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국회의원 되시겠다는데…

입력 2003-12-08 11:46:53

한때 너도나도 '사장' 명함 찍어 다니며 으스대던게 유행했던 시절, 망둥이 뛰듯하는 분수 모르는 세태를 풍자한 유행가가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노래가사 내용은 이랬다.

'길을 가다가 사장님! 하고 불렀더니 열에 아홉사람 모두가 뒤를 돌아봤는데 딱 한사람 그냥 가는 사람이 있어 누구냐고 물었더니 '전무라나'. 요즘 정가(政街)에 대고 '국회의원 출마후보님!'하고 부르면 열에 예닐곱은 목빼고 돌아볼 것 같다싶을 정도로 국회의원 한번 해보겠다는 장삼이사(張三李四)가 넘쳐나는게 70년대 유행가와 꽤나 닮아있다.

어느 오거리에는 연구소니 뭐니 이름 붙인 후보간판이 무려 6개나 밤중까지 불을 밝히고 있다.

거기다 간판까지는 안걸었지만 멀쩡하게 일 잘하고 있던 장관, 군수, 구청장까지 들썩대는걸 보면 봄색시 앙가슴 마냥 싱숭생숭해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건 분명한 것 같다.

국회의원.

도대체 그 자리가 뭐기에 그렇게들 집착하고 가산탕진의 모험을 무릅쓰고 목을 매다시피 하는걸까.

일부 선량(善良)들을 빼면 국민들 눈에 재벌 뒷돈이나 뜯다가 줄 잘못서면 감옥에나 가는 군상들 쯤으로 비쳐져있는 시답잖은 그 자리의 마력은 무엇인가. 금배지를 달면 도대체 팔자가 얼마큼이나 고쳐지는지 한번 보자.

국회의원의 월급은 804만5천950원이다.

연봉 9천655만여원. 거기에 연봉 5천600만원 보좌관이 붙고 4천600여만원 연봉의 비서관 1명에 연봉 3천147만원의 6급비서 1명, 연봉 2천700여만원과 2천75만원의 비서 2명 등 5명이 나랏돈으로 시중을 든다.

거기다 사무실운영비 명목으로 월 45만원, 차량유지비, 35만8천원, 유류지원비 80만원, 공공요금 지원비 91만원 등 매월 251만8천원을 덤으로 받는다.

중앙당에서 받는 지구당 지원비 2백만원은 별도다.

열차를 타면 새마을이든 무궁화호든 공짜고 비행기는 대한항공이든 아시아나든 국내선은 10% 할인받는다.

그쯤되면 장관.군수자리 팽개치고 나올만큼 쏠쏠하다 싶어서인진 모르나 언론에 오르내리는 출마 후보들의 숫자가 장난이 아니다.

민주국가의 의회정치 제도하에서 신분이나 직업에 따라 참정권이 제한될 수는 없고 돼서도 안된다.

그러나 현직 장관급 출마자가 9명이나 거론되고 대통령 비서관급이 18명이나 국정은 나몰라라 손놓고 금배지 달러 떼지어 뛰쳐나온다면 예사로이 넘길 일이 아니다.

그들 중에는 국회의원으로서도 충분히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자질과 국정철학을 지닌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들 중 일부는 지금 대통령이 국회로부터 거의 탄핵수준에 가까운 불신임을 받게할 정도로 실패한 국정을 실무적으로 이끌고 보좌해온 사람들이다.

국정 수행 솜씨와 지난 10개월간 해놓은 일을 보면 참 염치도 좋은 사람들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들의 정치적 사명은 국회출마가 아니라 노 대통령이 성공된 개혁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게 최후까지 그를 보필하고 바른 길로 함께 이끌어주는 일이다.

개혁정치란 바로 그러한 합리적 인식의 실천이다.

그런 정치철학도 없는 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 바로 그런 것이 개혁돼야 할 구태정치라 본다.

자치단체장의 출마 역시 참정권 논리보다 목민관의 성실의무와 책임의 정치가 먼저 고려돼야 옳다.

지역민이 군수.구청장 뽑아준 것은 4년간 온전히 목민의 길만을 성실히 가달라는 신뢰를 약속해준 것이다.

어젯밤 TV를 보니 출마이유는 입을 모은듯이 '지역발전을 위해서…'란다.

6개월의 행정공백이 지역발전을 위한 일인지 대답해보라. 구청장은 국회출마하고 빈 구청장 자리는 구의회의원쯤 되는 분이 보궐선거 치러 들어앉고 또 다시 빈 구의회 의원자리는 구의원 보궐선거로 채우고…. 그런 도미노식 보궐선거전 소모가 과연 지역 발전을 위한 것인가. 궤변도 유분수다.

장관과 청와대 비서관 출마후보들은 노 대통령과 끝까지 개혁정부의 운명을 같이하는 것이 국민이 부여한 의무요, 자치단체장 출마후보들은 임기 복무라는 작은 약속을 지키는 신의의 정치부터 배우는 것이 순리다.

출마의 야심을 미루라. 태평성대라면 모를까 국민, 군민, 구민들의 생업이 말이 아닌 지금은 목민관의 한눈 팔새 없는 선정(善政)이 더욱 절실한 때다.

목민관이 제 출세길따라 백성을 헌신짝 버리듯 팽개치고 동헌을 비운다는 것이야말로 구태정치의 배덕(背德)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유권자들은 눈을 크게 뜨자.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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