체의 엽기화'로 이어져서 팔을 떼서 다른 곳에 붙이고 코를 떼어 다른 곳에 붙이고 머리뒤에 눈을 하나 더 이식시키는 의학기술은 나타나지 않으려나. 오랜 세월이 지나 유전자가 바뀌어 전혀 상상하기 힘든 또 다른 형태의 인간이 나오려나. 그때쯤 되면 신께서 열받아서 인간을 다시 없애고 새로 만들어야지 뭐.
아카시아꽃은 지난 주부터 출퇴근길인 한강 주변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 향긋한 내음을 마구 뿌리며 천지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코를 마구 흔들더니 아니 내 마음마저 흔들어대고 있었다. 진달래가 이 조국의 산하를 한바탕 미치게 만들고 지나가더니 이제 아카시아가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개나리와 벚꽃, 철쭉이 자태를 뽐냈고 며칠 전에는 한강 변에 진보라빛깔의 붓꽃도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봄이 시작되면서 수많은 꽃들이 저마다의 모양과 향과 빛깔을 자랑하면서 '꽃향연'을 펼쳤다.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스케줄에 따라 피고 사라지는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었다.
2.
중부고속도를 지나면서 농촌 논밭을 보니 인간의 생존을 위해 희생될 작물들이 생명을 틔우고 있었다. 밭에는 고추, 상추 또 식탁 위에 오를 다양한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논에는 모심기가 3분의 2가량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논에 거름을 해넣는 갈꺽기, 써레로 무논을 고르는 논삶기, 모판에서 모를 짜내는 모짜기, 모를 꼽는 모심기의 순으로 벼농사가 시작되거든요. 지금은 한창 모심기철. 모든 작업마다 육체의 고단함을 잊고 또 수확의 풍성함을 염원하는 노동요가 있었어요. 한번 부르고 싶다. 알아야지 뭐.
조상들의 모심는 노동요 하나 소개하죠. 모노래라고 하네요."이 논배미에 모를 심어 장잎이 훨훨 정자로다/ 우리 부모님 산소등에 솔을 심어 정자로다/ 이 논배미 모를 숨어 장잎이 훨훨 영화로다/ 우리 동생 곱게 길러 갓을 씌워 영화로다". 장잎은 벼의 이삭이 패기 바로전에 마지막으로 돋아나는 긴 이파리라고 하네요. 모심을 때는 가을 벼수확을 기대하는 거죠. 이것은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책에서 발췌했어요. 최상일씨가 남한을 돌며 무려 민요 14000곡을 채집했대요. 조상들의 삶과 영혼이 담긴 이 고귀한 민족의 자산이 사라지기 직전에. 이분은 10명의 장관, 국회의원보다 더 큰일은 한 것 같아요. 박수.
충격 충격 충격. 모심기 계절인데도 농부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왜일까. 농촌마을 사람들이 품앗이를 한다든가, 관내 학생들을 동원해서 모심기를 하는 모습은 사라졌다고 한다. 전적으로 기계에 의존한다고 한다. 모심는 기계 운전자 1명과 보조원 1명만 있으면 충분한 세상. 교과서에 나옴직한 오매불망 꿈에 그리던 선진국의 농촌기계화가 이렇게 빨리 올 수가. 이 얼마나 놀라운 문명의 발전이고 혜택인가. 또 인류가 수백만년 동안 그렇게 고대해온 노동의 해방인가.
노동이 얼마나 중요하고 깊은 의미가 있는 지 다 아시죠. 엠마뉘엘 무니에는 "노동은 사물을 생산하는 동시에 인간을 생산한다"고 말했죠. 노동의 개념을 뒤바꾼 대표적 철학자인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통해 노동이야말로 인간이 참으로 현실의 생활을 영위하고 역사를 형성해가는 원천이라고 했어요. 종국적으로 인간본질의 실현과 자아의 실현이죠. 즉, 주인은 오히려 노예의 노예이고 반대로 노예는 주인의 주인. 마르크스는 노동은 자유를 가져다 준다기보다는 억압의 수단을 작동한다고 생각했죠.
그래 이헌태, "노동은 선의 실현이고 무노동은 악의 축이다". 니혼자, 열심히 노동해라. 제 얘기는 노예 같은 비참한 생활은 사라져야 하지만 적당한 노동은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땀흘린 뒤의 기쁨, 성취의 기쁨. 모르세요.
농촌의 기계화 때문에 까랑까랑 혹은 처연하게 산천을 울렸던 '노동요'가 완전 사라졌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나쁜 것도 있구만. 노동요가 사라졌다는 것은 농촌의 공동체와 정과 인심이 깨졌다는 건데. 찬 안타깝구만. 오호 통재라. "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해방후 한국 최고의 '현대판 농가(農 歌)'가 있거든요.' 농가월령가'가 아니고 어릴 때 히트친 남진의 노래 '님과 함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가을이면 풍년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멋쟁이 높은 빌딩 으시대지만/ 유행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 함께 같이 산다면--." 이게 무슨 농가냐구요. '사랑가' 내지는 '연애가'지.씨뿌리는 농사짓는 얘기있고 초가집 얘기있으면 농가지 뭐. 그럼 남진이 농부가수이냐고요. '신토불이' 부른 가수처럼.
이전에 농촌은 노인촌이라고 말했죠. 노인촌의 '노인'자를 합치면 '농'이 되네. 농촌이 그래서 결국 노인촌이 되었구나.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어가네. 농촌문제는 노인문제로 대처해 나가면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죠.
이헌태, 니는 농촌에 모심기하고 밭농사 지을 사람이 없어 난리인데 무슨 소리이고, 또 젊은 사람들이 먹고 살 길이 없어 모두 농촌을 떠났는데 모심기하는 사람이 안보이냐고 뚱단지 같은 소리를 하냐. 죄송합니다. 현대사회가 힘든 일이 크게 줄어들었지만 먹고 살 길은 더욱 힘들어졌다고요. 그럼 뭐야. 좋은 거냐 나쁜 거냐.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고 그런 것 아니겠어요. 정리를 잘해야겠네. 모르겠다. 알아서 생각하고 알아서 사세요. '화'와 '복'은 동전 앞뒤네. 복만 있을 수 없나.
화는 없고 복만 있다고 하면 '인간세상 꼬라지'가 말이 아닐 것입니다. 뒤섞여 있어야 복도 더 빛이 나죠. 비슷한 얘기로 고통과 진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죠. 고통속에 진리가 숨겨져 있다고요. 진리는 고통을 겪어야 더욱 빛이 나죠. 고생하지 않고 얻는 부와 출세는 가치가 별로죠. 느끼는 사람도 기쁨이 덜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곧 싫증을 내죠.
불교에서는 고통이 있어야 해탈도 있다. 성불구자의 입단을 허락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성욕을 누르는 반작용의 힘도 약할 것이기 때문이라네요. "불타는 왜 진흙투성이인 번뇌속에 숨어 있는가". 바다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사람은 귀중한 진주를 손에 넣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번뇌의 바다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깨달음이란 보석을 얻을 수가 없고 번뇌는 여래가 되기위한 씨앗이라고 한다네요.
'시인은 빈곤이나 불행에 빠져야만 훌륭한 시가 탄생되는 것이다'는 말도 있어요. 불행한 사람이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사람에 비해 가슴에 묻어둔 할 말이 많고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얘기들이 진솔할 수 있기때문이라고 하네요. 영국시인 하우스만은 시작활동을 "상처받은 진주조개가 지독한 고통속에서 분비작용을 하여 진주를 만드는 일"에 비유했다. 화도 있고 복도 있고 고통도 있고 진리도 있고 이것이 바로 그 재미난 '인간세상'이 아닐까요.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는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고 말했죠. 윌리엄 워즈워드는 "깊은 고뇌가 내 영혼을 아름답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3.
저녁 7시쯤 되니 서쪽 하늘 저편에 석양이 화투의 팔광 같은 진홍색과 달리 노란색과 붉은색의 중간 색조를 띠고 있었고 곁을 물들이지도 않고 그냥 맨 하늘에 동그랗게 달랑 걸려있었다. 달걀노른자 같기도 하고 황도복숭아 같기도 하고, 붉은 전구에 불을 켜놓은 것 같기도 하고. 눈부시지도 않고 훤하게 밝은 '달광'의 모습이었다. 저 달광에 옆으로 나무 짝대기만 붙이면 뭐가 되는 줄 아시죠. '달광부채'라고. 떼어 와서 부채로 만들면.
