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월 18(토), 19(일) 양일간 '멀고도 먼, 힘들고 힘든' 백두대간 종주를 향한 열여섯번째 산행에 나섰다. 하나 빠졌구나, '좋기도 좋은', 아니 '좋기도 너무 좋은', 아니 '좋기도 너무 너무 너무 너무 --- 너무 좋은'. '좋다'에서 남자 성기 이름인 뭐가 나오고 '보다'에서 여자 성기 이름인 뭐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게 개인적 짱구. 아니먼 그만이고. 시작부터 저질로 시작하는구만. 아시죠, 이헌태의 백두대간 종주기는 '미성년자 불가'인 것을.
'환상의 기차여행, 기가찬 기차여행'. 기차여행이 그래서 기가찬 여행이구만. 이번에도 기차여행을 시도했다. 나, 유영래 대장님과 심상준 총무를 비롯 6명의 선발팀은 서울역에서 낮 12시 15분 부산행 무궁화열차를 타고 충북 영동으로 향했다. 서울역 출발시간을 맞추지 못한 허정균 선배는 방향을 돌려 허겁지겁 따라와 아슬아슬하게 영등포역에 도착했으나 경황이 없는 바람에 두대의 기차가운데 서울역으로 귀경하는 기차를 잘못 탔는 모양이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 우째 이런 일이
허선배는 집에 컴백했다가 아들하고 배드민턴치고 여유 부린 뒤 다시 저녁 11시 전세버스로 오는 후발대에 합류했다. 자주 가족을 팽개치고 산으로 떠나는 대간 산행팀, 다 죄인들이지 뭐. 허선배는 잠시나마 자식한테 투자를 한 셈이구만. 배신자. 조직을 배신한 자의 끝은. 가족에게 인기있는 가장이지 뭐. 정답. 딩동댕. 이헌태 뭐하냐. 불가항력,불가피하게 가족한테 잘 한 꼴이 되었지 뭐. 그럼 용서해주고.
입석표를 끊었는데 등산객을 위한 것, 짐 많은 승객을 위한 것인지 어쨌든 객차 내 화장실옆에 앉을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확보되어 있는 개량차를 타게 되어서 모두들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오히려 좌석표를 끊었을 때 보다 더 오손도손 잡담도 나누고 귀한 뽕열매주 (이게 진짜 뽕주인데)도 한잔씩 걸치면서 운치있고 낭만적인 여행을 하게 되었다. 기차내에서 이렇게 술을 마셔도 되나요. 못 말리는 '술 산악회'구만. 가수 현철의 '앉으나 서나 당신생각'이 아니라 '앉으나 서나 술'이구만.
돈도 절약되고 '특실급 여행'도 하고 이거야말로 횡재가 아닌가. 늘 보면 이헌태는 사소한데서 너무 행복해 하는 것 같다구요. 정신병자 수준이라구요. 그런 병은 괜찮지 않을까요. 이헌태가 이름 짓기를 '과대행복증'이라고. 이 병의 바이러스는 인류 모두에게 확 번지면 좋을텐데. 이헌태는 사는 게 즐겁다, 또 인생이 행복하다. 거의 또라이네. 어떻게 아셨죠. 저는 달걀 후라이도 좋아하고 행복 또라이도 좋아하죠.
공자님 말씀만 생각하면 이헌태는 배가 부르고 부러울게 없고 거칠게 없다. 공자 '술이' 편에 보면 공자왈, "나물죽을 먹고 찬물을 마시며 팔을 베고 누었을 망정 즐거움이 또한 그 곳에 있도다. 의롭지 않은 재물이나 지위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은 뿐이다"
이헌태는 인터넷을 통해 공짜 영화도 많이 보죠. 마을이동도서관에서 최신 베스트셀러까지 책을 일주일에 세권 공짜로 빌려 보죠. 백두대간 종주하면서 좋은 산천을 구경하고 건강도 지키죠. 가끔 별미로 설악산 대청봉의 정상에 올라 신선이 되어보지만 비용은 4만원 정도 밖에 들지 않죠. 이헌태는 한달동안 딱 10만원만 주머니에 들어있어도 행복하죠.
제가 그랬죠. 돈 많다고 행복하면 세상은 벌써 무너졌다고. 신이 인간을 참 잘 만들었다고.세상사람들이 돈 안 들여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이런 방법을 너무 모르고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알아도 행동으로 안 옮기는 것 같아요. 쪼다 병신, 등신들. 독재자가 있어 누가 이헌태처럼 못 살게 하나. 행복이란 밥상만 차려 주만 되지. 젓가락질을 해서 입까지 넣어주어야하나. 너거들대로 살아라, 지만 손해지.
이헌태의 이같은 행복감, 태평감 뒤에는 감사의 마음도 한몫하죠. 모 방송국 '병원 24시' 보셨죠.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만해도 감사 또 감사, 행복 또 행복.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라고 말했고 독일의 문호 괴테는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고 했다고 하네요. 유명한 사람이 했다고 맞는 게 아니고 그 말이 맞잖아요.
행복하면 천상병 시인이 떠오릅니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 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 더구나 하느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또 하나 더 필요하다고 하면 역시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인 프랑스의 볼테르의 '관용론'이죠.
볼테르 왈, "종교는 우리 인간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그리고 죽은 후에도 행복해지기 위해 만들어졌다. 내세에 행복한 삶을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현세의 삶을 우리 인간의 비뚤어진 본성이 허락하는 범위안에서 행복하게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관용을 알고 베풀 줄 알아야 한다" 너무 멋진 말을 해서 귀엽구만. 볼테기를 뽀뽀 한 번 해 주고 싶다. 볼테르야.
'감사론'에 '관용론'까지 합치면 천하무적의 '행복론'이 탄생한다고 봐야죠. 돈 더하기 권력 더하기 명예 더하기하는 식으로 '행복론'이 아니라니까요.
이헌태도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은 기독교의 '사랑론'이 최고의 가치이죠. 불교에서는 자비이고. 이게 어려워요. 고린도전서 13장 13, "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이헌태는 하기 힘든 적극적인 행동인 '사랑론'은 천천히 실천하고 일단 하기 쉬운 '감사론'과 '관용론'만 갖고 당분간 살렵니다. 그것도 잘 운영해도 80점 짜리 '행복'은 이뤄지니까요. 잘났다, 잘났어.
최종 정리.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당신이 갖고 있는 것이 당신에게 불만스럽게 생각된다면 세계를 소유하더라도 당신을 불행할 것이다.". 이거 진짜 맞는 것 같아요. 역대 대통령이나 고위정치인, 재벌들 보면 행복한 것 같지도 않더라구요.
명언들이 대거 나오는구나. 나온 김에 보너스 하나. 서기 121-180년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가 쓴 '명상록'. 오랜 세월이 흘러도 아직 건재하죠. 구절구절이 다 옳은 얘기죠.
그 가운데 하나. "당신 앞에 놓인 고기나 맛좋은 음식을 보고 이렇게 생각해보라. 이것은 어떤 물고기의 시체이고 이것은 어떤 새나 돼지의 시체다. 팔레르노 포도주도 결국에는 포도송이에서 짜낸 즙에 불과하며 자줏빛 의복도 조개에서 얻은 피로 양의 털을 물들인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사물을 바라봄에 있어서 그 본성을 꿰뚫게 한다. 당신은 바로 이런 사고방식을 당신의 인생전체에 적용시켜야 한다. --- 왜냐하면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이야말로 이성을 뒤집어 놓는 가장 위험한 것이며 가장 신비하다고 확신하는 대상이야말로 가장 기만적인 이기때문이다"
우리들은 이 명언에서 인생의 본질을 아셔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목적은 행복에 있다"고 했고요, 마르쿠제가 "모든 사람의 인생론은 결국 행복론에 있다"고 했잖아요. 공자하고 행복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죠. 아닙니다, 아니고요. 공자의 철학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는 지식이란 '인간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지혜란 '사람들의 행복을 돌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이의제기, 인생의 본질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 황제님의 깊은 뜻은 알겠지만 사례가 너무 비위를 상하는 것 같아요. '고상한 말씀'에 '비위 상한 비유'로 정리되겠네요. 앞으로 횟집 이나 고기구이 식당에서 회나 고기 먹겠습니까. 다 시체들인데. 으웩. 토하겠다. 이헌태. 니 뭐하노, 미친놈.
실내흡연장소가 이제 사라져 가겠네요. 기차도 내부는 완전 '금연'으로 지정되어 있어 골초들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닌 모양이다. 골초와 골치. 사촌간이네. 사실, 골초들은 골치 아픈 사람들이죠. 담배 피우는 사람 옆에 가면 이제는 불쾌하더라구요. 이헌태, 담배 끊은 지 겨우 일년 지난 놈이. 3년 끊었다가 다시 피우는 사람도 많아, 이헌태 큰 소리 치지말고 조심해. 고개 숙이며, '네'.
