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대선자금'에 술렁이는 정치권

입력 2003-12-13 10:38:24

정치권이 불법 대선자금 수수 사실로 휘청대고 있다. 한나라당이 정면 돌파 의지를 밝히며 '편파의혹'을 제기하자 이번에는 이광재(李光宰) 전 대통령국정상황실장과 안희정(安熙正.열린우리당 충남창당준비위 공동위원장)씨가 썬앤문 그룹 등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양상이다. 그러자 열린우리당 천용택(千容宅) 의원의 군납비리 의혹과 한나라당 권오을(權五乙), 열린우리당 이상수(李相洙).김덕배(金德培) 의원의 '고해성' 발언까지 겹쳐 정치적 동업자끼리의 자승자박(自繩自縛)식 '패닉 현상'마저 감지되고 있다.

◇고개숙인 정치권=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사무총장은 12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대선 비자금에 대해 실체적 진실과 관계없이 국민들에게 머리 숙여 거듭 사과드린다"고 했다. "과거 관행으로 공식적인 영수증 없이 불법 자금을 받아썼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말도 했다. "검찰의 발표에 대해 액수가 틀렸다느니 잘못됐다고 시비를 걸고 나간다면 그것은 우리 잘못"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할말을 잃은 것은 청와대도 마찬가지. 이 전 실장이 11일 검찰에 출두하자 청와대 한 386 참모는 "광재가 그동안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는데 막상 1억원 수수사실을 인정하니까 허탈하다"고 말을 흐렸다.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안에서는 이 전 실장 얘기를 아무도 안 하고 있다"면서 "분위기가 무겁다"고 토로했다.

대선 전후 썬앤문그룹을 포함, 여러 기업에게 최소 수억원대의 불법 자금을 받는 등 안희정씨를 둘러싼 의혹이 꼬리를 물자 열린우리당의 고민도 적지 않다. 한 핵심당직자는 "우리당이 대통령 측근비리의 비난을 고스란히 덮어쓰는 형국"이라며 "일손이 안 잡힌다. 한나라당이 끝나면 다음은 우리당 차례란 얘기가 나돈다"고 걱정했다.

◇힘 잃은 한나라 공세=한나라당의 공세는 검찰 쪽에 맞춰져있다. 검찰이 당 후원회 명부를 가져다 기업들에게 전화를 걸어 "비자금 낸 것 불어라"는 식의 수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총장은 "당의 후원회 명부를 악용, 일일이 (기업에)전화해서 '명단 다 가지고 있고 돈 낸 거 다 확보하고 있다. 얼마 줬냐. 불어라'는 식으로 수사하면 되냐"고 흥분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걱정은 어차피 드러날 추가 불법 대선자금 규모에 있지 않다. 문제는 정치권 전반의 불법 자금이 드러날 경우, 한나라당에 비해 당시 노무현 캠프 쪽의 액수가 적을 경우 한나라당만 결국 치명타를 입게 된다는 점이다. 이 총장은 "(검찰이)한나라당이 받은 돈을 다 끄집어내 국민들에게 완전히 (불법)이미지를 각인시켜 놓은 다음, 노무현 캠프쪽은 한나라당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았다고 발표하면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겠냐"고 비난했다. '돈이 적든, 많든 똑같이 발표해야지 시점에서 차이가 나면 한나라당만 손해를 본다'는 것이었다.

◇盧 캠프에 쏠리는 의혹=한나라당의 편파수사 주장에 검찰은 "밝히지 않는다고 수사를 안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조만간 진상을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4대 기업으로부터 502억원을 받았다면 적어도 대선 당시 노무현(盧武鉉) 캠프도 수십 내지 수백억이 흘러들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적지 않다. 한나라당이 주목하는 것도 이 점이다. 여기다 민주당 유종필(柳鍾珌) 대변인은 "후보 단일화 이후뿐만 아니라 노 대통령이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후보가 돼서 지지율이 55~60%에 달할 때 이미 '차기 대통령'이나 다름없었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행동했다"고 말해 불법 자금이 분당이전 민주당에 유입됐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그러나 검찰이 지금까지 밝혀낸 노 캠프 의혹은 이 전 실장이 대선직전 썬앤문 그룹에서 받았다는 1억500만원과 안씨가 수억원을 수수했다는 정황포착이 전부다. 또 지난해 대선 당시 대통령을 보좌했던 이 전 실장과 안씨 등이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이 줄곧 제기됐지만 확인된 기업은 썬앤문 그룹뿐이다. 그동안 민주당이 줄곧 제기했던 ▲128억5천만원 허위회계 처리 의혹 ▲이상수(李相洙) 전 선대위 총무본부장이 가져갔다는 제주도지부 후원회 무정액 영수증 363장 및 예금통장 등 증빙자료 은닉의혹 ▲12억6천만원의 횡령의혹 ▲대선 후 조달된 45억원의 출처 등 4대 의혹이나 열린우리당 정대철(鄭大哲) 의원의 '대선자금 200억원' 발언 역시 아직 진위조차 부각되지 않은 실정이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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