황홀해서 보고 또 보고 자꾸 보았다. 저 해를 보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겠지. 당연하지. 자연은 만인이 누릴 수 있는 신의 선물이라고 했다. 부자라고 더 잘 보이고 빈자라고 못 보게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고문진보에 따르면 장온고의 '대보잠'에서 "저 하늘의 밝은 태양은 본래 사사로움이 없어 밉다고 덜 비추어 주거나 곱다고 더 비추어 주는 일 없이 세상을 구석구석까지 골고루 비추어 줍니다.?하늘이 만민을 위하여 유덕한 군자를 가려 임금으로 앉히듯 임금은 오직 현덕이 있는 어진 이들을 가까이 하여 그를 들어 국정에 참여케 하시는 것입니다?". 사심없는 용인술을 강조한 셈이죠.
이헌태의 영원한 우상, 구제불능의 낙천가, 위대한 인도주의자, 걸출한 작가인 소동파도 이와 관련 멋진 말씀을 했죠. "강과 글, 달과 구름에는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것을 즐길 여유가 있는 사람의 것이다. 그러니 공의 새로 꾸민 정원과 이 대자연의 정원과 어찌 비교가 되겠소. 여름과 가을마다 정원 꾸미는데 드는 비용이며 그밖에 용역비등을 절약할 수 있으니 공께도 이런 정원을 권하고 싶구려". 소동파의 말씀이 정답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은 여유만 갖고 즐기면 모두 자기의 것이고 그것도 공짜 공짜 공짜. 이것을 음미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만 손해.
공짜의 백미가 있다. 깊고 그윽한 명상이 그것이죠. 마음속 내부세계는 자유자재로 구경할 수 있죠. 미국도 갈 수 있고 백두산도 갈 수 있고 10년전 학창시절로 되돌갈 수도 있고 한국의 최고재벌이 되어 폼을 잴 수도 있고. 소위 '상상의 나래'라고 하죠. 유명 명상가가 말씀하셨더라구요. "외부세계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실험실과 엄청난 예산이 들지만 내부세계에선 그렇지 않다"고.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내부성찰과 명상은 시,공간의 제한도 없고 돈도 들지 않습니다.
자연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 분도 계셨죠. 19세기 톨스토이가 미국은 군인이나 정치가말보다는 '소로우'의 말을 들여야 했다며 당대에 큰 영향을 미쳤던 '월든'의 작가 '소로우'는 "지평선을 나 혼자 독차지하고 있다. 나는 혼자만의 해와 달과 별들을 가지고 있으며 혼자만의 작은 세상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마치 내가 이세상 최초의 인간이거나 마지막 인간이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아름다운 자연을 자기 멋대로 자기 소유로 만든거죠. 등기부등본에도 그렇게 되어있나 모르겠네. 혼자 살면 외롭잖아요. 또 교묘하게 명분을 달았더라구요. 히히히. 그분의 말씀을 하나 더. "월든 호수가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태양은 혼자다. 하느님 역시 홀로 존재한다. 그러나 악마는 결코 혼자 있는 법이 없다. 그는 많은 패거리들과 어울려 대군을 이루고 있다". 모두 혼자 삽시다. 가정있는 사람은 모두 이혼하고. 미친 놈.
'공짜 자연구경'에 대해서 좋은 말씀을 전해드렸는데. 결론은 1)자연은 너무 아름답다 (혹시 주위에 자연은 싫다는 분 계시면 즉시 신고바람. 정신병원으로 직행) 2) 자연은 차별 없이 은혜를 베푼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태양이 덜 비춘다든지 시원한 바람이 불다가 앞에서 멈추는 일이 생기면 바로 신고바람. 어디로. 나도 몰라) 3) 자연을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에게는 무한대의 공짜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본 비경 용아능선을 두번 보았다고 돈 더 내라고 하는 사람 없음) 4) 그런데도 자연을 즐기지 않으면 바보, 병신, 쪼다. (제가 볼 때는 인생을 잘 못 사시는 게 아닌가 싶네요. 신께서 축복을 내려 자연이 아름다운 세상에 보내주었더니 전혀 영양가없는 딴 짓만 하다 왔다고 할 걸요). 잉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전세버스는 저녁 7시 37분쯤 인삼랜드 휴게소에 멈췄다. 지난번 덕유산 주능선 산행때 팀을 안내했던 거창군소속 경남도의원 백신종선배가 합류했다. 이번 산행구간이 자신의 위수지역에 들어왔다고 하면서. 서민적이고 듬직한 선배님 이번에도 안내 잘 해주세요. 평소 양반론을 귀따갑게 하시는 유영래대장께서 양주를 좀 사야한다고 말씀하신다. 양주는 양반이 마시는 술인가. 소주는 소가 마시는 술이고 막걸리는 아무나 막 마시는 술인가. 질문하나, 말술은 말이 마시는 술이에요.억지로 말 더 만들어보자. 청주는 청소년들만의 술이고 탁주는 탁씨집안에서 내려온 전통주인가.맥주는 맥빠진 사람들이 마시는 술이고.
밤 8시 40분, 하루를 묵고 갈 장계면 소재 월강관광농원에 도착했다. 도로에서 벗어나 한적한 외딴 시골마을 안으로 들어가는데 안내판이 잘 되어 있지않아 찾아가는데 무지 고생했다.산의 중턱 위에 놓여있었다.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렸다. 흐린 날씨때문인가 하늘에는 별하나 보이지 않았지만 바깥 공기는 차고 맑았다. 사찰 대웅전의 내실같은 형태의 식당겸 노래방건물이 있었고 바로 위에는 숙소건물이 있었다. 산아래 쪽을 바라 보니 저 멀리 마을을 알리는 불빛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모두들 허기가 진 탓인지, 촌닭고기와 닭죽맛이 기가 막혔고 김치, 취나물도 맛있었고 이 집에서 직접 제조했다고 하는 막걸리처럼 걸죽하면서도 시큼한 조선솔잎주도 별미였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몇 잔씩 돌렸다. 나는 된장쌈 한 개씩을 직접 만들어 모든 이의 입에 넣어 주었다. 엄마처럼. 술에 얼큰하게 취한 채 노래방기계에 맞춰 재미난 여흥시간을 가졌다.
이날 최고의 히트작은 백선배가 만든 '화합주'. 맥주컵에 소주를 3분의 2 가량 따르고 나머지에 맥주를 부은 뒤 세사람이 공평하게 나눠 마시는 것이다. 3분의 1씩 고르게 마시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처음 마시는 사람이 희생해서 많이 마실 수 있고 반대로 꾀를 피워 조금 마실 수 있다. 자기 몫보다 많이 마시면 괜찮지만 적게 마시면 다른 사람이 피해가 오기 때문에 화합주란 이름이 붙은 모양이다. 심상준선배는 아예 큰 사발에 소주를 부어 화합주를 만들겠단다. 다양하게 응용해주세요. 매번 폭탄주를 만들어 돌리는 것보다 시간도 절약되고 화합도 증진되고 '국민보급용술'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통령령으로 하루 날을 정해 국민 모두가 화합주를 마십시다. 지역, 계층, 세대간의 갈등이 봉합되어 화합되려냐. 미친 놈. 폭탄주가 새로운 형태로 나올 때마다 신바람나서 퍼뜨리는 놈들 한심하기는. 술마시는 것을 자꾸 보급해서 뭐 하려고. 죄송합니다. 어차피 마시는 폭탄주라면 좀 더 나은 게 없나 해서요. 이 글 보시는 분들은 당장 저녁에 활용해주세요. 술자리분위기가 확 살죠. '백두대간 종주기'가 아니라 '술주정기'이구만.
백선배는 자기 소개를 하면서 "5월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한 달인데 흔히 석가탄신일을 전후에 세상의 정기와 기운이 가장 강하다"면서 "5월의 산이 진짜"라고 5월을 치켜세웠다. 흔히 5월을 '계절의 여왕' 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죠. 녹음이 짙어가고 식물이 가장 왕성하게 자라는 계절이니까요. 그러면 '계절의 왕'은 누구고, '계절의 아들과 딸'은 누구요. 계절은 독신녀라서 여왕이 최고라구요. 알겠습니다. 백선배는 이날 배호의 '안개낀 장충당공원'을 특유의 굵직한 음성으로 모창하면서 박수를 받았다. '배호'가 아니라 '백호'라고.
자정이 가까운 11시를 훨씬 넘겨 탁무권선배와 이수연씨가 서울에서 전주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 곧장 택시로 농원을 찾아왔다. 파전에다가 조선솔잎주가 한통이나 더 나오고 난뒤인 새벽 12시 40쯤 파장했다. 총 17명이 세 방에 나눠 잤다. 내가 잘 방에는 10명 가량이 수학여행온 학생들처럼 빽빽하게 몰쳤다. 방이 지글지글 끓는 방이어서 너무 좋았다. 불을 끄고 잠을 청하려 하니 밖에서 소쪽새가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소쩍새 소리만 들으면 운다고 떠올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 서정주의 '국화옆에서'. "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맞습니다,맞고요.