골초들이 기차가 역에 일시 정차할 때 마다 플랫폼에 우루루 내려가서 '쪽쪽' 피우는 모습이 측은하게 보였다. 하기사 요새는 웬만한 빌딩도 금연으로 정해져서 저희 회사가 있는 테헤란로 빌딩가에는 빌딩 건물에 나와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는 와이셔츠 무리들을 자주 볼수 있다. '불쌍한 인간들'. 한국담배인삼공사는 회의할 때 재떨이 가져다 놓고 담배도 한대 피운다는데 진짜인가요. 꼭 그렇게 할 필요가. 뭐든지 지나치면 꼴불견인데.
이제는 금연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금연이 뜻이 달라졌데요. 아무 장소에서나 '쪽쪽' 하고(담배처럼 이것도 쪽쪽이네) 또 간혹 진도가 더 나아가는 것을 금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고 해요. 공개석상 소위,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중인환시 (衆人環視) '연애질' 하지 말라고. 그래서 '금연'이래요. 세상이 바뀌면 뜻도 바뀌는 구나. 젊은 동포들이 남의 눈치는 아예 사라졌고 부끄럼도 많이 없어졌다고 하네요. 저거들 끼리 좋아하면 그만이라나, 남의 이목을 보지 않고 산데요. 당당하게 사는 구만, 열심히 잘 살아라. 신세대 청년들은 담배 끊는 '금연'하랴, 뽀뽀 안하는 '금연'하랴. 바쁘네. 헛소리가 너무 길었나.
2.
확 트인 넓다란 수정 같은 유리창을 통해 본 가을은 '명경지수'. 바람도 산들산들 불고 햇살도 따뜻할 것 같지만 차안에서는 상상으로 느낄 뿐, 푸른 하늘에는 우유빛 뭉게구름이 떠있고 생기는 잃었지만 초록빛이 더 강한 산과 숲과 나무, 추수가 막 시작된 누런 들녘. 한마디로 '가을 기차 여행'. 이헌태는 정리도 잘하네.
술도 한잔씩 걸치고 또 창 밖의 가을 산하를 구경하느라 넋이 빠지기도 하고. 오후 2시 45분에 영동역에 도착했다. 역을 빠져 나오자 시내 가로에 두 줄로 도열해 있는 감나무가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빨간 감을 주렁주렁 매단 채. 감잎도 손바닥처럼 넓직한 게 후덕스럽다. 영동시내는 가을의 쿠데타군이 점령했는지 자그마한 시가지전체가 가을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서울에서 느끼진 못한 가을 냄새. 너무 좋다. 끙끙 더 맡아야지. 흠흠 더 느껴야지.
영동하면 노래가 있죠. 주현미의 '비내리는 영동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 문희옥이 부른 간드러지게 흥겨운 멜로디의 트로트 노래인 '사랑의 거리'가 생각난다. "여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 "
"1절. 여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 사계절 모두 봄 봄 봄 웃음꽃이 피니까/ 외롭거나 쓸쓸할 때는 누구라도 한번쯤은 찾아오세요/ 아아 여기는 사랑을 꽃피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
2절. 여기는 남서울 영동 연인의 거리/ 사계절 모두 뜨거운 바람이 있으니까/ 외로움에 지친 사람들 누구라도 한번쯤은 걸어보세요/ 아아 여기는 사랑을 꽃피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 ". 노래 좋다. 술잔이 넘치고 사랑이 넘치는 구나. 아, 좋다.
그 영동이 아니라고요. 한문도 틀리고. 충북 영동(永 同)은 서울 강남의 영동도 아니고, 강원도 영동(嶺東)도 아닙니다.
영남(嶺南)과 영동(嶺東)은 재를 기준으로 동쪽에 있으면 영동이니 대한민국에는 수천개의 영동이 있겠구나. 영동과 영남은 한문이어서 그런지 중국에도 그런 지명은 많다고 하네요. 어쨌든 충북 영동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면 더 분위기를 돋우는 곳일 것 같네요. 무주구천동도 영동에서 들어가니까.
역전앞 '영동 올갱이 식당'에서 이 곳의 명물 올갱이국으로 배를 채웠다. "캬, 맛 좋다." 영동의 명물은 감과 포도라고 하네요. 택시 두대로 나눠 타고 시내를 벗어나 20여분 가니 지난번 산행때 멈추었던 추풍령 고개에 놓인 노래비에 도착했다. 오후 3시 50분이었다. 이거 산행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구만. 곧 해가 져서 밤이 될텐데. 이것이 운명이고 숙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낮도 좋지만 밤도 좋다. 1925년, 서른도 채 못되어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와 자살하노, 아깝다) 1920년대 한국 대표시인 김소월은 '시혼(詩魂)'이란 시론을 통해 밤을 찬양했다. 도입부 잠깐 소개.
"적어도 평범한 가운데서도 물(物)의 정체를 보지 못하며 습관적 행위에서는 진리를 보다 더 발견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어질다고 하는 우리 사람의 일입니다. 그러나 여보십시오. 무엇보다 밤에 깨여서 하늘을 우러러 보십시오. 우리는 낮에 보지 못하던 아름다움을 그곳에서 볼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파릇한 별들은 오히려 깨어 있어서 애처럽게도 기운 있게 도움을 떨며 영원을 속삭입니다. 어떤 때는 새벽에 저 가는 고요한 달빛이 애틋한 한 조각 숭엄(崇嚴)한 채운(彩雲)의 다정한 치마귀를 빌어 그의 가련한 한 두줄기 눈물을 문지르기도 합니다. 여보십시오. 여러분 이런 짓들은 적은 일이나마 우리가 대낮에는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던 것들입니다."낭만이나 시는 낮보다 밤에 더 잘 생산되죠. 김소월은 '어둠의 자식'이네.
3.
추풍령 노래비가 세워진 도로에서 옆 길로 과수원을 통과하고 200여미터 나아가니 대간산길에 다다랐다. 북동쪽 방향으로 산을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20여분간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쉬지않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숲속 나무와 풀은 겨울 채비를 하는지 썩고 말라가고 있었다. 늙은 산, 죽은 산처럼 을씨년스런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반면, 서늘한 가을바람이 마구 불어 연신 쏟아나는 땀을 말끔히 닦아주고 있었다. 아, 시원한 가을이여. '가을바람이 자연 땀 탈수기' 이구만. 도토리가 대간 길에 이리저리 널려 있었고 빨간 맹감도 일행을 반겼다.
20여분간 계속 오르막을 타니 금산(해발 370미터)이 나왔다. 금산에 올라 서니 民族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와 또 추풍령휴게소도 아득히 보이고 그 남북으로 놓여진 도로 위를 씽씽 신나게 달려가는 고속버스들이 장난감처럼 마냥 귀엽다. 반대편에 우뚝 솟은 눌의산도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금산에 충격적인 채석장이 있었다. 금(金)으로 만든 산이냐 캐기는 왜 캐. 이제부터는 산에서 돌 캐는 것을 금(禁)해야 하겠구만. 그것도 천벌을 받으려나 정기가 담뿍 담긴 백두대간의 산을 . 쿵쿵쿵 쿵쿵쿵, 돌깨는 기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내 가슴에 못을 박는 구만. 지옥에서 나는 단말마의 고통소리처럼 들렸다. 와, 미치겠네.
대간 마루금의 '바로 그 산'을 금 그어 놓듯이 (그래서 금산인가) 짝 갈라서 마술가처럼 한쪽 산면이 싹 사라져 버리게 했다. 산꼭대기에서 보니 그 절벽 아래의 길이가 천길 까마득해 무서워 밑을 쳐다볼 수가 없다. 여차하면 추락해서 즉사할 것 같다.
정상을 지나는 백두대간 길은 위험해서 인지, 산허리 옆으로 우회하도록 새로 만들어져 있었다. 우째 이런 일이. 民族의 정기를 이렇게 끊다니, 이 죄를 어떻게. 기차를 놓친 허정균선배도 이 극악무도한 자연파괴의 참상을 미리 알았는지 흥분하면서 선발팀에게 연락을 해서 꼭 사진을 찍어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한 터였다.
유래를 보니, 일제때 침목 자갈을 위해 산을 깍기 시작했다고 하니 역시 일본놈들이 民族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일부러 백두대간의 마루금의 산을 골랐구만. 지금도 채석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모양인데 영동군에서는 나중 암벽등반코스로 개발한다고 하네요.
여기서 또 하나의 교훈. 건수만 생기면 교훈을 찾고자 하는 이헌태의 열정, 만세. 처음에는 자그마한 돌 몇 개를 캤을텐데 지금에 와서 보니 큰 산이 하나 없어졌구나. 가랑비에 옷 젓고 더 나아가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더니. 인간의 힘이 이렇게 무서울 수가. 불가능한 게 없구나.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비슷한 비유지만 차원이 다른 좋은 말씀이 있죠. 용성진종 큰 스님 왈, "작은 솔씨가 낙랑장송이 되나니". 참 멋진 말씀이네. 솔씨가 낙랑장송이 되는 변화, 그 자연의 신비로움. 이헌태의 백두대간 종주기가 4천 8백만 국민의 마음 속에 울려 퍼져서 '착하고 어진 국민'이 되도록. 이헌태, 니 뭐하냐. 웃기는 짜장면이네. 종주기 가운데 좋은 얘기는 안 받아들이고 야한 얘기만 받아들이면 어떻해. 그렇게 하지 마세요. 만약 그렇다면 이헌태가 나쁜 게 아니고 그 샤끼가 나쁘죠.
