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을 수능 성적에 따라 한 줄로 세워 놓고 대학 서열에 따라 먼저 데려가기 하는 식의 현행 대입전형 제도는 소수에게는 축복된 성취감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절대 다수의 수험생과 그 가족들은 소수의 우월감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들러리를 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수능 성적이 발표되고 원서접수가 한창인 요즈음 많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일부는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한 가정을 넘어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이다.
◇다양한 후유증
수능시험 후유증을 가장 심하게 앓는 쪽은 물론 수험생 자신이다.
수능시험이 종료되면 모든 구속에서 해방되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수능시험 당일날 가채점을 끝낸 순간부터 하루하루가 불안한 지옥이라고 말하는 수험생들이 많다.
몇몇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잘 알 수 있다.
"잠을 실컷 자고 싶었어요. 그러나 3일을 밤낮 없이 계속 잤더니 허리가 아파 더 잘 수 없었어요. 오히려 밤이 두렵습니다". 잠도 자신에게 궁극적인 위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가 '지옥이란 타인의 시선'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아이의 수능 성적은 직장 생활에서도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조기유학을 보냈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당분간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피하고 싶습니다". 지역 어느 중견 학자의 말이다.
"아이가 재수를 시작한 지 얼마 후부터 눈이 침침해 지고 머리가 세기 시작해서 이제 염색을 하지 않으면 백발입니다.
갱년기 장애까지 겹쳐 늘 몸이 가볍지 않고 아픕니다.
재수를 해서 조금도 성적이 오르지 않았어요". 안경알을 닦으며 이 중년 여성은 계속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아파트 같은 층에서 마주보고 사는데 한 집은 만족할 만한 점수가 나오고 다른 집은 그렇지 못하다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피차 얼마나 어색한지 모를 겁니다.
서로가 멀리서 어느 한 쪽을 먼저 보게 되면 눈치 못 채게 기다렸다가 다음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는 그런 문제만은 아닙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답답하고 아픕니다.
어떤 때는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요즈음은 화장도 하지 않는다는 어느 어머니의 우울한 독백이다.
차원은 다르지만 성적이 잘 나온 집도 나름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시험만 잘 치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벌써 마음 한 구석에는 허전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정신없이 쫓아다니던 그 때가 차라리 행복했던 것 같아요. 다른 잡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으니까요. 쉬니까 오히려 몸이 아픕니다". 갑자기 닥쳐온 여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어머니의 말이다.
"시험을 좀 잘 쳤다고 가족과 친척들이 부추겨주고 용돈도 덤으로 주고 했는데 날마다 밤늦게 술 취한 상태로 들어옵니다.
꾸중을 하면 반항하고 모든 것이 제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아요. 벌써부터 저런데 부모와 떨어져 있으면 어떨지 짐작이 갑니다". 품안에 있을 때가 자식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이 어머니는 요즈음 박탈감과 상실감을 함께 느끼고 있다며 허전해했다.
◇후유증 극복 방안
▲부모가 먼저 여유를 가져야=수능성적이 잘 못 나온 수험생은 아직까지 엄청난 좌절감과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
상당수의 수험생들은 표현을 안 할 뿐이지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진학 상담을 하다 보면 부모님께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이 많다.
그 미안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방법을 못 찾을 뿐이다.
그 미안함은 때로 반항심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따라서 부모가 먼저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모가 계속해서 심하게 꾸중을 하거나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면 학생은 설 자리가 없으며 밖에서도 자신 있는 태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입시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곰곰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점수에 맞추어 대학 등급을 한 단계가 올리고 내리고 하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부질없는 행위이다.
지금은 온통 점수에 매달려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리하지 말고 합격 가능한 대학에 지원하고 대학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부모부터 여유를 가져야 한다.
▲가족이 함께 하는 이벤트를 만들자=한 자리에서 밥도 같이 먹기 힘들었던 지난 일 년 동안 대부분 가정에서는 가족끼리 서로 말도 못하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긴장된 생활을 했다.
이제 결과에 관계없이 서로의 수고를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일종의 가족 단합대회가 필요하다.
주말을 이용해 야외로 나가보거나 함께 산행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난 뒤 정리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에 이상이 생기듯이 입시 전쟁을 치르고 나서도 정리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긴 호흡의 승부=단판승부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이제 멀리 앞을 내다보고 긴 호흡의 승부를 하겠다는 결의를 다져야 한다.
미래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한 번 명문대를 졸업했다고 해서 끝까지 기득권이 유지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진정한 공부는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시작된다.
앞으로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보다는 얼마나 필요한 실력을 갖추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다.
대학입시는 전체 인생에서 작은 한 과정에 불과하다.
입시와 관련된 모든 고통도 궁극에는 세월과 더불어 치료될 것이다.
이제 수험생과 가족 모두는 자신을 추스르며 심기일전해야 한다.
〈송원학원 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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