한국새는 울고 서양새는 노래한다면서요. 예전 민초들은 한스럽게 애닳게 살았지만 작금 민초들은 전보다 훨씬 밝아졌고 즐겁게 살죠. 우리 나라 새들도 이 순간부터 운다에서 노래한다로 바꿉시다.
술을 뒤섞은데다 많이 마셔 취해버렸고 방마저 따근 따근하니 이내 잠이 들었다. "역시 나이가 드니 따뜻한 방이 최고야". 니 나이 몇 살이냐고요. 42살인데요. 10살짜리 얘들이 당신을 쳐다보면 얼마나 어른인데. 여러분, 어린 시절 10살 때 42살난 아저씨를 생각해보면 하늘 같은 어른이었잖아요. 막상 42살이 되어보니 어떠세요. 경상도 말로 여전히 '알라'들이잖아요. 알라신이 아니고 얘기들.
60살된 노인들 있잖아요. 점잖고 경륜이 계신 분들 같잖아요. 일전에 그분들의 모임을 옆에서 지켜보았는데 얘들 모임하고 똑같더라구요. 동문모임인 모양인데 자기들끼리 "야, 이 새끼야"카면서 마구 떠들고 까불고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더라구요. 귀막아야 할 정도로 시끄러워 죽겠더라구요. 노인들이나 얘들이나 똑같애. '군사부일체','부부일체'가 아니라 '노소일체'더라. 현실이 이러한데도 어른 여러분들, 특히 자식들앞에 폼 좀 재지 맙시다.
나이 들어 폼잡는 게 상대적인 것 같아요. 어른들은 얘들을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우습게 보지 맙시다. 얘들도 어른들앞에서 너무 주눅들지 말고 어른들의 어려운 형편과 입장을 고려, 서로서로 이해하면서 살아야지 뭐. 어른이라고 매사를 다 알고 책임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이헌태의 '노소화해'의 철학과 방법이 담겨있네. 어쨌든 42살이지만 온몸의 신경세포를 풀리게 만드는 따뜻한 방이 좋더라구요.
이날 기억에 남는 것은 농원식당에서 일하는 할머니와 새댁 아줌마, 모녀간의 친절때문. 자정을 지났는데도 조금도 얼굴을 붉히지 않고 정성을 다해 대접하는 것을 보고 아직 촌인심이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얼굴들이 선하게 생겼다. 요즘 세상, 한번 돌아볼까요. 공부를 가르치는 학교도 무한경쟁시대, 진리를 설파하는 교회도 무한경쟁시대. 무한경쟁의 성역이 하나도 없는 삭막한 도시. 저마다 저 혼자 잘살려고 난리들인데. 농촌인심도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결국 한국의 마지막 인심은 농촌에서 찾아야할 것 같다. '민초의 승리' '두 아줌마 잘 사세요'.
백두대간 종주길에서 만난 촌아지메들이 너무 착하고 인심이 후하구만. 백두대간의 또다른 쾌락이 아닐까 싶네요. 불멸의 히트 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여기서 주의할 사항. 이분들이 착한 게 능사가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이 있다. 어떤 글에 이런 말이 있더라구요. "사람은 착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이 필요합니다. 마치 덜 익은 과실이 자기를 따 먹으면 사람에게 무서운 독을 안기듯이". 착한 사람들이 계속 착하게 살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합시다. 이헌태는 대충 넘어가지 않고 늘 결론을 내리고 결론도 멋져. 감사합니다.
4.
18일 새벽 4시 15분에 모두들 기상해서 어느 때보다 빨리 움직여서 새벽 4시 45분쯤 목표지점인 육십령을 향해 출발했다. 백두대간 산행이후 처음으로 반바지를 입고 왔는데 찬 새벽공기로 인해 추위를 느꼈다. 육십령으로 가는 도중에 어스럼한 새벽, 희뿌연 안개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는 산과 마을, 논과 밭을 보면서 묘한 신비로움에 빠져들었다. 도시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정겨움도 가슴 깊이 간직했다.
육십령에 30분만에 도착했다. 지난 산행이 종료되었던 지역이다. 재회하니 오랜 옛 친구를 만난듯 반갑다. 해가 길어진 탓에 새벽 5시 14분인데도 대낮처럼 날이 훤했다. 육십령 입구에 있는 나무이정표에는 산행 종착지인 삿갓재까지 13킬로미터거리 (대략 7-8시간)라고 적혀 있었다.
"대장정 출발이다". 포장도로가 되어있는 고갯마루에서 산 위로 이어진 대간길로 올라섰다. 소나무와 굴참나무가 뒤섞여 숲이 우거졌다. 3주전 겨우 손톱만한 크기의 싹이 자라던 굴참나무가 아니었다. 자그마한 잎들이 무성하게 붙어 있었다. 관목들과 풀들도 초록 빛깔을 내뿜으며 숲은 여름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새소리가 너무나 청아해서 아침의 적막을 짝짝 갈라놓고 있었다. 아침이 되면 새들이 가장 먼저 빨리 깨는 모양이다. 아니다. 새들이 아침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산속의 아침은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산새들의 합창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 질문 하나. 아침이 되면 새가 깨는 것입니까, 아니면 새가 노래하면 아침이 깨는 것입니까. 따지지 말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다. 새들이 길게 또는 짧게 지지배배, 지저귀며 노래하는 것은 우리 일행이 반갑다는 뜻으로 알고 넘어가자. 뻐꾹이도 '뻐꾹 뻐꾹'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귀가 너무 즐겁고 기분도 상쾌하다.
산에 오면 참 좋기는 좋은데 가끔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한 게 있다. 새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귀는 데 무슨 새인지 또 무슨 뜻인지 모를 때. 새 이름을 알면, 한번이라도 그 새에 대해 생각하고 말을 걸기라도 하지. 참 답답한 노릇이야. 미국사람을 만났는데 영어를 몰라 답답한 그런 상황이다. 어학공부는 의사소통을 하기위한 것인데 어학자체를 위한 것으로 변질되어 나타났죠. 산수가 가장 필요한 생활경제를 도외시하고 생물이 가장 중요한 건강음식과 생명사상을 도외시하듯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세상에는 인간을 다루는 방법에 관한 책만 있고 인간에 관한 책은 없다"고 통탄한 적이 있어요. 당시 소설에 얄팍한 머리만 있고 뜨거운 가슴이 없다는 말씀이겠죠. 누군가 머리와 가슴이 가장 가까이 있지만 또 가장 멀리 있다고 하네요. 그건 모르겠고. 나는 이렇게 바꾸고 싶어요. "세상에는 생물에 관한 공부는 많이 하지만 생명에 관한 공부는 별로 하지 않는다". 와. 이헌태 갈수록 실력이 느네.
새나 동물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을 양성하는 기관은 없나. 도사들이 짐승들과 의사소통 한다고 말하지만 말짱 거짓말아니겠어요. 쬐금 양보해서 서로 말은 못하더라도 느낌은 공유할 수 있겠지 뭐.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만이 문명인이고 나머지 民族이나 자신들의 노예들은 야만인으로 취급했다고 하네요. 이것이 야만인의 기원이라고 해요. 재미있는 사실은 야만인의 대화를 새소리처럼 여겼다고 하네요. 잉. 당시 한반도에 살던 단군 후손들의 대화도 새소리 취급을 했나. 그렇겠네. 이헌태, 그만 웃겨라. 그런데 그때 그 잘 나가던 그리스는 지금 별 볼 일 없구만. 이것도 '초반 끗발 개 끗발'이네.
답답한 게 한두개가 아니죠. 나무가 참 멋있는데 무슨 나무인지 모를 때. 풀이 참 예쁜데 무슨 풀인지 모를 때. 사실 거의 다 모르거든요. 속 터지고 성질 나서. 확 엎어버릴까. 자연과 대화가 안되고 그저 남남인 것처럼,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것을 두고 '자연과의 대화단절' 내지는 '자연 맹"이라고 하면 어떨까. 색깔을 구분 못하면 색맹이고 컴퓨터를 모르면 컴맹이듯이.