분노를 가슴에 안은채 다시 길을 나섰다. 분노만 할 수 없잖아요, 갈 길은 가야하니까. 그것도 좋은 말이네.
금산을 지나서부터는 동쪽방향으로 크게 힘들지 않고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행군을 계속했다. 이지역의 산에도 한국의 대표선수들인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숲을 이루었고 능선을 따라가다가 보니 왼쪽에는 큰 추풍령 저수지가 보였다. 참나무는 신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등등으로 불려지지 참나무란 나무는 없다고 하네요. 초등학교때 부터 참나무를 구분시키는 교육을 하든지.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하라고, 성질나서. 무식한 놈이 성질 부린다구요. 맞습니다, 맞고요.
호젓한 능선길이 계속 이어졌다. 이름 모를 보라색, 빨간색의 야생화도 간혹 눈에 띄었지만 들국화에 속하는 쑥부쟁이 또는 구절초, 개망초가 가을 숲속을 하얗게 수놓고 있었다. 이번 산행의 '대표야생화'로 임명합니다. 범인 (凡人)이 보면 모두 똑같이 생긴 것 같은데 뭔가 다 구별이 있다고 하네요. 옻나무도 인사를 한다. 지금때가 옻나무가 가장 약효가 좋을때라고 하네요. 옻삼계탕 먹으러 가야겠다. 진짜가 별로 없다고 하네요.
웃기는 일. 봄에 피는 진달래꽃이 피어 있더라구요. 올해 비가 자주 오고 날씨가 지랄 같아서 진달래 꽃이 봄이 또 온 줄 알고 착각해서 피었다고 하네요. 일년에 한번 꽃을 화려하게 피우는 게 정답이지만 나무에 에너지가 남아 있으면 꽃이 착각해서 다시 필 수 가 있다고 하네요. 살다 보니 미친 사람도 보았지만 미친 꽃도 있구만.
송동현 후배에게 "니도, 언젠가 인생에 있어 한번은 활짝 꽃 피울 때가 있을 거"라고 슬쩍 운을 띄웠더니, 이 후배 왈, "지금 인생이 활짝 피고 있다"면서 "백두대간 산행을 하고 있는데 더 바랄 게 있느냐"고 한다. 거의 득도, 신선의 경지에 들어섰구만.
도사, 신선이 누구인 줄 아세요. 고려시대 이인로 (1152- 1220)의 파한집, '쌍명재기'에 신선에 대해 나와있죠. '바람을 호흡하며 이슬을 마시고 세상을 마음대로 다니기 때문에 밖에서 병이 참범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수명은 천지와 더불어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것이다'. 나는 이슬을 마시면서 그렇게는 못살겠다. 짜장면도 맛있고 설렁탕도 맛있고 회도 맛있고. '참이슬' 소주는 대환영이지만.
한국의 명산을 두루 두루 다니는 저를 보면서 저의 주변에 잘 나가시는 분들이 한결같이 "이헌태 팔자가 최고"라고 다들 부러워 하더라구요. 나처럼 누가 못하게 하나.
대간 길에 놓인 어떤 분의 묘를 조성하려고 한 탓인지 대간길 위에 큰 포크레인 길이 한참 이어져 있었다. 대간 길에 묘를 조성하면 정기를 받아 더 좋은 세상에 가려나.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4.
산속은 여름도 약간 머금은 채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과도기에 놓여 있었다. '복합 계절', '중층 계절' 이구만. 온갖 나무는 업고 있던 자식 같은 잎을 눈물을 흘리면서 떨구고 있고 떨어진 낙엽은 길에 시체처럼 널부르저 흙과 하나가 되기 위해 벌렁 누워있다. 나뭇잎 융단. 바스락 바스락 낙엽이 밟히는 소리. 아, '가을 음악'이구나. 산이 다 누렇게 또는 붉게 물들지는 않았다. 가을 바람이 불면서 나무와 나뭇잎이 춤추는 소리가 잘 들렸다. 사각사각, 쏵쏵.
'오동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오는 것을 알고 단풍이 오면 가을이 깊어 가는 것을 안다'고 했는데.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기자는 기사로 말하고 가을은 낙엽으로 말하는 구나. 세일즈맨은 영업 실적으로 말하고 거물 정치인은 뇌물액수로 말하고. 잉, 뭐야.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란 시. 한용운 같은 대단한 지성인이 알 수 없다면 이헌태 같은 범털이 아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 하겠구만. 첫 대목,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 . 난 들 아나.
끊임없이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이여. 어김없이 겨울이 찾아오고 있는 구나. 세월은 자꾸 흘러가고, 아 인생 무상이여. 무상교육은 좋은데 왜 인생 무상은 싫은데요. 또 말장난하네.
나온 김에 가을을 음미합시다. 시인들이란 사물 하나 하나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는 것 같아요. 잎이 떨어지니 어떤 시인은 '투신자살' 했다고 하고 어떤 시인은 스님이 되어 '출가'하는 모습이라고 하고. 또 '수직낙하'라고 하고. 하여튼.
제가 볼 때는 잎이 추락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에 대한 미련을 털어버리고 흙과 땅이란 새 세상에 대한 동경과 도전이 아닐까. 그래도 나무에 붙어 있는 게 낫죠. 땅에 떨어져 봐야 소속도 주체성도 없고 조만간 흔적도 없어지죠. 우주의 생명윤회를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퇴비가 되어 다시 대지와 한 몸이 되지만.
천자문. 아시죠. 사서오경등의 명저에 밀려 무시당하는 책 중의 하나인데 그 안에 무궁무진한 시가 들어있어요. 어떻게 중복하나 되지 않고 한자 천자를 가지고 다양한 문장을 만들었는지. 대서사시죠. 첫 네 글자가 바로 '천지현황', 하늘천 땅지 검을현 누를황. 남편이 시키면 아내가 무조건 따라한다. 잉. 그게 아니고 남편이 사랑으로 이끌면 아내가 순종한다는 식의 좋은 의미의 잉꼬부부같은 '부창부수'도 천자문에 나오죠.
가을에 관한 것 몇 개 추려보았습니다. 오동조조 (오동잎은 일찍 시든다, 오동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왔다는 것을 안다), 진근위예 (가을이 오면 고목의 뿌리는 시들어 마르고), 낙엽표요 (낙엽이 되어 가을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낀다), 한래서왕 (추위가 오면 더위는 가고), 추수동장 (가을에 거두어 들이고 겨울에 저정한다).정리가 잘 되었죠. 자연의 변화를 통해 인생의 깊은 의미를 다시 새겨봅시다. 이헌태도 곧 갈 테니 인생 정리 잘해라. 그렇게 심한 말씀을. 제 나이 이제 마흔둘입니다. 앞으로 5년동안 재수없이 안 죽으면 100살까지 살 수 있도록 의학기술이 발달한다는데. 이헌태, 잘 났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아라. 그렇게 까지 살 필요야.
나온 김에 교과서에 나오는 가을시 3편을 소개합니다. 학창시절의 기분으로 모두 돌아갑시다.
하나.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한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뒷전에 철렁거리는데 / 가을 바람 소리는 /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둘. 윤동주 '별헤는 밤'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하나에 추억과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하나에 시와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셋. 김광균의 추일서정. "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속으로 내뿜으며 새로 두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5.
금산에서 대략 2시간 가량 동쪽으로 또는 조금 남쪽으로 쉼 없이 가다가 435미터 봉우리를 거쳐 30여분간 하산하면서 오후 6시쯤 사기점 고개에 도착했다. 뉘엿뉘엿 지던 해는 어느새 사라지고 사방이 이내 어두워졌다. 짧은 시간 사이에 벌이졌다. 밝음이 찾아오는 것도 어둠이 찾아오는 것은 순식간이다.
심상준 총무께서 오늘 산행은 이전과 달리 어둠속으로 들어간다고 철학적인 말쌈을 하시네요. 의미부여를 세게 하시네. 여기도 '어둠의 자식'이 있네.
헤드렌턴을 켜고 사기점 고개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20여분간 임도(林 道)도 통과하고 가파른 능선을 오르니 통신탑이 있는 난함산(733미터) 아래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났다. 이 도로에서 왼쪽인 북쪽방향으로 완전히 꺽어서 내리막 길에 나아갔다. 혼자 앞장서 가는 유영래 대장과의 휴대폰 커뮤니케이션 착오로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한시간 가량 길을 헤매었다.
외진 숲속으로 들어가 무덤군에서 길이 막혀 다시 나오기도 하고. 으메 무서워. 결국 원래 큰 시멘트 도로로 나와 더 내려가자 백두대간 안내 리본을 발견, 겨우 제 길을 찾았다. 깜깜한 밤하늘의 총총이 박힌 눈부신 별을 보면서 숲을 헤치고 능선을 넘고해서 드디어 이날의 도착 목적지인 작점고개에 도착했다. 경북 김천시 어모면과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작점리의 경계에 서 있다. 미리 도착한 대장이 혼자서 오랫동안 기다렸다. 같이 가시지 왜 저희들은 이렇게 고생시키십니까.
