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300억과 700억

입력 2003-12-09 15:46:38

공자는 당대의 알아주는 변설가다.

그런 공자가 몇 차례나 낯을 붉히거나 탄식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공자의 친구 유하혜(柳下惠)는 악명 높은 도적 도척을 동생으로 둔 탓에 번민이 많았다.

공자가 이를 알고 자신이 동생을 타일러보겠다고 나섰다.

유하혜는 만류했지만 공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어렵게 도척과의 면담 허락을 받아 그와 대면하게 됐다.

그러자 도척이 일갈했다.

"밭 갈지 않고 먹으며, 베를 짜지 않고 입으며, 혀를 날름거려 제 멋대로인 시비판단을 꾸며 부귀를 손아귀에 넣으려 하는 자. 썩 물러가라. 그렇지 않으면 간을 꺼내어 점심 반찬으로 삼으리라".

▲공자가 물러가지 않고 변설로 대항하자 도척은 또 일갈했다.

"말과 행실을 왜곡하여 부귀를 구하려 하는 자, 그대보다 큰 도적은 없도다.

천하의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그대를 도구(盜丘)라 부르지 않고, 나를 도척이라 하는고". 이 일화의 진실 여부는 알 수 없다.

공자를 탐탁히 여기지 않는 장자파들의 책에서 나온 글이기 때문이다.

▲장자는 위정자들의 대의명분은 핑계라고 설파한다.

그는 일화를 통해 위정자의 대의명분은 도적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고 비꼬았다.

큰 도적의 졸개가 물었다.

"도적에게도 대의명분이 있습니까". 우두머리는 "있고 말고, 잘 들어보아라. 방 속에 있는 것을 미루어 아는 것은 성(聖), 스스로 먼저 방에 들어가는 것은 용(勇), 조용히 나오는 것은 의(義), 가부를 아는 것은 지(智), 훔친 물건을 고루 나누는 것은 인(仁)이다".

▲검찰이 어찌어찌 하다 1천 억 원 대의 지난 대선 불법자금을 확인했다고 한다.

대략의 규모는 한나라당이 700억원, 노무현 캠프가 300억원이다.

그것 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게 국민일반의 정치상식이다.

여야가 같은 정치공간에서 먹고 자고 숨쉬는데 그 본질이 달라질 수 없는 노릇이다.

잘 수사해보면 50보, 100보가 아닐까 싶다.

이런 게 우리나라 1류 정치 대선의 실상이다.

겉으로는 나라와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습이고, 뒤로는 부패와 위선이 가득찬 쓰레기통의 모습이다.

▲답답한 것은 그것 때문에 생겨나는 부작용이다.

도무지 나라가 앞으로 갈 생각을 않는다.

허구한 날 대선자금 타령을 들어야 하는 국민들의 처지는 더 안타깝다.

장자의 말을 빌리면 우리 정치인들의 대의명분 개발능력은 도둑보다 나을 게 없다.

백번을 양보해서 정치를 잘 하라고(?) 뒷돈을 대줬으면 국민들을 기쁘게는 못해주더라도 웃음이라도 짓게 해줘야 하는 게 도리다.

그 좋은 머리로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 일도양단의 타개책을 제시할 수는 없는 것인가.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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