만약 자연과 대화가 가능하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숲속에 가면 수많은 나무와 풀들이 친구가 될 것이다. 대화를 나누는 게 너무 즐거울 것이다. 새들이 지저귀면 왜 그런지, 나무나 풀 이름을 알면 중얼중얼 혼잣말이라도 말을 건네볼 지 모른다. 이것이 '자연과의 일체' 내지 '자연과의 대화'. 이게 잘 안되죠. 산에 와도, 숲속에 들어와도, 나무를 봐도 맹숭맹숭 지나칠 뿐. 참으로 안타깝다.
누가 탓이야. 그런 기초적인 내용을 가르치지 않은 교육 탓이지. 이헌태 성질 죽여라. 사실 생물시간에 잡동사니 지식까지 머리에 꽉꽉 쑤셔 넣었는데 지금은 싹 다 까먹었다. 쓸데없는 것만 가르치고 일상에서 얼굴을 맞대는 주변의 식물이나 동물의 이름은 가르치지 않았다.말이 안되는 소리지. 개인적으로 알려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이헌태 탓도 있다. 태어나서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캠페인이 뭔 줄 아세요. 한국천주교의 '내 탓이요 운동'. 노벨상감입니까.
보너스 하나. '자연맹'의 맹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맹' 사촌이 '치'에요. 노래를 잘 못 부르면 음치, 춤을 잘 못 추면 몸치. 근래 강남지역에는 나이트클럽용 디스코나 재즈를 가르치는 '몸치교정교실' 홍보물이 넘쳐 나고 있더라구요. 눈치는 반대네. 눈을 너무 뱅글뱅글 돌려서 문제구만. 골치는 뭔가. 알았다. 골이 안 돌아가는 사람들이 마구 돌리니까 생기는 거네. 색치는 뭐를 못하는 사람인가 잘하는 사람인가. 그런 말은 없고 대신 색골이란 말이 있구나. 색골을 사전 찾아보면 '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되어있거든요. 그럼 화가인가. 화가들은 다 색골인가. 불을 밝히면 좋고 색을 밝히면 왜 안되죠.
산행마다 늘 되풀이되듯이 산에 오르면 초반에 전날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위속에서는 대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3차 세계대전이나 인류의 마지막 전쟁인 아마겟돈이 아니라, 숲속의 청정한 공기를 이끌고 배속으로 들어오는 '선의 세력'이 배속에서 이미 진을 치고 있는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다. 속이 울렁 울렁하고 오바이트 (오버+이트, 과식이 아니고 술마시고 뭔가를 위로 쫙 올림)가 나올 것 같으며 식은 땀이 나오고 몸이 영 말이 아니었다. 대락 두시간 부지런히 걷고 나면 '선의 세력'이 승리해서 몸이 다시 개운한 깨끗한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도시 생활과 술 생활이 인간의 몸에 나쁘다는 것을 산에서 늘 확인하곤 한다. 산에 가지 않으면 몸이 부실해지는 것이다.
4시간용 등산거리인 북한산과 관악산의 경우는 샐러리맨의 일상생활에서 대략 3일을 버티게 하는 에너지를 보충받게 된다. 음주를 기준으로 하면 3일정도 약발이 먹힌다는 것이다. 술을 매일 마시는 사람은 3일에 한번 그같은 산에 올라가주면 몸 컨디션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장하다. 별난 것을 다 연구했구나. 연구가 아니라요. 경험에서 알 수 있죠. 자기 몸은 자기가 철저히 관리를 해야죠.
출발지에서 오르막길을 따라 100미터쯤 올라 가서 작은 봉우리를 만나고 다시 큰 봉우리를 향해 완만한 능선을 따라 올라갔다. 30분쯤 지난 오전 5시 46분쯤, 숲속을 벗어나면서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암릉이 나타났다. 왼쪽, 육십령 아래 자욱한 새벽 안개 속에서도 또렷이 보이는 장계면 명덕리의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에워싸고 있는 덕유산의 능선 옆자락도 보였다. 새벽의 시원한 산들바람이 숭숭 뚫린 가슴으로 차고 들어와 너무도 상쾌했다.
5.
새벽 6시 26분, 사위가 환히 보이는 할미봉에 도착했다. 능선좌우, 옹기종기 정겹게 사는 마을이 포근하게 보인다. 오른쪽, 경남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마을은 대간에서 본 마을치고는 꽤 넓다. 남쪽으로는 깃대봉이 안개속에 아련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북쪽으로는 오목 볼록이 이어진 능선 끝에 아득히 멀리 서봉과 남덕유산이 동서로 나란히 다정하게 우뚝 솟아 있었다. 사방으로 첩첩이 펼쳐진 장엄한 산들의 군락이 덕유산 주능선의 시작이었다.
덕유산 전경은 '초록빛 바다' 그 자체였다. 용트림하는 능선은 파도가 출렁이는 모습 그대로였다. 웬 파도. 옛날 조상들의 시에 깊은 밤, 깊은 산속 오두막집 방안에 있으면 웅웅거리며 거세게 몰아치는 창밖의 눈보라 소리가 집채를 덮을 기세인 큰 파도소리와 비슷하다는 것 아닙니까. 이해되시죠. 안되면 할 수 없고. 산이 바다라고 생각하세요.
혹시 일본에서 유행하는 한 줄의 정형시 '하이쿠'를 아세요. 한번 작문해 보겠습니다. 귀엽게 봐주세요. "초록 나무와 풀들이 온통 산을 덮고 있으니 산이 푸른 바다가 되고 능선이 파도가 되고 산새들이 바다새가 되었구나" 말되나요. 진짜 멋있다. 대단하다. '온통'과 비슷한 경상도 말. 수두룩 빽빽.억쑤로. 쌔카마케. 항거석. 천지삐까리. 최근 사투리공부가 열풍.
여름 휴가를 산으로 갈까, 바다로 갈까 고민하는 분들은 이곳으로 오시면 어떨까. 산에 와서 산도 즐기고 바다의 맛도 보고. 미친 놈. 해수욕은 어떻게 하고. 말의 뜻만 이해하시길.
산은 초록색 바다지만 하늘은 흰파란색 바다. 천지가 바다로 구만. 둘 다 가짜 바다지 뭐. 진짜 동해, 서해바다가 웃는다. 그냥 한 색깔로 넓게 퍼져있다는 뜻이죠. 백두대간 길을 걸어가는 인간 이헌태는 흰파란색 하늘을 이고 초록색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구만. '천,지,인'의 완벽한 조화. 멋진 표현이다. 니도 노력해서 시를 쓰라. 히트치겠다. 아닙니다. 저는 심심풀이 땅콩용 잡글이나 계속 쓰겠습니다. 알아서 해라. 고맙습니다.
유명한 명상시인인 류시화씨가 하이쿠에 대한 책을 썼죠. 재미난 하이쿠를 몇 개 소개하면. "여름 소나기 / 잉어 머리를 때리는 / 빗방울 "(시키), "얼마 놀라운 일인가 / 번개를 보면서도 / 삶이 한순간인 걸 모르다니"(바쇼), "높은 스님께서 / 가을 들판에서 /똥누고 계신다" (부손), "천둥번개를 쳐도 나는 젓가락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뻐꾸기가 울때는 ?"(무초), "꺽어도 후회가 되고 / 꺽지 않아도 후회가 되는 / 제비꽃"(나오조), "몸무게를 달아보니 65킬로그램/ 먼지의 무게가 이만큼이라니" (호사이),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 어 다시 올라가네나비였네"(모리다케)
누가 말했던가. 아름다운 자연을 쳐다볼 수 있는 눈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고 했던가. 눈앞에 펼쳐진 눈이 시리도록 푸른 덕유산의 형상을 보니 가슴이 후련하고 행복하다. 이 능선길은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 아닌 관계로 원시림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할미봉 바로 밑 4개의 작은 기암괴석도 절경이다. 4형제봉으로 이름을 지었다. 혹시 나중 세월이 흘러 4형제봉으로 불릴지. 꿈깨라구요. 알겠습니다. 역시 돈 받는 국립공원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지리산 국립공원 다음으로 등장한 덕유산 국립공원. 돈 받는 이유가 다 있다니까요. 환장이 아니라 환상 그자체다. 육십령부터는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지역이다. 곳곳에 119구조대의 안내표시가 되어있었다.