우여곡절 끝에 저녁 7시 56분쯤 목적지에 도달하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걱정과 두려움도 사라지고. 고개에서 보니 용문산 기도원 여러 채 큰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환하다. 하늘에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쪽 배에 계수나무 한나무 토끼 한마리", 은하수도 보이고 무수한 별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도시에도 별 많은 곳 많죠. 국방부 내지 교도소. 별도 종류별로 하늘과 땅차이네. 종류별로 할 때도 또 별이네. 별의별 말장난 다하네. 죄송합니다.
쬐금 움푹 꺼진 반달이, 마치 해처럼 너무나 광채를 내뿜으면서 하늘에 걸려 있다. 적막 캄캄 산속에서 보는 하늘 전경이 너무 동화스럽고 동심스럽다. 이런 것을 두고 '밤도 멋있다'는 거죠. 나는 '어둠의 자식'이 되고 싶어라. 잉. 미친놈. 나쁜 뜻의 어둠의 자식이 아니고요 간혹 어두운 밤하늘을 즐기는 사람이고 싶다는 뜻이죠. 그렇게 낭만적인 사람일 줄이야.
별, 달, 은하수가 있는 시 두편 소개. 먼저, 삼국지의 조조. 천하의 영웅이며 명시인. 원소의 군대를 격파하고 난 뒤 산을 넘다 지은 시.
"가을바람 소슬히 불어오니/ 큰 파도 용솟음치네/ 끝없이 운행하는 해와 달/ 마치 망망한 바닷속에서 솟아오르는 듯/ 찬란한 은하수/ 그 안에서 떠오르는 듯." 그 기상과 기백이 하늘에 넘치는구나. 이헌태도 그렇게 살 것인가. 이헌태는 대충 조용하게 살래요. 그럴 인물도 안되고.
또 하나. 이문구의 '산너머 저쪽'이란 시. " 산너머 저쪽엔 / 별똥이 많겠지 / 밤마다 서너 개씩 / 떨어졌으니. / 산너머 저쪽엔/ 바다가 있겠지/ 여름내 은하수가 흘러갔으니." 말이 됩니다요, 됩니다. 이헌태가 갈수록 센티해지죠. 센티해지면 의지가 약해지는데.
오늘은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지 일년째 되는 산행. 우두령에서 비가 오는 바람에 포기했던 야영을 이번에는 실천에 옮겼다. 사회에 진출하고 결혼을 한 이후에는 텐트 야영은 죽을 때까지 없을 것으로 단정했었는데. 너무 좋다.
"차가 오가는 곳에서 양반이 잘 수 있나"는 대장의 말씀처럼. 작점고개 아스팔트 포장도로 가에서는 텐트를 칠 수는 없고 산속 대간 길에 들어가니 언덕 바로 위에 넓직한 평지가 있어 텐트를 쳤다. 날씨가 그렇게 춥지않아 무척 다행스러웠다.
산속에서 밥도 지어먹고 영동시내에서 사온 촌 삼겹살을 구워 쐬주를 걸치고 진한 정을 나누는 담소를 나누었다. 참 오랜만에 느끼는 흙과, 자연과의 합일이다. 아, 청춘은 아름다워. 야, 이헌태 나이 마흔 둘에 무슨 청춘. 청춘이 웃는다.
6.
하늘 저 편, 벌건 빛을 내고 있는 반달이 아파트 한 평 크기가 되려나. 한 평이면 생각나는 것 무덤. 죽으면 한 평의 땅속에 묻히는 것을 살아있을 때 왜 그리 부질없이 욕심을 부렸는고. 하기사 요즘은 화장 비율이 절반까지 육박해서 한줌의 재가 되는 구만. 한 통의 재. 갈수록 작아지네.
'별은 빛나는 다이아몬드요 달은 붉은 반 호박이다'. 여기서 밑줄 쫙. 달의 크기와 관련해서 언급한 신동한 분이 계셨죠. 주자학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이헌태가 늘 높게 평가하는 지행합일, 양명학의 대가 '왕양명'. '소동파'와 더불어 이헌태의 또 다른 영웅이죠.
11세 천재소년 시절 그는 즉흥시를 통해 "산은 가깝고 달은 멀어서 달이 작은 듯하니/ 이 산은 달보다도 크다고 말한다./ 만일 사람이 눈 크기가 하늘과 같을 수 있다면 산이 작고 달이 더욱 광활함을 도리어 알게 되리니". 나이 40넘어서 이런 생각을 했는데 그렇다면 나보다 30년이나 조숙했구만. 무서운 아해야.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라는 말이 있는 이상의 시, '오감도'가 생각난다. 일제시대 건축가로서 , 산문가로서는 더 탁월했다고 하는데 무식한 제가 볼 때는 시는 너무 난해한 것 같아요. 이상이 시인으로 높이 평가 받으니 훌륭한 분이겠지. 무식한 이헌태가 무엇을 알겠습니까요. 잘난 양반들.
보너스 하나. 지금 이 순간, 잘 나가는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말씀 하나. 왕양명은 당시 선생이 출세의 지름길이었던 진사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고 하자 " 그것은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니다. 학문을 하여 성현이 되는 것이 천하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고 하네요. 역사가 흘러가면서 인간이 발전한다고 하는데 왕양명을 보면 완전 퇴보하고 있구만. 욕심만 뒤룩뒤룩 쪄가는 구만. 돼지처럼.
요즘은 돈이라 카면 난리에요. 선비든 지식인이든 학자든. 쪽 팔리게. 옛날 공자, 맹자도 배고팠고 두보는 아들이 굶어 죽었고 소동파도 가난하게 살았죠. 책읽고 배웠다는 지식인들 다들 왜 이래. 글을 왜 읽어. 머리와 가슴에 채워야지 배에 채우면 뭐하노.
보너스 둘. 양명학을 잠깐 소개해보면. 정리된 내용을 슬쩍 훑어봐도 좋은 줄 알겠죠. 주자학에 완전 밀려서 나쁜 학문으로 '왕따 취급' 받았죠.
1) 마음이 곧 진리다 2) 앎과 행함은 한 가지다 3) 만물은 원래 나와 한몸이다 4) 만물은 모두 평등하다 5) 거리의 모든 사람이 다 성인이다 6) 유불도는 근본은 하나다 7) 현장에서 수행하라 8) 아동이 지닌 각자개성을 꽃피게 하라 9) 자기 고유의 덕성인 양지를 자각 실천하라 10) 일반 대중의 계몽을 넘어 그들에게 참여하고 연대하라 11) 육경 (六 經)은 모두 역사서이다 12) 악의 원천을 뿌리채 뽑고 막아버린다
7.
술을 마시다가 너무 잠이 쏟아져 텐트내 침낭속에 들어가 자버렸다. 피곤했든지 코를 골면서 잘 자더란다. 7인용 텐트인데도 6명이 들어가니 꽉찼다. 발아래 한 사람이 더 눕고. 그래도 이것이 바로 '부대끼면서 정나는 인간세상' 인데. 대자연이 모두다 이헌태의 정원이고. 이 간단하고 행복한 논리를 사람들이 왜 모를까. 자기 땅을 넓게 정하고 금 긋고. 욕심, 욕심, 헛된 욕심, 헛된 욕심.
시끄러워 눈을 뜨니 새벽 2시 반이 넘었다. 대장님의 인기척과 기상. 침낭 안이 너무 포근해서 몸이 빠져 나오기를 싫어한다. 왜 깨워요. 이 시간에. 다시 눈을 붙이고 나니 새벽 4시 가까이 되었다. 일어나 텐트를 걷고 나니. 하늘에는 여전히 별들이 반짝이고 북두칠성도 하늘에 쇼를 펼치고 있었다.
야영지에서 보니 도로쪽 저 아래에 후발대 15명을 실은 전세버스가 서 있었다. 차안에서 다들 쿨쿨 자고 있다. 선발대와 후발대는 함께 새벽 4시 50분에 대간산행을 시작했다. 여성2분을 포함해서 신입회원이 3분이나 오셨네, 반갑습니다.
일행은 렌턴을 켜고 일렬로 서서 북쪽방향으로 능선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면서 행군을 계속했다. 새벽 6시 39분쯤 동해쪽에서 전구처럼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빨간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다. 산능선에서 모처럼 보는 멋진 일출이었다. 참 탐스럽고 에로틱하네. 뭐야. 이제 해까지 야하게 보이는 구만. 뭐 눈에는 뭐 밖에 보이지 않는다더니. 저는 해가 원래 빨간 색이 아닌데 인간들에게 잘 보이려고 빨간 립스틱을 발랐나 싶어서요. 미친 놈.
8.
새벽이 훤히 밝아졌다. 일행들의 행군이 이어지고 드디어 새벽 7시 8분쯤 이번 산행에서 가장 높은 곳인 710미터 고지인 용문산 정상에 도착했다. 사방의 산들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와, 원더풀.
