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이 부쩍 강화됐다.
단속경찰과 운전자들이 실랑이하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단속당한 음주 운전자들은 '운수(運數)'를 탓하거나 봐주지 않는다고 단속 경찰관에게 대놓고 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늦은 겨울밤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도로에서 추위와 싸우고 자동차 매연을 마시며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단속에 나서는 경찰관들은 마음이 편할까? 영천경찰서 남부순찰지구대 사무소인 역전파출소를 찾은 것은 지난 9일 저녁. 파출소에 들어서자 이날 주간근무를 막 마친 최경일(51.崔京一) 1소장은 "하필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골랐느냐"고 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근무한 최 소장은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야간근무에 들어가는 이점식(42.李点植) 2소장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했다.
영천시 완산동과 금호읍, 대창면, 북안면 등 4개 지역을 담당하는 남부지구대는 순찰팀 32명, 민원담당관 4명, 관리요원 2명 등 38명으로 구성됐다.
38명은 1소장, 2소장, 3소장 밑에 10, 11명씩 팀을 이뤄 근무한다.
근무교대는 주간근무-야간근무-비번의 순으로 이뤄진다.
대원들은 2명 1개조로 편성, 5대의 순찰차를 나눠타고 관할지역을 24시간 순찰한다.
남부지구대에 속한 4개 읍.면.동은 면적이 205㎢가 넘고 1만2천300여가구 3만5천명의 치안을 맡아야 한다.
관할면적이 넓고 도.농 통합지역인데다 영천시내에 상가와 주점 등이 밀집해 영천경찰서 4개 순찰지구대 중 가장 사건사고가 많다.
폭력, 도박, 강.절도, 경범죄, 교통사고 등 각종 사건이 하루도 안 터지는 날이 없다.
오후 7시30분. 관내 순찰활동을 나서기 위해 최경일 소장의 옷을 빌려 입고 박상태(37.朴相泰) 경장이 운전하는 26호 순찰차에 동승했다.
순찰차는 재래시장과 금호강 둔치, 국도4호선, 우회도로, 영천시내를 1시간30분가량 돌며 순찰활동을 했다.
초저녁인데도 추운 날씨와 불경기 탓인지 완산동 상가지역은 가게 불빛만 비칠 뿐 오가는 행인들은 뜸했다.
침체된 농촌경기의 실상을 순찰차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니 착잡했다.
별다른 상황 없이 순찰을 마치고 밤 9시부터로 예정된 목근무를 나가려는 순간 상황발생 무전호출이 들어왔다.
급하게 순찰차를 몰아 영화교 부근에 도착하니 12호 순찰차가 먼저 대기하고 있다.
순찰차 뒷좌석에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정모(50.임고면)씨가 잠들어 있었다.
정씨는 이날 완산동 한 옷가게 앞에 큰 대자로 누워 있다가 가게주인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넘겨졌다.
순찰대원들은 정씨의 신원을 파악한 뒤 택시를 불러 정씨를 귀가시켰다.
"신원이 쉽게 파악돼 그나마 귀가조치를 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파출소에서 재워야 합니다". 박 경장은 정씨를 파출소에 보호조치않고 안전하게 귀가시킨 게 무척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파출소에 재워주면 곱게나 자면 다행이죠. 술 취한 사람들은 자다가 깨서 경찰관에게 시비를 걸거나 기물을 파손하기도 하지요. 여자들이 술에 취해 파출소 안에서 용변을 보고 때론 옷까지 벗으면 정말 난감합니다".
밤 9시10분. 이점식 소장의 지휘아래 2대의 순찰차 요원들은 주남동 한전 영천지점앞 영천~경주간 국도에서 음주운전단속을 겸한 시차제 목근무에 들어갔다.
기자도 경찰모를 쓰고 야광띠를 두른 채 붉은 빛이 번쩍거리는 신호봉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국도를 오가는 차량들 중에는 과속 차량들이 많아 도로 한가운데서 하는 음주운전 단속은 여간 위험하지 않다.
볼을 때리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속에 2시간 가까이 서있으려니 춥기도 하거니와 다리도 아프고 목 안이 칼칼했다.
평소 안입던 내복까지 챙겨입어 추위는 덜했지만 손.발은 몹시 시렸다.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매일 하는 이런 일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고재식(32.高在植) 순경은 "경찰관도 사람이니 추운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직업의식 때문에 참는 것이고 때로는 추위에 언 발바닥이 몹시 아프다"고 털어놨다.
음주단속에 나서고 있던 이때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승용차 한대가 음주측정기를 들이대는 순간 갑자기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황급히 붙잡으려 했으나 그대로 달아났고 이점식 소장의 신호봉만 파손됐다.
이 소장은 인근 북안파출소 순찰차량에 달아난 승용차번호(86xx)를 불러주었으나 검거는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도주차량 운전자가 중간에 차를 놔두고 가면 단속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 추격전을 벌이다가는 자칫 더 큰 사고를 부를 우려가 있다고 이 소장은 설명했다.
이날 밤 두 시간에 걸친 목근무에서 300여대 차량에 대한 음주단속을 실시했다.
단속결과 음주운전 차량 2대, 무면허차량 1대를 적발했다.
"단속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는데 이렇게까지 단속해야 하느냐"고 묻자 누군가가 "직업상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어 속마음을 넌지시 털어놨다.
"욕 먹어가며 하는 단속이 누군들 좋겠습니까? 단속실적이 없으면 상부로부터 질책을 당하고 업무평가에도 불이익을 당합니다".
밤 11시30분. 파출소로 돌아와 언몸을 녹였다.
박 경장, 고 순경 등은 또다시 순찰에 나설 채비를 했다.
영천경찰서 김도경(金度炅) 방범과장이 순시를 나왔다.
이 자리에서 완산동 자율방범대장 배동호(47)씨는"자율방범대가 갈수록 인기가 없고 경찰의 사기도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다"고 전했다
10일 새벽 2시. 완산동 주점에서 술 마시다 싸움을 한 40, 50대 남자 두 사람이 파출소로 들어왔다.
경미한 폭력사건이어서 간단한 조사를 마친 뒤 두 명을 내보내자 새벽 3시가 가까웠다.
잠시 한가해진 틈을 이용해 경찰관들의 애환을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6년전 경찰에 투신한 박상태 경장은 "근무해보니 경찰관만큼 고생하는 직업도 없다"며 경찰에 대한 사회의 편견에 울분을 터뜨렸다.
역시 대학을 졸업한 고재식 순경은 "경찰을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선량한 사람들이 편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경찰의 임무"라며 "자식들에게 떳떳한 아버지 소리를 듣고싶다"고 말했다.
새벽3시를 넘어서자 이 소장은 "오늘은 이상하게 사건도 적고 더 이상 별다른 상황도 없을 것 같다"며 기자에게 귀가를 재촉했다.
모두 순찰을 나가고 독감에 걸려 내근중인 이상욱 경장과 이 소장 두 사람만 파출소에 남겨두고 나오려니 마음이 편치 않다.
"경찰이 잠들면 대한민국 질서가 잠듭니다". 4년차 고 순경의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영천.서종일기자 jise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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