서봉, 일명 장수덕유산까지는 꽤 많은 능선을 지나야할 것 같다. 수평에 가까운 능선이 오래이어져서 빠른 시간내에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미봉에서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온 뒤 오랫동안 평평한 능선을 계속 따라가면서 모처럼 여유롭게 편안한 산행을 즐겼다. 햇볕이 따뜻했고 어떤 때는 땡볕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바람이 불고 날씨가 선선해서 등산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조국 산하를 붉게 물들게 했던 화려했던 진달래는 이미 이승을 마치고 저승으로 갔는지 흔적도 없고 대신 그 사촌인 철쭉꽃이 곳곳에서, 산을 평정한 초록빛이 지겨울 때면 한번씩 나타나 교태를 부렸다. 진달래와 철쭉 그리고 수많은 꽃들이 위도와 해발고도에 따라 때맞춰 질서정연하게 피고 지는 것을 보니 참 신기해요. 누가 시켰는가. 자연의 이치와 식물의 적응이 새삼 놀랍다. 그러니 식물인가. 그래도 이 산 저 산 올라가고 내려가고 또 더운 곳, 추운 곳 마음대로 가도 끄떡없이 잘 사는 인간이 낫겠지.
지난 밤 머물렀던 농원에서 만들어 준 얼음페트병물이 가슴속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고맙습니다, 아줌마. 더운 날씨속에는 찬 물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교과서에 나오죠. '이열치열'. 순 거짓말이에요. 나는 '이냉치열'이 낫더라구요. 사람이 솔직해져야지. 간혹 뜨뜻한 한 목욕탕 물에 몸을 담그면 진짜 시원하고 개운하더라구요. '이열치열'은 열번에 한번꼴.우리는 남이 맞다고 우- 따라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번씩 점검해보고 삽시다.나는 무조건 '이냉치열'
6.
오랜 풍상을 견딘 멋진 회갈색의 바위들이 틈을 두고 군데 군데 놓여있어 이들을 보는 즐거움 탓에 그나마 지루하지 않았다. 긴 능선을 걸으면서 탁무권, 허정균 선배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자연백과사전인 손석규선배가 이번 산행에 빠져 참으로 안타까웠다. 앞으로 산의 식물이름을 꿰뚫고 있는 지독한 촌놈이나 아니면 박식한 식물학자라도 초빙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허선배는 야생화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생많습니다, 많고요. 탁선배는 갈수록 도인이 다 되어가는 모습이다.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가 예사롭지가 않다. 사례 4가지만 들겠습니다. 이번 백두대간 종주기는 탁선배판이구만.
1)발 아래 긴 능선을 바라보며 홀로 고고하게 서있는 바위를 보면서 하시는 말씀, "저 바위는 생명이 있는 것 같애". 우와. 개그콘서트의 '우비삼남매'. 지난 산행 때는 박새하고 대화를 했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돌하고. "이쯤하면 막 가자는 것입니까" 의 변형 표현. "이쯤하면 막 미치자는 것이죠"
2) "새소리를 들으니 입체 돌비스트레오 음향을 듣는 것 같아". 종교방송에서 경전을 읽을 때 깔리는 배경 새소리 있죠. 청아한 소리. 그 소리를 원음으로 들었으니. 아무리 첨단음향기기라도 저 소리를 그대로 전할 수 있을까. 현장에서 들으니 마치 마음의 영혼을 깨우고 감동시키는 소리 같습니다. 너무나 신기해서 귀를 쫑긋하고 정신을 집중해서 듣고 또 들었습니다, 태어나서 새소리로 인해 내 마음과 영혼이 작동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3) "베다경전에 따르면 아침해, 낮해, 저녁해 (석양)의 세가지 해가운데 사람의 몸에는 아침해가 가장 좋다고 적혀있다고 하니 아침해의 기운을 잔뜩 받아라"고 말했다. 근래 '기'에 대한 얘기가 많아졌다. 베다경전이 아니라 제가 봐도 아침해는 뭔가 기운을 주고 낮해는 뭔가 힘을 주고 저녁해는 뭔가 감성을 주는 듯하다. 인기투표에서 낮해가 가장 꼴찌구만. 사실 낮해가 인간을 포함해서 온갖 생물에 가장 필요할 지도 모른다. 공기가 너무 너무 귀한데도 옳게 취급을 못받듯이. 모르겠다. 아침해를 보면서 술 깨고 저녁해를 보면서 술 퍼마시는 이헌태는 어떻게 아침해, 낮해, 저녁해를 평가해야 합니까. 니는, 자연의 최대 축복인 해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다. 너무 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느 때의 해가 좋습니까. 태어난 순서대로 보면 아침해가 가장 큰 형님, 낮해는 둘째, 석양은 막내라고 볼 수 있겠죠. 이의없죠. 한몸에서 나온 3형제라서 다 좋습니다. 성질은 둘째인 낮해가 가장 더럽을 것 같죠. 생명의 왕성한 활동을 돕기는 하는데 간혹 한여름에는 지글지글 아주 끓는 게 그럴 때보면 꼭 미친 놈같아요. 아침해가 그래도 형님 노릇하듯이 세상도 깨우고 일을 시작하도록 독려도 하고. 막내 저녁해는 배짱이처럼 통키타나 치면서 낭만적인 생활을 하죠. '해 3형제' 좋습니다. 어둠은 어둠대로 밝음은 밝음대로 다 필요한 것 아닌가. 어둠은 사람에게 억지로 휴식을 하도록 하고 밝음은 억지로 일하도록 하고. 해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 휴식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하니까. 이 얼마나 신비로운 신의 조화인가. 해가 아들이면 달은 딸인가. 그러면 '3남 1녀' 구만.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라. 네.
4) 틱낫한 스님의 철학을 자주 인용한다. "나우 앤 히어". 지금 그리고 현재가 행복의 근원이라는 것. 나중에 이원 선배가 캐신 향긋한 더덕을 보자 "나중이 어디 있어"라며 받아 나와 나눠 먹었다. 먹고 싶었지만 참고 고이 고이 간직했던 사람들이 아연실색하며 망연히 쳐다볼 뿐. 아 그 철학이 그럴 때 써먹는 구나.
동화 '개미와 베짱이' 아시죠. 내일을 위해 저축을 해야 하는데. 오늘만 생각하면 미래가 없지 않나. 틱낫한 스님도 베짱이편인가. 그런 면도 있고 아닌 면도 있고. 불교나 도교나 이쪽 분들은 미래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더라구요. 그냥 현재의 행복이 최고라는 생각을 갖고 있더라구요. 현대인에게는 참 큰 도움이 되기는 되는데 출가하실 분이외의 사람들이 따라서 하다가는 황당한 처지에 놓일 지도 모르죠. 제가 뭐 압니까. 알아서 사세요. '지금과 이곳'의 깊은 뜻을 잘 생각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한심한 인간, 내지는 인간말종이 될 수도 있네요.
서양에서도 현재 존재 그자체의 기쁨을 노래한 분이 한 두분이 아니더라구요. 한 분만 소개. 휘트먼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를 바꾸어서 "나는 존재한다 이것으로 족하다"고 말했더라구요. 싱겁기는. 이분이 동양사상에 물들은 분같아요. 더 구체적으로 나가면. '월든'의 작가 소로우는 " 해가 뜨는 것을 실제로 돕지는 못했지만 해가 뜨는 현장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니었던가". 매사를 만족하고 삽시다.
나도 하나 만들어야지. "나는 존재한다 고로 노가리 깔 수 있다". 제가 가칭 '전국 노가리까리 협회' 회장입니다.말 되나요. 살아서 노가리를 깔 수 있는 (술안주 노가리와 다름) 그 자체가 커다란 행복이라는 심오한 뜻이 담겨있습니다. 헛소리 하지 말라구요. 제가 진짜 명언을 하나 만들겠습니다. "나는 산에 간다. 고로 나도 존재한다" 제가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게 제 인생의 전부이며 삶의 근거이고 존재이유라는 뜻이죠. 너무 멋있는 말이다.
말 만들면 끝도 없습니다. 미국 대통령 부시는 "나는 전쟁을 벌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가수 조용필 "나는 노래를 부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의 마누라는 "나는 남편을 하늘같이 받든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혹은 나의 새끼들은 "나는 아버지를 공경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날이 언제나 오려나. 이헌태 니, 정신차려라. 그날은 결코 오지 않는다. 니가 마음을 바꾸어라. "나에게는 가족이 있다. 고로 존재한다"로. 네, 알겠습니다. "나에게는 술이 있다. 고로 존재한다". 이것은 더이상 양보 못해. 알아서 살아라구요.네.
더덕이 빈속에 들어가니 온몸 구석구석이 더덕 향과 더덕 기운으로 순식간에 퍼지는 것을 느껴보셨습니까. 한마디로 '쥑입디다'. 산삼-장뇌삼-인삼-더덕-도라지의 순. 인도의 카스트제도처럼 식물도 서열이 있네. 어떤 놈은 산삼으로 태어나고 어떤 놈은 도라지로 태어나고.더러워서.야, 식물이 무슨 불평이냐. 어떤 놈은 산삼먹고 어떤 놈은 도라지먹고라며 인간들이 불평해야지. 중요 정보하나, 저는 산삼도 먹어봤어요. 모두 다 먹어본 셈이네.그런데요 더덕도 마음 먹기에 산삼이지뭐. '일체유심조'
7.