사위는 아프카니스탄 산악지대를 방불케했다. 한국이 과연 '산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전에도 그랬죠. 산의 나라라서 등산은 필수이고, 또 한국에서 진실로 산다는 것은 산다(山 多), 즉 산에 많이 가는 것이라고. '산 소주' 많이 마시는 것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용문산에서 보니 저 아래 추풍령고속도로 휴게소와 그 위 정상인 눌의산, 또 그 '분노의 포도'가 아닌 '분노의 채석장'도 잘 보였다. 이상한 것은 대간길이 추풍령에서 용문산으로 곧 바로 오지 않고 삥 둘러 우회해서 왔다. 왜 그랬을까, 다 사연이 있겠지.
용문산 정상은 전형적인 가을날씨였다. 전에 한번 말씀드렸죠. 5박자라고. 순진무구, 절대순백의 흰구름, 따뜻한 햇살, 선선한 가을바람. 산정상을 삥 둘러싸며 솜털을 흔들거리고 있는 억새풀이 사랑스럽다. 가슴이 탁 트이는 가을 전경이다.
용문산 정상인 헬기장에서 떡과 술, 과일 상을 차려놓고 고사를 지냈다. 일주년 축하 돌잔치인지 산신, 천신에 고하는 고사인지 내부적으로 논란이 있었다. 그래서 절 할 사람 절하고 안할 사람 안하고. 아무렴 어때. 기쁘고 감사하면 그만이지. 영래 대장님이 산신께 술 한잔 따르시면서 한 쪼가리 적어와 읽어 내려갔다.
" 白頭神이여, 이렇게 모였습니다. 백두대간 순례를 시작한지 한 돌 여기에 섰습니다. 10월 19일 오늘 이곳에서 삼천리 금수강산 山神께 告합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백의민족이 공동체를 형성한 세월이 오천년이 넘었습니다. 시베리아 만주를 주름잡던 우리 조상은 단군 시조께서 백두산을 한 가운데 두고 한민족 공동체를 만들어 한반도와 태평양으로 쑥 뻗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의 기상은우리의 전통이며 화랑도의 용맹은 우리 민족의 기질입니다. 자랑스런 역사와 전통을 지닌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민족의 역량과 기상을 한 중심으로 모아 세계 속으로 떨쳐나가고 있습니다.
대간이어가기 1년, 어려움도 있었고 어설픔도 있었습니다. 작년 이 때 지리산 조개골을 출발했습니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새벽 조개골 생각을 하세요. 조개골 남부군사령부 터를 지나서는 길잃은 牧者였습니다.기진맥진했던 백운산이 있습니다. 비, 바람 속에 순례자의 경건한 정신만이 종주할 수 있었던 삼도봉 우중산행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山神의 加護로 무사히 끝냈습니다. 세상살이는 인간의 本性을 곧추세우는 일입니다. 본성을 알자면 광기의 정신, 강철같은 의지, 근성이 있어야 합니다. 魂魄과 일치된 자세가 곧 깨달음의 인생입니다. 영혼과 대화하고 귀신과 만나려면 미처야 합니다. 몰입, 집중은 자기책임입니다.
우리가 가는 대간길은 우리의 뿌리를 확인하고 한반도는 물론 만주와 시베리아를 찾아 우리의 혼을 만나는 순례자의 길입니다. 우리의 求道는 대간걷기입니다. 한 돌이 지났습니다. 이제 일어섰습니다. 천지신명이시여! 종마에게 힘을 주십시오. 우리의 기상과 용맹을 이어줄 종마를 보호하소서. 단군 4335년 구월 ". 여기서 종마는 저 이헌태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종마를 보호해야 한다는 그 지엄한 분부, 대원들은 가슴 속 깊이 새겨 들어라.
9.
오전 8시에 용문산 정상을 출발했다. 내려오다 보니 용문산 기도원에서 나오는 찬송가 스피커 소리가 너무 요란스럽다. 짐승들이 다 잠을 설치겠다. 기도하고 찬양하시는 것은 좋은데 온 산이 떠나갈 듯 너무 시끄럽게는 하지 마세요.
국수봉을 바로 코 앞에 둔 능선길에서 22명의 대원들이 둘러앉아 산상 시낭송회를 가졌다.거창도사 백신종선배는 팀과 거꾸로 혼자, 팀 도착지 큰재에서 출발지 추풍령으로 넘어 가는데 여기서 만났다.
신현림 시인의 '나의 싸움'.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기 위해 /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 실패와 실패 끝의 치욕과 / 습자지만큼 나약한 마음과 / 저승냄새 가득한 우울과 쓸쓸함/ 줄 위를 걷는 듯한 불안과/ 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 이헌태의 코멘트, '슬픔아, 고통아 어서 빨리 꺼지라구'. 잉.
또 이원규의 시 '옛 애인의 집'. "라일락 푸른 잎을 씹으며 /귀향하듯/ 옛 애인의 집을 찾아가네------세상의 모든 집/ 옛 애인의 집/ 겨우내 장좌불와 수행중인 / 나무, 나 無, 南無
/설법을 들으며 / 언땅에 무릎을 꺽는다/ 어휴 씨발, 추워 죽겄네!". 이헌태의 코멘트. 욕하지 맙시다. 나무, 나無, 南無 3가지 나무가 다 뜻이 통하네. 특히 나를 버리고 없애는 '나 無'도 좋은 말이네.
이 시는 여성 동지인 이수연씨가 낭독했는데 마지막 욕 부분이 너무 기가 막혀서 한번 더 애원해서 기필코 다시 시켰다. 이수연씨, 욕 잘 어울리더라구요. 그 길로 나가 욕쟁이가 되면. 킥킥.
또 한시도 있었죠. 우리 말로 풀면. " 기이한 산과 큰 물은 웃음의 경계이고 서리 내리는 새벽과 달뜨는 저녁은 웃음의 때이다. 막걸리와 해맑은 거문고는 웃음의 거리가 되고 한가한 스님과 협객은 웃음의 벗이다. 가슴에 답쌓이고 답답한 것은 웃음으 가슴이 되고 긴 노래와 사곡(詞 曲)은 웃음의 펼침이며 송골매가 울고 원숭이가 우짖는 것은 웃음의 조화이고 종려나무 신발과 오동나무 모자는 웃음의 사람이다". 이헌태의 코멘트. 무슨 뜻은 알겠는데, 거의 말장난에 가깝구만.
이원규 시인의 '겨울나무의 설법'이 하나 더 낭독되었다. "늦가을의 나무들/ 출가를 한다/ 스스로 삭발을 하고/ 단식 정진을 시작한다/ 까치집 / 그대로 놔둔 채 / 삭풍이 마구 흔들어도/ 나무는 이미 / 입산한 사문 (沙門)이다./ 스님 날이 너무 찹니다/ 춥지 않으면/ 어찌 나이테가 생기겠느냐?/ 끽다거 (喫 茶 去), 차나 마시거라/ 저의 몸에도 나이테가 있습니까?/찻잔을 튕기고/ 파문을 들여다보아라/ 안절부절 못하는 네 삼생(三 生)의 나이테다" 이헌태의 코멘트. 여기 또 나무를 출가하는 스님에 비유했구만. 하여튼, 시인이란.
참조하나. '끽다거'의 유래. 중국 당나라때 선승인 조주선사는 "어떻게 선(禪)을 해야하느냐"고 묻자 "끽다거", 즉 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차마시는 게 도닦는다는 말씀이겠죠.
조주선사의 유명한 선문답. 한 스님이 "달마조사께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뜬금없이 "앞뜰에는 잣나무가 있지"라고 답했다고 하네요. 그 스님은 달마가 왜 불법을 일으켰느냐 또 부처는 왜 이 세상에 왔느냐, 결국 도란 무엇이냐를 물었는데 조주선사는 그 딴 것이 뭐 중요하나, 쓸데 없는데 신경 쓰지 말고 너 자신이나 걱정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잣나무가 앞뜰에 있으면 어떻고 뒷 뜰에 있으면 어떠하냐 그것이 분명 잣나무이지 않느냐. 설사 앞뜰에 잣나무가 없다고 한들 그게 무슨 문제냐. 달마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온 의미도 같은 이치라는 것. 중요한 것은 달마가 아니고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수행이나 정진하라는 깊은 생각이 담겨져 있다고 하네요. 아 그렇구나. 선승들의 선문답이 재미있구나.
제 생각에는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이 뭔 줄 아세요. 한국에 그런 제목의 영화가 있잖아요. 그런 일이 없었으면 그 영화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 아닙니까. 즉 한국영화를 위해서 달마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왔죠. 또라이 아이가. 달마가 무슨 영화 진흥에 관심이 있는 문광부장관이라도 되냐.
10.
용문산에서 마루금 능선을 역시 오르내리자 아침 9시 33분경 국수봉에 도착했다. 국수봉 정상에는 상주시청산악회가 만든 표지석이 놓여있다. 행정상으로는 상주시 공성면.