긴 능선을 걸어 오는 동안 앞서 가던 일행이 숲에 둘러싸인 호젓한 공간을 만나 시낭송회를 갖고 있었다. 낭자인 이수연씨가 시를 낭송했다. 얼마나 멋진 산행 팀인가.(수연선생 이 글을 읽으면 그때 낭송한 시를 보내주세요)
오전 7시 41분, 능선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청소년 교육원 삼거리에 도착했다. 이정표에는 육십령으로부터 2.2킬로미터 왔고 서봉까지는 2.13미터가 남았다고 적혀있다. 딱 반이네. 오전 8시 33분, 좌우의 크고 작은 산들의 호위를 받으며 긴 능선을 지나온 끝에 고개를 쳐들면 서봉을 바라보며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는 봉우리까지 왔다. 할미봉에서 내려와 능선따라 대략 두시간 가량을 걸어온 셈이다. 평평한 능선이라서 그런지 거리상으로는 꽤 멀리 온 것같았다.
서봉을 호위하는 장엄한 봉우리는 다양한 형상의 기묘한 바위들로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금강산과 설악산이 대표적 바위산이듯이. 한국의 화강암 바위산은 도인들을 연상시키면서 흰뼈를 드러내며 신비성과 영겁성을 던져준다. 되풀이 말하지만 "역시 국립공원일세".
해발이 높아지면서 굴참나무가 천하장군처럼 산을 평정했다. 철쭉꽃도 드문드문 군락을 이루며 만개, 산을 보랗빛으로 수놓고 있었다. 고지대의 산이 철쭉꽃 덕분에 다소 훤하게 빛나고 있었다. 둥글레차는 마셔 보았지만 둥글레 꽃은 처음 보았다. 호박이 주렁 주렁 달린 모양이 참으로 이상하고 신기했다. "어떻게 저런 형태를 취할 수 있을 까". 돌연변이.
이런 얘기 해야 할까, 진짜로 고민 많이 했습니다. 수 없는 밤을 두고 고민했습니다. 혁명을 해야 하나. 그것이 아니고요. 다름이 아니라 산에서 큰 볼일을 보는 것 말이죠. 다이아몬드가 박혔지만 사방으로 꽉 막힌 화장실보다는 대자연의 품속에서 대자연을 감상하면서 볼 일을 본다는 것은 너무 멋지거든요.
'떡가리', 더 이상 말하기 거북스러워 거론하지 않겠습니다만. 예전에는 수십개의 다양한 표현을 썼다고 하는데 우리 백두대간 팀은 "밀어낸다"는 표현을 많이 쓰죠. 아시겠죠. 뭔 지. 탁무권선배 왈, "대간길에 똥을 누는 것은 자신의 분신을 남기는 것이야'. '밀어낸다'는 말은 저속하지 않고 불쾌하지 않고 참 좋은 말 같아요. 화장실을 '밀어 내는 곳' 내지는 '푸쉬룸'으로 부르는게 어떨지. 오줌 누는 것을 소변, 똥 누는 것을 대변이라고 하잖아요. 순한글로는 작은 볼일. 큰 볼일로도 구분하지만. 밀어내는 것은 대변이죠. 소변은 뭐라고 하나. '쏟아내기' 별로인 것 같아요. 그냥 '오줌'이나 '소변'이 편하겠네요. 대변만 '밀어내기'로 합시다.
얼마전 청평댐 부근 간이화장실 외벽에 안내글이 하나도 없고 벽에 화투의 똥십그림만 그려져 있더라구요. 그 재기, 놀라워라. 전에 그랬죠 불가마좌변기가 나왔다고. 한국이여 화장실로 세계를 제패하라. 별첨. 저희들의 '백두대간 한걸음 걸어가기' 사이트에 윤영회원께서 '다불유시(多 不 有 時)'가 무슨 말이냐고 퀴즈를 냈더라구요. "많다, 아니다, 있다, 때". 시간이 있지만 많지 않다는 뜻인가. 연구 백날 해보세요. 정답은 'WC'.
저도 백두대간 산행 때마다 꼭 한번씩은 분신을 남겼거든요. 술 많이 마시고 속이 안 좋은 날은 두 번까지. 숲에서 보는 볼 일은 너무 시원하고 좋죠. 허정균선배는 지난 겨울 지리산산행때 흰눈이 덮힌 바위위에서 산천을 내려다 보면서 밀어냈다고 하네요. "흰색과 누른색의 조화"라고 하더라구요. 참 기가 막혀. 무슨 동양화 그리십니까. 하기야 하얀 종이위에 누른 빵하나. 예술이겠다.
그게 예술이 아니고 그런 장소에서 밀어내면 그야말로 예술이죠. 이해가 잘 안가시죠. 이런 것은 이해가 안가도 됩니다. 백두대간 종주기를 쓰면서 섹스얘기를 집어넣으며 저질로 만들더니 이제 똥까지 나오고 갈 데까지 가는 구만. "이쯤하면 막가자는 거죠". 죄송합니다. 이런 내용을 담아서. 사실 대간산행에서 똥얘기를 빼놓을 수 없거든요. 누구나 치르는 통과의례거든요. 태어나고 죽는 것처럼. 그 분신들이 자연의 품속에 영원히 안기며 만물의 생사와 윤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지. 되었다구요. 알겠습니다.
변명한마디 할께요. '열하일기'를 쓴 이조말의 천재적 선각자 연암 박지원 선생아시죠. 그분도 자시의 열하일기를 쓰면서 "나는 못된 백성이요 문단의 쓰레기"라고 말씀하셨어요. 박지원의 천방지축의 글 때문에 정조대왕께서 가벼운 투의 글을 쓰지 말라며 대대적인 '문체반정' 운동을 펴기까지 이르렀죠.
또 담배예찬론으로 유명한 중국인 임어당 선생도 자신의 '생활의 발견'이란 책이 "독창성이 없는 속물"이라고 비판을 받자 맞습니다, 맞고요라고 답했죠. 제가 늘 말씀드렸잖아요. 제 백두대간글은 심심풀이 땅콩용 잡글이라구요. 그래도 열하일기나 생활의 발견처럼 읽으면 가슴에 짜릿한 감동이 올 걸요. 안 오면 할 수 없고. 그 놈이 잘 못 되었지 내 글이 잘 못되었냐. '의식마비환자' 내지는 '감정마비환자'지 뭐.
한가지 상식. 중세 소동파, 근대 박지원, 임어당 모두다 한 계열의 사람이죠. 임어당은 소동파를 너무 흠모해서 평전을 썼구요. 이조말 실학자 박제가는 "박연암 선생은 현재의 소동파"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 이헌태를 끼워주면 좋은데. '소-박-임-이' . 캬, 그림 좋다.
똥얘기 했다고 너무 욕하지 마세요. 달마로 시작되는 선종의 5가의 하나인 운문종의 창시자인 중국의 운문선사(862-947년)는 똥얘기에 그친 게 아닙니다. 제자가 "스님 부처가 뭡니까"라고 묻자 운문은 "부처, 그건 말라비틀어진 똥막대기야"라고 대답했죠. 깜짝 놀랐죠. 부처님을 그렇게 욕되게 할 수가 있을까. 스님 자격 박탈. 아니라구요. 깊은 뜻이 있었다구요.
운문스님의 요지는 부처의 존재를 신비주의로 몰고 가지 말아라는 것. 부처란 쓸모없는 똥막대기라는 것. 부처 같은 것에 매달리지 말고 현실이나 똑바로 파악하고 수행증진하라는 것. 이 스님의 말씀 가운데 너무 멋진 게 있어 하나 더 소개. 어느 보름날, 운문이 제자들을 불러 모아 물었대요. "오늘 이전은 묻지 않겠다. 오늘 이후에 대해서 누가 말해보라". 이에 제자들이 묵묵부답. 운문 왈 "항상 좋은 날이지". 썰렁. 항상 자유로운 자에겐 내일 이후에도 역시 자유롭고 항상 좋은 날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역사와 인생의 주인공은 역시 본인. 아셨죠. 운문스님은 대체로 '자기 자신'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신 분이구만요.
'자유'란 말이 나오면 서양철학자가 생각나죠. '실존주의는 휴머니즘' 또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는 "우리는 자유로 선고되었다"고 단언했죠. 선고는 재판정에서 나오는 말인데. 말도 안되죠. 인간이란 각본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배우처럼 반드시 어떻게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고 행동해나감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위한 각본을 만들고 그에따라 행동하는 열려있는 존재, 즉 실존이라고 톤을 높였죠. 국민여러분, 두 분의 말씀을 잘 듣고 자기의 인생을 스스로의 힘으로 적극적으로 헤쳐나갑시다.
이헌태가 가장 좋아하는 자유는 뭔 줄 아세요. 중국의 고대사상인 '적래적거', '무애자재'. 천지에 몸을 맡기는 자유방랑의 경지. 생각만 해도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하죠. 현대사회에 안 맞는 패턴이라구요. 혹시 21세기 생명시대로 들어가면 맞을 지 아세요. 아니다고요. 알겠습니다. 니나 잘해. 나는 이대로 살래.
생사 얘기가 나왔으니 걷다가 보니 큰 참나무가 한 그루가 있었는데 반쪽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뻗어나가고 있고 반쪽은 죽어 버렸더라구요. 이원 선배에게 "이 나무는 죽는다고 봐야합니까, 살수 있다고 봐야합니까"고 물으니 대답은 "언젠가는 죽겠지". 나 원 참. 이런 것을 두고 내 입만 아프다는 것. 이런 문답을 보고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우문현답' 혹은 '현문우답' 내지는 천방지축 갈피를 못잡는 '동문서답'이 아니고요. '우문답답' 다시말해 어리썩은 질문에 역시 답답한 대답. 질문한 내가 바보다는 얘기죠. 제일 좋은 것은 '현문현답'인데 이것은 고승들의 선문답 수준이겠죠.
이 나무는 생과 사가 함께 있구만. 지난 번에 본 하나의 참나무에 매달리 낙엽과 새싹처럼. 사실 동물은 생과 사가 함께 존재할 수 없는데. 죽었으면 죽은 것이고. 다만 죽은 뒤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은 계셨지만.
한승주 주미대사가 예전 외무부장관시절, 어느 분이 "북한을 적으로 봐야 합니까, 아닙니까"라고 묻자 "때에 따라서"라고 답했다고 하네요. 질문자가 "교수출신인 당신이 만약 시험을 출제해서 그 같은 답을 하면 어떻게 처리하겠느냐"고 하자 한 대사는 "그런 문제는 출제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네요. 남한 국민들 사이에서 "북한은 절대로 적이 아니고 우리 동포다"라는 말이 학실히(?) 나오도록 북한지도부는 좀 잘 하세요. 아이구, 답답해. 그러니 북한 지도부 잘 못 만난 동포들이 불쌍하다는 말이 자꾸 나오잖아요.
8.
오전 9시 39분 드디어 해발 1492 미터고지인 서봉에 올랐다. 덕유산에 들어선 이후 첫 정상급에 해당하는 높은 봉우리이다. 동서남북 둘러보니 장엄하고 기품있는 덕유산의 전경이 일망무제로 끝없이 펼쳐진다. 고지가 높아서 꼭대기를 에워싸고 있는 숲에는 초록빛 물결에다가 더러는 단풍같이 홍조를 띤 나무들이 적잖게 분포되어 있었다. 걸출한 암릉도 한껏 더 멋을 부리고 있었다.
서봉에 올라서 푸르디 푸른 덕유산의 초록 산을 둘러보니 김동명의 '우리말'이란 시가 딱 들어맞았다. "?너는 동산같이 그윽하다. 너는 대양같이 뛰논다. 너는 미풍같이 소곤거리다. 너는 처녀같이 꿈꾼다" '요요한 산이로다'라는 야릇한 표현을 쓴 신석정의 '슬픈구도'라는 시의 한구절이 생각난다.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천,지,인 3합. 산은 요요한게 으뜸일지 몰라도 유대장님은 "삶은 여여(如 如)해야한다"고 늘 주장한다. 한때 유행한 장난감 이름이 '요요'였는데. '요요나 '여여'나. 그게 그거지 뭐.
'여여함'이란 무엇일까. 오쇼 라즈니쉬에 따르면. "하늘은 모든 것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그 무엇도 담고 있지않다. 하늘은 그대를 감싸면서도 동시에 그대에게 손끝하나 대지 않는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면 하늘은 그것을 위해 자리를 양보한다. 흰구름이 몰려와도 마찬가지다. 하늘에는 어떠한 차별도 어떠한 선택도 없다. 그저 받아들이기만 한다. 그것을 붓다는 타타나, 여여라고 부르고 있다. 하늘은 타타타의 상태로 존재한다. 하늘은 영원하고 항상 변함이 없다. 하늘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이슬처럼 신선하다. 그러니 하늘을 명상하라. 그대가 외부의 하늘로 향한다면 기도가 되고 내면의 하늘로 향한다면 그것은 명상이 된다"
서봉에 커다란 헬기장이 있었고 그 귀퉁이에 자리를 펴고 아침을 먹었다. 라면도 끓여먹고 김밥도 먹고 과일도 먹고. 남녘 대간길에서 지리산 천왕봉 바로 밑 제석단 물맛보다 더 좋은 최고의 물맛을 자랑하는 석간수도 마셔 보았다. 이현주가 미리 도착해서 100미터 밑으로 내려가서 떠온 물이다. 물맛이 일품이었다. 신선들이 마시는 불로장생수가 아닐까. 대장께서 시간이 없다며 나보고 석간수 샘에 내려가지 말라고 한다. 왔다갔다 대략 10분이상 걸린다면서. "슬프다". 왜 말려.
박현수선배와 이수연씨가 곤한 잠을 잠시 청하기 위해 편한 자세로 누웠다가 대장이 갈 길이 멀다며 재촉하는 바람에 눈치를 보며 슬며시 일어선다. 나는 "산행 중 한번은 잠을 자기로 했다"면서 이들 두 분을 두둔했다가 대장한테 박살이 났다. 에고고. 앞으로 남 도우는 일은 하지 않기로 맹세했다. 히히히
오전 10시 7분 다시 출발했다. 정상부터는 직각에 가까운 긴 철제계단이 아래로 놓여 있었다. 철제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면서 살펴본 주위는 신선들이 사는 선계 모습을 빼닮았다. 진초록으로 물든 산중턱 아래와 달리 햇빛을 너무 세게 쬐었는지 평원처럼 펼쳐진 나무와 풀들이 간혹 붉은 빛깔을 머금은 채 온통 연녹색 물결을 이루며 출렁이고 있었다.
오전 10시 56분쯤 동쪽방향으로 바로 옆 봉우리인 1507미터 남덕유산에 도착했다. 서봉으로부터 1.2킬로미터 떨어져 나란히 친구나 형제처럼 보이는 남덕유산은 덕유산 국립공원의 남쪽일대에서 대장격인 산이다. 남덕유산은 16킬로미터 떨어진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남녘의 높은 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빙둘러 경상도쪽으로는 금왕산, 황석상, 괴관산, 오봉산, 삼봉산으로 이어지고 전라도쪽으로는 적상산, 향적봉까지 완전 포위당했다. 아니 산들이 호위하고 있었다. 포위당했나 호위받고 있나.
남덕유산 정상에서 본 경치도 가관이었다. 가슴이 탁 트이고 속이 다 후련했다. 탄성을 내지르면서 오전 11시 3분 출발, 마지막 피치를 올렸다. 고지에 웬 파리떼가 그렇게 많은 지 .파리떼들이 뭐한다고 이런 경치 좋은 곳까지 떼거지로 몰려왔는지. 이해가 안가네. 더러운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인간 쓰레기들이 있어서 그런가. 죄송합니다. 파리들이 피서 왔나. 사람들처럼.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파리들이 있나. 여름이 다가오면서 벌과 나비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퀴즈, 남덕유산 정상에 세워진 표지석은 누가 세운 것일까요. 놀라지 마세요. 이번 산행 가이드 백선배가 세운 것이라고 하네요. 직접 글씨까지 써서. 글씨도 너무 멋져요. 백선배는 거창군 주변의 26개 산에 표지석을 세웠고 백두대간 위에는 남덕유산, 삿갓봉, 무룡산등 8곳에 세웠다고 하네요. '무심산악회'라고 적혀 있더라구요. 인근 헬기장까지 헬기에 실어다 정상까지 사람들의 어깨로 짊어지고 왔다고 하네요. 박수, 짝짝짝. 이런 분을 옆에서 모시고 함께 산행을 하다니. 나도 영광.백선배는 좋겠다. 죽은 후에도 천년 만년 이 표지석이 남을테니까.