야, 국수봉에서 보니 누런 벼들로 넘실대는 너른 들이 눈 앞에 쫙 펼쳐 졌다. 백두대간 산행이후 최대로 큰 평야지대 같았다. 저 발 아래가 바로 상주(尙州)라고 한다. 상주의 상, 마을가운데 상등급이니 최고의 명당이고 최고의 마을이리라. 쌀과 누에고치 곶감의 삼백의 고장이라고 하네요. 불과 50년전 해방후 삼백은 밀가루, 설탕, 흰천을 일컫고 당시 한국산업의 기간산업이었는데. 지금은 조선, 반도체, 자동차가 세계를 주름잡고 있으니, 한국이여 위대하다.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를 합친 말. 그만큼 예전에는 날렸다는 뜻.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독자적으로 통치했던 곳. 저렇게 넓은 들을 가지고 있었으니 과거 잘 나갔구나. 고대국가시대에는 사벌국으로 나라 행세를 했고요. 까불다가 신라에 합병되었지만. 고려때는 전국 8목(牧)가운데 하나였고 조선초기에는 경상감영이 있었다고 하네요. 역시 그랬구나.
불행하게도 팔자는 요지경.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농토는 풍요의 땅이었지만 요사이는 180도 바뀌어 가난의 땅으로 바뀌었는데. 세상이 우찌 이렇게 되었노. 농민들이 이제 할 일이 없다고 하네요. 나중에는 농땡이를 줄여 농민이라고 하겠구만. 농염한 섹시 걸도 농민인가.
국수봉에서 상주의 너른 벌판에 대한 감탄을 쏟아내고 난뒤 바로 하산길에 올랐다. 산아래는 아직 나무와 풀들이 여름처럼 초록색으로 무장한 채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따가운 햇살마저 내리쬐어 후덥지근, 여름 산행으로 착각했다. 여름철 내내 너무 울어서 목이 쉰 듯한 매미가 이제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최후의 전사(戰士)'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세상 바뀐 줄도 모르고. 급변하는 국제정세도 모르고, 짜식. 모시인의 시 처럼. 어서 빨리 꺼지라고.
산아래 사과밭에는 탐스렇게 익은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사과도 빨갛고 감도 빨갛고 이번 산행에서 본 과일 열매들은 모두 빨갛네. 좌익분자들인가봐. 가을은 단풍색에서 알수 있듯이 붉은 색이 대표색이구만. 다 아는거라구요. 죄송합니다. 저 몸 속에도 빨간 색이 하나 있죠. 피 말고요. 가슴 속에는 빨간 정열이 불타오르거든요. 제 가슴은 내내 가을이에요. 이헌태, 니가 얘기하니 느끼하다. 지가 무슨 청춘이라고.
대략 한시간 반 만인 오전 11시 10분 영동군과 상주군을 잇는 큰 재가 아니라 고유명사 '큰재'가 나왔다. 제가 봐도 재가 크더라구요. 이번 산행은 해발 400-700미터 안팎을 중심으로 가파른 오르막이 없어 그다지 힘든 코스는 아니었다. 열여섯번째 산행가운데 가장 쉬운 편으로 기록될 듯하다.
큰재의 지명은 신곡리.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라는 안내판이 길 옆에 걸려있다. 쉽게 얘기해서 경상도 땅과 전라도 땅을 기름지게 하는 강이 여기서 갈라졌구만. 대단한 지역이구만. 남녀의 가랑이 사이에 해당되네. 남녀를 떠나 그곳은 생명과 생산과 힘의 원천이죠. 이헌태 또 엉뚱한 생각한다. 그만해라. 네.
큰재에는 아름드리 나무로 울타리가 쳐져 있고 넓다란 교정을 갖고 있는 무심한 폐교가 하나 있다. 간판은 부산녹색연합의 생태학교이며 백두대간 교육센터이다. 페인트 칠이 벗겨진 안내판에는 "우리의 미래와 통일을 위해 민족정기 및 환경교육을 할 교육장을 우리 스스로 지키고 보호하도록 합시다. 97,5. 최종석".
이 폐교터는 그 이전에는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였다고 하네요. 운동장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교사(校舍)는 귀신이 나올 것처럼 거미줄과 먼지가 자욱하다. 잘 활용하지, 왜 이렇게 방치했을까. 교육장을 우리 스스로 지키자고 해놓고. 하여튼 두 번 폐교 당했으니 두 번 죽었구만.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니 누가 한번 더 인수해서 일을 펼치면 곱빼기로 잘 되겠지.
유영래 대장과 이현주 두분은 웃 통을 벗은 채 운동장 조회연단 단상에 올라 일광욕을 즐기고 있구나. 참으로 신선노릇이네.
11.
후미그룹이 선두그룹에 비해 거의 한시간 가량 늦은 모양이다. 선두그룹 아짜씨들이 쬐금 짜증을 내는구만. 저도 늦게 와서, 죄송해라. 일행 모두는 황간시내로 향해, 늘 가던 돼지고기집으로 가서 대간산행시작 일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행사내용이야 뻔하지 뭐. 음주파티. 제 종주기를 읽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백두대간 한걸음 이어가기'팀을 술꾼 모임으로 간주하더라구요. 맞습니다, 맞고요. 한마디로. 술이 최고여. 예술도 입술도.
대간팀 일행들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한잔씩 걸치면서 지난 일주년을 돌이켜보았다. 단 한번도 빠지지 않은 종마에게 상패도 준다고 하는데, 진짜인가. 이헌태 왈, "내가 좋아서 한 것을 왜 이래 세상이 시끄러울꼬" . 탁무권, 박홍규, 박현수 선배와 박영재 원장등 금전적으로 대간팀을 후원해주신 많은 분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이분들 앞날에 영광이 있으라.
이헌태도 꿈결 같은 지난 일년을 돌이켜보면서 '추억의 베스트 10'을 정리했죠. 1. 다도해를 연상케한 덕유산 운해 2. 휘영청 지리산 벽소령의 보름달 3. 첫 산행 때의 지리산 천왕봉 설경 4. 겨울 덕유산 하산 때의 눈길 속 12시간 (일부 인사는 14시간소요)의 사투 5. 선녀들이 사는 지리산 추성계곡의 나체목욕 6. 여름 내내 내린 지리한 비 7. 사색, 철학 백두대간팀 8. 유영래 대장의 탁월한 리더쉽 9. 회원들의 높은 인간성과 품격 10. 유일하게 단 한번도 빠지지 않은 종마의 대기록.
백운 형님 지난 일년 종군사진기자하느라, 야생화 찍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한국한문학사의 최고시인인 고려 백운거사 이규보(1168- 1241) 보다 훨씬 더 형님을 좋아하죠. 이규보가 요즘으로 치면 '알코올 중독자' 였더라구요. 선현들을 보면 술과 시는 한 몸인 것 같아요.지금은 큰 일 나지. 이번 산행의 종착지인 '큰 재'. 큰 재난 나지.
일단 이규보의 주시(酒 詩)부터 한 수. "앓아 누워서도 술을 끊지 못하니/ 죽고 나서야 이 술잔을 놓겠지/ 맑은 정신으로 살아 있은 들 무슨 재미겠나/ 취해 지내다 저 세상가는 게 도리어 좋을텐데"
'부전자전'. 이규보가 고주망태니 아들도 당연 물려받았겠지. 그래도 은근히 걱정은 되었나봅니다. '아들 삼백에 주는 시' (兒三百飮酒)도 남겼더라구요. " 나이도 어린 네가 벌써 술을 마시다니 / 머지않아 네 창자가 다 썩을 게 분명하다./ 고주망태 네 아비를 닮을 일이 뭐 있느냐 / 평생토록 남들이 미치광이라 하는 것을./ 제 몸을 망치는 건 모두가 술 탓인데/ 네 녀석도 좋아하니 이게 대체 뭔 일이냐./ 어쩌다가 네 이름을 삼백이라 지었더니/ 삼백잔을 마실까봐 후회가 막심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규보가 절주를 위해서도 무척 노력했더라구요. '술을 덜 마시다보니'란 시입니다. " 주정뱅이라는 나무람 소리 듣기가 싫어/ 요즈음 덜 마시니 탈은 없건만/ 붓을 쥐고 앉아 시를 읊는라치면 / 날개가 꺽어진 듯 높이 날지 못하겠더라"하여튼 중국의 이태백도 그렇고 한국의 이규보도 그렇고 최고의 시인이 되려면 알콜중독자가 되어야한다니까. 배울 것은 빨리 배웁시다. 주모, 술 줘.
벼슬길에 나가 나라일을 할 때는 열심히 했던 모양이에요. 양심은 살아서. 공무원들 잘 들으세요. '술마실 틈도 없어라', " 흑석천 개울가가 더위 피하기 좋고 / 개원루 위에 오르면 시 읊기 좋건만 / 관청의 일 그침없이 밀려드는 탓으로/ 열흘에 한잔 술도 마시기 어려워라"
이규보를 여기에서 마치면 술꾼처럼 비쳐지니 좋은 시 두 수를 소개하죠. " 산승이 달빛을 탐내어 /물과 함께 한 항아리 길어 갔으나 / 절에 도착하면 응당 깨달으리/ 항아리 기울이고 나면 달빛 또한 공함을"
또 하나. " 넓고 큰 그늘이 장막을 이루었고 / 나부끼는 잎새는 구슬처럼 흩어졌어라/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쟀더니 / 쓸데없는 잡새들만 깃들였어라"
진짜, 마지막 하나. "한조각 흰구름 한가한데/ 바람에 따라 산으로 밀려오나/ 동서 어느 곳에도 본래 메이지 않으니/ 잘 갔다 잘 돌아오시게"
'백운'이 한 분 더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고 있는 독일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1450년)보다 무려 70년가량이 더 빠른 금속활자본이 바로 '직지심체요절' (고려 우왕3년, 1377년)인데 완전한 제목은 "백운화상초록불조 직지심체요절"이죠. 이 책을 엮은 이가 바로 조계대선사 백운 경한입니다. 백운은 호요 경한은 법명. 전라도 고부출신의 백운화상은 태고 보우국사, 나옹 혜근화상과 더불어 고려말기 삼대 선승으로 유명하다고 하네요. 백운, 즉 흰구름이 괜찮은 가봐.