남덕유산을 떠나서는 서로 말도 하지 않고 귀신에 쫓기듯 걸음아 나살려라 하면서 뒤도 안돌아보고 부지런히 달렸다. 간혹 불볕 더위가 있었지만 대체로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공기도 깨끗하고 맑았다.
대간길에 김해산악회가 붙힌 안내리본에 '자연을 벗삼아'라는 표현이 있었다. 맞습니다, 맞고요. 옛날 조상들은 자연을 친구 삼아 깍듯이 대했죠. 생명사상이 충만했다는 반증이 아니겠어요. 조상들이 고리타분하고 골통들인 줄 알았는데 요즘 인간들보다 더 훌륭했구먼. 모두다 환경주의자라고 볼 수 있죠.
9.
대간 길에서 '2003 대구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8월 21-31일)'를 알리는 안내리본이 달려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누가 붙였는지 몰라도 그 마음과 정성이 갸륵하고 기특했다. 서울의 방송이나 신문, 인터넷등 언론매체에 돈을 주고 대대적인 광고를 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런 사소한 곳까지 붙여놓은 정성에 더욱 감동했다. 부디 성공적인 행사가 되길 바란다. 전국에 사는 대구경북출향인 여러분, 사시는 곳마다 이번 대회홍보를 적극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대구시에 홍보물을 우편으로 달라고 해서 마을마다 붙입시다. 나의 고향 대구. 한번씩 고향에 내려가면 지역경제는 거덜나 있고 수백명이 죽은 지하철사고로 실의에 빠져있고 거리사람도 한결같이 기운이 쭉 빠져있는데. 모두들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시간에 쫓겨 남덕유산 정상에서 대락 30분가량 내리막길을 이를 악물고 무작정 뛰다시피하면서 계속 내려갔다. 오전 11시 39분 남덕유산과 삿갓봉 사이에 있는 월성재(1240미터)에 도착했다. 남덕유산으로부터 1.4킬로미터 왔고 삿갓재골대피소까지는 2.9킬로미터를 더 가야 한다. "어 휴" 한숨이 절로 났다. 이현주는 베낭에 '삿갓대'라는 나물을 잔뜩 매달고 있었다. 백선배에 따르면 고급 산나물이란다.
월성재에서 너무나 꿀맛 같은 참외를 맛있게 먹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허정균선배가 야생화를 찍느라 도무지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두분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허선배를 기다렸다가 합쳐서 월성계곡을 통해 황점 마을로 바로 하산하기로 하고 나머지 14명은 삿갓봉으로 계속 진격하기로 하며 나는 오전 11시 53분 다시 길을 나섰다.
능선 길에 덕유산을 바라보니 태양에 의해 드넓게 형성된 햇빛과 골에 비친 그림자가 서로 영역을 나누면서 환상적인 음양쇼를 연출하고 있었다. 저 따가운 무한대의 일조량은 식물들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음식이겠지. 청소년기에 많이 먹고 쑥쑥 커듯이.
정오를 지나 오전 12시 55분 드디어 삿갓봉(1418미터)에 다다랐다. 산들이 초록 옷을 입은 가운데 저 북쪽 덕유의 맹주인 향적봉과 남쪽의 남덕유산이 모두 다 보였다. 삿갓봉이 덕유산의 센터같았다. 결론은 버킹검. "호쾌, 유쾌, 장쾌" 그 자체였다. 신이시여, 이 아름다운 자연을 저에게 왜 보여주십니까. 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이상 바랄게 없습니다. 이헌태 진짜가. 사실 아닙니다, 아니고요. 세계 무전여행할 돈 1억만 빨리 생기게 해주십시오. 집 팔아 가면 된다고요. 그건 너무 가족에게 몹쓸 짓이죠.
실화를 하나 소개해 드릴께요. 1981년도 대학 일학년 여름방학때 당시 돈으로 겨우 교통비에 불과한 2만 5천원들을 달랑 들고 친구들과 제주도에 여행을 갔어요. 목포에서 배를 기다리면서 배낭에다가 낚시대를 맨 어떤 젊은 분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분의 말씀에 모두들 입이 벌어졌죠. "집 전세돈을 빼내어 세상을 떠돌며 구경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깜짝놀라 "가족들은 어떻게 하고요"라고 물으니 "알아서 살겠죠"라고 답하더라구요. 사실인 것 같더라구요. 나 원 참. 이런 사람들은 타고난 방랑자입니까, 아니면 가족을 팽개친 미친 놈입니까.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후자겠죠. 내가 낸 질문가운데 가장 쉬운 거네. 내가 봐도 쉬운 질문이네.
10.
삿갓봉에서부터 저 먼발치아래 놓여있는 삿갓골재대피소까지는 숨이 턱에 닿일 정도로 바삐 내려왔다. 정신없이 하산했다. 오후 1시 23분에야 도착했다. 언젠가 산행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운해를 보여주었던 대피소에 다시 오니 감개가 무량했다. 옛 동무는 어디가고. 그 아름다운 운해는 어디 가고 숲만 무성한 게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 재라서 계곡에서 불어 올라오는 바람은 너무 너무 너무 시원했지만.
등산화를 벗고 맨발에 풍욕을 한뒤 바로 하산했다. 대피소 바로 밑 선비샘에서 갈증을 풀고 뛰다시피하면서 내려왔다. 계곡은 매미소리만 없을 뿐 완연한 여름이었다. 설악산의 비경어린 계곡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청아한 물 소리, 멋진 바위, 초록 숲, 맑고 깨끗한 공기. 내 마음의 티끌이 말끔하게 씻겨나가는 듯했다.
지칠 정도로 하산하다가 마을을 앞두고 있는 계곡 초입에 들어섰다. 산길을 벗어났다. 이유를 아시겠죠. 대미를 장식하는 집단목욕시간. 속세의 때와 등산후의 끈적한 땀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신성한 의식. 신성하기는 뭐가 신성하냐고요. 씻는 것은 무조건 신성하죠. 예전 조상들은 제사를 지낼 때 몸과 마음을 청결히 했다죠. 이헌태 주장대로 하면 목욕탕이나 사우나탕은 거의 교회나 사찰 수준이겠구만. 유영래 대장은 하산하면서 계곡 물소리가 들리자 "이헌태, 계곡 물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떨릴텐데"라며 나의 마음을 콕콕 정확하게 읽었다. 계곡물이 너무 차서 잠시, 잠시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이대로 영원히. 이 재미로 산에 오는 거지.
작년 겨울 눈덮힌 이 계곡에서 저 위에 펼쳐진 덕유산자락을 보았을 때는 휑한 모습이 다 드러나며 히말라야의 설산 모습이었다. 허나 지금은 숲으로 뒤덮여 산의 우람한 윤곽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겨울산은 나신(裸 身)이며 삐다구산. 금강산은 겨울에는 '모두다 뼈'라는 뜻의 개골산이라고 부른 이유. 여름산은 초록 옷을 입었다. 겨울산이 도닦는 도인이고 여름산은 한창 자라는 청소년이다.
오후 2시 57분 북상면 월성리 황점마을에 도착했다. 시작이 있으면 언제가는 끝이 있는 것.'유시유종'. 이헌태, 말 잘 만드네. 혹시 이런 말 있나모르겠네. 마을에 당도, 골인지점에 서니 너무 좋고 대견스러워 나혼자 박수를 쳤다. 이전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깜깜한 한밤중이어서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는데, 대낮에 보니 덕유산자락의 숲에 폭 파묻힌 아담한 마을이네.
전세버스로 백선배가 예약한 식당에 가서 술도가에서 제조해서 가지고 온 순농촌막걸리, 마당에서 키우는 닭고기, 개고기, 닭죽과 보신탕으로 속을 채웠다. 이 맛 서울에는 찾기가 불가능. 막걸리가 은근하게 취하네. 취한 상태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오후 8시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날에 도착했다. 집에 오니 가족들이 반긴다. 따식들, 아버지가 잘 해주지도 못했는데 다들 반겨주니 눈물나도록 고맙다. 이헌태, 산에 가도 좋고 집에 가도 좋고. 아주 땡잡은 행복한 인생이구만.
한 친구가족은 KBS방송의 '병상24시'를 자주 본다고 한다. 불치병에 걸려 온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는 그런 암담한 가정의 사연이 담긴 프로그램을 보면 사지 멀쩡하게 사는 것만 해도 행복함을 느끼지 않을까. 장애자도 마찬가지. 숨을 쉬고 있는 것 만해도 축복이겠지.
"현자란 어떤 사람인가, 모든 것에서 배우는 사람이다/ 강자란 어떤 사람인가.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다 / 부자란 어떤 사람인가, 자기의 운명에 만족하는 사람이다".안녕. (5월 17.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