그건 그렇고.술꾼으로 한국에서는 이규보가 있었다면 역시 중국에서는 시선 (詩仙) 이백. 본명, 이태백. 오죽 했으면 술에 취해서 강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이 나오겠나. '달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란 시가 기가 막힌다.
요즘 우리나라의 지도층에서 이같이 밤낮으로 술을 퍼 마시고 시를 지으면 '미친 놈'이지 뭐. 열심히 일하고 봉사해야 하는 고위공무원이나 정치인은 물론 무한경쟁의 전쟁터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기업가들에게는 꿈 같은 소리.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낭만이 없어져 간다는 반증. 우째 그런 설렁 설렁 노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고 이런 살벌한 세상에 태어났는고. 다소 길더라도 소개합니다.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아서. 이헌태, 완전 미치고 또 모자라서 한바뀌 돈 놈.
1. " 꽃나무 사이에서 한병의 술을 / 홀로 따르네 아무도 없이 / 잔 들고 밝은 달을 맞으니 그림자와 나와 달이 셋이 되었네 / 달은 술 마실 줄을 모르고 / 그림자는 나를 따르기만 하네/잠시나마 달과 그림자 함께 있으니 / 봄이 가기전에 즐겨야 하지 / 내가 노래하면 달은 거닐고 /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따라 춤추네 / 함께 즐거이 술을 마시고 / 취하면 각자 헤어지는 거/ 무정한 교유를 길이 맺었으니 / 다음엔 저 은하에서 우리 만나세"
2. " 하늘이 술을 사랑치 않았다면 / 주성(술별)이 하늘에 있지 않을 거고 / 땅이 술을 사랑치 않았다면 / 땅에 주천 (술샘)이 없었을 거야 / 하늘과 땅도 술을 사랑했으니 / 내가 술 사랑하는 건 부끄러울 게 없지 / 옛말에 청주는 성인과 같고 탁주는 현인과 같다고 하였네 / 현인과 성인을 이미 들이켰으니 / 굳이 신선을 찾을 거 없지 / 석잔이면 대도에 통할 수 있고 / 한말이면 자연과 하나되는 거라 / 술 마시는 즐거움 홀로 지닐 뿐 / 깨어 있는 자들에게 전할 거 없네."
3. "춘삼월 함양성은 온갖 꽃이 비단을 펴 놓은 듯 / 뉘라서 봄날 수심 떨칠 수 있으랴 / 이럴 땐 술을 마시는 게 최고지 / 곤궁함 영달함과 수명의 장단은 / 태어날 때 이미 다 정해진 거야 / 한 통 술에 삶과 죽음 같아 보이니 / 세상 일 구절구절 알 거 뭐 있나/ 취하면 세상천지 다 잊어버리고 / 홀로 베개 베고 잠이나 자는 거 / 내 몸이 있음도 알지 못하니 / 이게 바로 최고의 즐거움이야"
4. "천갈래 만갈래 이는 수심에 / 술 삼백잔을 마셔볼거나 / 수심은 많고 술은 적지만 / 마신 뒤엔 수심이 사라졌다네 / 아, 이래서 옛날 주성이 / 얼근히 취하면 마음이 트였었구나 / 백이는 수양 골짝에서 살다 죽었고 / 청렴하단 안회는 늘 배가 고팠지 / 당대에 술이나 즐길 일이지 / 이름 그것 부질없이 남겨 무엇해 / 게 조개 안주는 신선약이고 / 술지게미 언덕은 곧 봉래산이라 / 좋은 술 실컷 퍼 마시고서 / 달밤에 누대에서 취해 볼거나"
캬, 쥑인다. 이백을 세계 제일의 술주정꾼. 아니 세게 제일의 술홍보맨으로 임명합니다. 이 시를 읽고 술 마실 생각이 없으면 그게 인간이냐고. 죄송합니다. 제가 술에 취해서 나오는대로 지꺼렸습니다. 술 못 마시는 분들은 다 사연이 있겠죠. 체질적으로나 등등. 낙엽 떨어지는 가을은 역시 '술의 계절'. '독서의 계절'도 아니고 '천고마비의 계절'도 아닌 것은 이미 설명했죠. '노는 계절', 결국 '술의 계절'이네. 모 대학교 응원가. " 부어라 마셔라 막걸리---"
대간산행 일년을 맞이한 이헌태의 생각 1. "지나온 길이 아득하구나/ 지나갈 길도 아득하구나/ 인생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나, 참으로 아득하기 짝이 없다./ 모든 것이 아득하구나 / 내가 서 있는 이곳만 아득하지 않구나. 나 혼자 한가롭고 싶구나"
이와 관련, 좋은 시 전해드립니다. 의상대사의 명언. " 가도 가도 본래의 그 자리요. 왔다 갔다해도 출발한 그 자리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겠죠. 모르시면 할 수 없고. 또 선가에서는 수처작주 (隨處作主·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라는 말도 있죠.
동양도 있으면 서양도 있다. 양을 붙이니 여자들인가. 김양, 박양처럼. 서씨 성은 있어도 동씨 성은 없는데. 동양은 조심하세요. 자칫 걸뱅이 '동냥'처럼 되니까요. 100여년 전만해도 동양의 간판스타 중국을 비롯 한국이 동냥 행세한 적이 있었죠. 지금 중국은 비상하는 용이지만, 한국은 추락하는 미꾸라지고.
서양의 희랍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삶에서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경우에도 난 이러 이러한 것을 잃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말하라. 그러면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너의 배우자가 죽었는가, 아니다. 그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이다. 너의 재산과 소유물을 잃었는가. 그것들 역시 본래의 위치로 돌아간 것이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옳은 말씀은 다 통하는 구만. 요즘 사랑이 넘치고 불륜이 넘치면서 나도는 말이 있더라구요. "통하면 통해야 한다". 이헌태, 뭐야.
피곤하게 사는 분이 또 있더라구요. 괴테. 평생 시간을 낭비한 적이 없다고 하네요. 나는 그래 못산다, 못 살아. 독하다 독해. 자기 손자를 위한 기념 수첩에 적은 짤막한 시. "한 시간에는 일 분이 60개 있다. 하루에는 천이 넘게 있다. 아이야, 기억해 두려므나. 사람은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음을" 말이야 맞지만은. 그렇게 해서 뭐할 건데. 쉬엄 쉬엄 살아갑시다.
중국 기원전 11세기와 6세기 사이의 민요를 모은 '시경'의 '귀뚜라미'. " 마루엔 귀뚜라미, 올해도 저무는구나/ 지금 즐기지 않으면 세월은 그대로 흘러/ 아니 너무 즐기는 게 아닌가, 집안일도 생각해야지/ 지나치게 즐기지 않는 게 미래를 걱정하는 선비라네/// 마루엔 귀뚜라미, 올해도 다 가는구나/ 지금 즐기지 않으면 세월은 그대로 흘러 / 아니 너무 즐기는 게 아닌가, 밖의 일도 생각해야지/ 지나치게 즐기지 않는 게 민첩한 선비라네/// 마루엔 귀뚜라미, 짐수레도 쉬겠구나/ 지금 즐기지 않으면 세월은 그대로 흘러/ 아니 너무 편안하지않는가, 장래도 걱정해야지/ 지나치게 즐기지 않는게 여유있는 선비라네 " . 주장하는 바가 뭔데. 놀라는 말인가 놀지 말라는 말인가. 매사 적당한 게 좋지. 그렇구나.
이헌태의 생각 2. "산에 오르면 무심(無心)해 지네/ 오르면 오를수록 더 무심해지네/ 무심은 곧 무락 (無 樂)이라네/ 꺽을 수 없는 단 하나 욕심은 명산에 자꾸 오르는 것"
왜 여기서 명산이 나왔냐고 하면. 이번 산행 동안 나무에 걸린 리본 하나. '전국 명산 400개정상 등정기념 ? 부산 구포 화목산악회 이기균회원 011-831-4348'. 이 얼마나 놀라운 기록의 소유자인가. 사실 백두대간 종주는 의미를 세게 부여해서 그렇지 내용상으로는 명산 400개정상 등정이 더 어렵거든요. 또 400개 명산을 가면 전국 방방곡곡은 다 돌아다 보았다고 볼 수 있죠. 이헌태도, 백두대간 종주가 끝나면 명산 400곳은 다 가보지 않더라도 각 도의 대표 산은 주유해야 할 텐데. '갈 곳은 많고 시간은 없고'. 죽을 때까지는 나도 400개 명산을 다 가보아야지.
이헌태의 생각 3. "지나온 길이 아름답다/ 지나갈 길이 설렌다/ 시간은 바삐 흘러 가지만 나와는 상관없네/ 나는 이 길 위에서 즐길 뿐이다"
12.
대간 산행 일주년을 맞아 이헌태 만세삼창. 따라해 주세요. 대한민국 만세. 백두대간 만세. 백두대간 한걸음 이어가기팀 만세. 종마 만세.
아 ! 대한민국 영원하리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닳도
.................................록하느님이보
.....................우하사우리나라만세무
..............궁화삼천리화려강산대한
...........사람대한으로길이보전
.....하세남산위에저소나무철
.....갑을두른듯바람서리불
........변함은우리기상
...........일세무궁화삼
..........천리화려강산대
........한사람대한으로길이#
........보전하세가을하늘공활..........한..데
..............높고구름없이밝은
...............달은우리가슴일편단
..................심일세무궁화삼천
..................리화려강산대한사
..................람대한으로길이보전
..................하세이기상과이맘으.로
.................충성을다하여괴로우
...............나즐거우나나라사랑하
...............세무궁화삼천리화려
.............강산대한사람대한으
...............로길이보전
...........하세
종마, 이헌태와 관련된 두 가지 소식. 종마의 본명은 이헌태.
첫 소식. 중국과학원 유전연구소 위안이다 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는 이씨로 9천 5백여만명 (전체의 7.9%)에 달한다고 하네요. 해외 화교까지 합칠 경우 1억명이 넘어 단일 성씨로는 세계 최다. 90년대 중반까지는 왕씨 성이 가장 많았으나 그 이후로 이씨가 1위로 올라섰다고 하네요. 이헌태도 중국 피가 섞였나. 제가 모르죠. 뭐 자랑이라고 떠드냐.
진나라 정치가 이사, 당태종 이세민, 당나라 시인 이백이 대표적인 이씨. 종마도 이씨인데. 이헌태는 빠지라고요. 저희 엄마는 백억원을 준다해도 저를 안바꾸죠. 저도 그만큼 귀한 사람이에요.
둘째 소식. 근래 전라도 사투리 '거시기'가 영화 '황산벌' 때문에 폭발적인 유행어가 되고 있다고 하네요. 분석이 맞는 지 틀리는 지는 모르겠으나 재미난 현상. 종마 고향이 대구라는 사실을 아시고.
"밥 뭇나. 별 일 없제. 끊는다". 경상도 사람 특유의 단답형 대화 때문에 이동통신사들이 울상이라는 기사가 나왔어요. 저도 대구에 계시는 엄마에게 저녁 퇴근길에 전화하면 "엄마, 밥묵었나. 뭐 묵었노. 오늘 별일 없제. 그래 끊는다"가 전부거든요. 이해가 가기는 가는구나.
그 기사에 따르면 SK텔레콤이 올 상반기 휴대폰의 도수 (시간에 따른 요금부과 기준)을 분석한 결과 부산.경남이 1인당 통화시간이 가장 짧게 나왔고 그 다음이 대구경북, 서울경기인천, 광주 전남북, 충청 강원 순으로 길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SK텔레콤측은 "경상도 사람들이 말이 빠른 편인데다 단답형으로 대화하는 경향이 있어 통화시간이 제일 짧은 것 같고 충청에서 휴대폰 통화가 길게 조사된 것은 충청지역사람들의 말이 느린 것이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하네요.
더 웃기는 것은 처방. SK텔레콤측은 수익성 향상을 위해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표준말쓰기 운동을 전개할 것을 진지하게 검토했다고 하네요. 일리가 있나요. 없나요. 심심한 사람에게 이헌태가 드리는 과제. 휴대폰 도수가 그렇게 나온 원인에 대해 심도있게 분석해 보시길.
대구경북지역이 전국에서 별난 기록이 또 하나 더 있더라구요. 대구경북지역에서 유통되는 화폐의 상태가 전국에서 가장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네요.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이 지역에서 유통되는 지폐를 표본 조사한 결과 대상화폐의 89.7%가 상태가 깨끗해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것. 이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라는 것. 특히 2001년 64.7%, 2002년 87.5%에 비해서도 크게 상승해 돈을 깨끗이 사용하려는 지역민들의 의식이 갈수록 성숙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관계자가 분석.
제가 볼 때는 먹고 살기 어려우니 돈만 보면 집안가보처럼 '애지중지' 하다 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네요. 대구경북 경제가 말이 아니라고. 고향에 사람들 연락해 보면 다들 한숨과 망연자실한 표정뿐이더라구요.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 (恒心)이 없다", "창고가 찬 연후에 예절을 안다"는 옛 성현들의 말씀이 딱 맞죠.
13.
일행은 얼큰하게 취한 상태로 상경해서 길동전철역 앞에서 생맥주로 한잔 더 걸쳤다. 나는 도망나와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나의 푸근한 보금자리 고양 화정 집으로 돌아왔다. 마누라와 자식들이 반긴다. 토요일 내가 집을 나설 때 마누라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이헌태, 니 참 팔자 좋다. 자식들 잘 자라지, 술 먹고 늦게 들어와도 마누라 가만히 있지, 늘 산에 가지. 니 팔자가 최고다". 똑똑한 마누라가 한 말이니 맞겠지 뭐. 이번 산행의 핵심포인트. '이헌태 팔자 좋다'.
이헌태는 건달이죠. 건달이란 말이 왜 그리 정이 가는지. 건달의 유래를 잠시 소개하면. 불교에서 제석천의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서 정법을 수호하는 건달바를 이끄는 천신이 '건달바왕'이라고 하네요. 악한 무리로부터 중생을 보호하고 불법을 지키는 어깨인 셈이죠. 건달이란 말이 정이 가는 이유를 알겠죠. 남의 이목을 의식하면 건달보다는 바람따라 구름따라 떠다니는 '방랑자', '나그네', '풍운아'가 더 좋은데. 이헌태 니 마음대로 하세요.
결론. 천상천하 유아독존. 어차피 혼자 가는 세상 마누라가 뭐 필요하고 자식이 뭐 필요해. 산에 가서 내 좋으면 되었지. 미친놈.
끝으로, 온 나라가 마누라를 바꿔서 뭐하는 '스와핑'으로 난리가 아니에요. 스와핑은 좋은 레포츠 아닌가요. 스노우 즉, 눈 위에서 '와' 탄성을 지르면 하는 서핑말이에요. 그게 아니라구요. 땀도 나고 상쾌하고 즐거운 운동이라고. 농담이고요.
마누라 바꾸면 안되죠. 다음날 어떻게 얼굴 보고 사나. 따로 따로 몰래 하면 몰라도. 그것도 안되죠. 최근 물건을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 '아나바다' 운동이 유행인데 마누라 바꿔 쓰기도 그 운동의 일환인가 착각한 분이 아닌가요.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은 분 있잖아요. 마누라도 나눠 쓴다고 닳나. 돈 짜슥.
마누라는 물건이 아니죠. 인간은 짐승과 다른 '도덕'이 있잖았습니까. 스와핑은 절대 안 되는 거죠. 죽어서도 같이 가자고 약속한 부부가 아니죠. 그냥 사는 동거인이라면 몰라도. 덕을 세게 발음하면 떡이잖아요. 떡 가운데 가장 맛있는 떡이 꿀떡이고 가장 맛없는 떡이 도떡이라고 한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도덕 먹기, 즉 도덕 지키기를 싫어하는구만. 도떡이 없으면 인간사회가 붕괴되겠죠.
야한 얘기 하나 더, 예전에 신문에 '모 여대생 떡 팔아 불우이웃 도와' 라는 기사제목이 크게 나왔나봐요. 일부 헛소리 잘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떡 팔았냐고 떠들고 난리가 났더라구요. 여자의 뭐를 떡이라고 하잖아요. 떡칠등등. 그만 합시다. 이번 종주기는 저질로 시작해서 저질로 끝나는구만. 죄송합니다. 다 웃자고 하는거죠. 이헌태의 수준입니다. 흔히 야한 얘기 많이 하는 사람은 양기가 입으로 오른다고 하잖아요. 자판을 두들기는 저는 양기가 손가락에 옮겼나. 이헌태의 '이 손' 보물급이죠.
연말도 다 다가오는데, 불우이웃을 많이 도웁시다. 경기가 침체일수록 그런 불우이웃들을 더 돌보지 못할 경우가 많거든요. 주변에서 많이 도와줄 때는 별로 필요하지도 않고 고맙지도 않지만 지금 같은 시기야 더 필요하고 더 고맙겠죠. 더 필요하고 더 고마워할 때 쬐금 도와주면 더 보람도 나고 감동적이죠. 이런 것을 '싸게 봉사해서 더 큰 기쁨을 준다'. '봉사의 경제학'이라고. 말도 잘 만든다.
이번 백두대간 종주기는 양념을 너무 많이 쳤나. 담백한 맛이 별로 없겠네요. 할 수 없지 뭐, 좋은 말들이니까. 선은 쌓으면 좋고, 악은 쌓으면 나쁘니까. '선적익호 (善積益好), 악적 익불호 (惡積益不好)'. 말도 잘 만든다. 안녕, 이헌태 엎드림, 꾸벅 (10월 18,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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