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이 빚더미에 깔려 신음하고 있다.
매년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빚은 늘어만 갈 뿐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상당수 농민들은 자포자기 상태다.
젊은 농군들도 좌절하고 있다.
의욕을 앞세워 무언가 새로운 작목 재배에 도전하려면 농기계가 필요하고, 농협 등에 농자금을 빌려 거액의 농기계를 구입했다가 농사에 실패하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농사는 지어야 한다.
희망없는 농사만 되풀이할 뿐이다.
영덕군 남정면에 사는 최모(47)씨는 한때 알부자였다.
농토도 많았고, 부지런히 일해 돈도 적잖게 모았다.
그러나 빚 보증 때문에 전재산을 날렸다.
무려 1억여원에 이른다.
동네 사람을 비롯해 면내 지인들이 대출보증을 부탁해 인감을 떼준 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보증을 서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야반도주해버렸고, 맞보증이 고구마 줄기마냥 얽히고설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감나무단지 등 모든 농토가 넘어가 버렸다.
최씨는 술로 날을 지새다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보낸 허송 세월이 2년. 집안뿐만 아니라 자신의 건강도 엉망이됐다.
하지만 그는 올해부터 다시 마음을 잡고 농사를 시작했다
자신의 농토는 없지만 빌린 땅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아직 젊은 나이인 만큼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그러나 너무 힘들다고 한다.
갈수록 농촌의 여건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최씨는 "더도말고 열심히 일한 만큼만 보상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1만평의 과수농사를 짓고 있는 박모(63.군위군 군위읍)씨. 불과 5, 6년전만 해도 부자는 아니었지만 자식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을 만큼 남부럽지 않는 생활을 해왔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영농자금을 얻어 최신 농기계를 구입했고, 사과를 수확해 갚을 생각에 장기저리의 주택융자금을 받아 낡은 집도 수리했다.
그러나 해마다 제값을 받지 못하는 농산물 값 하락에다 농자재.인건비 상승이 보태져 빚은 해마다 늘어났다.
이자도 갚기 힘든 그 빚은 이제 1억원이 넘었다.
8명 식구가 1만여평의 과수농사에 힘을 보태면 한해 평균 사과 2천500여 상자와 배 1천상자를 수확해 농약대.인건비를 빼고도 3천여만원 이상의 소득을 예상했다.
그러나 올해도 박씨의 꿈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지난 9월 태풍 '매미'가 과수원을 폭격맞은 전쟁터로 만들었고, 과수원의 사과와 배 90%가 떨어져 올 농사 전체의 수확은 사과 200여상자, 배 150상자가 고작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해동안 열심히 땀 흘려 농협 이자라도 갚겠다는 작은 희망은 수포로 돌아갔다.
게다가 건강상태가 좋지못한 박씨 부부는 요즘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박씨는 위종양에다 간 상태도 좋지않다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고 있으며, 부인도 신경통, 관절염에 고협압, 위장병까지 얻어 병원신세를 지지않는 날이 없을 정도다.
박씨는 "요즘 같으면 죽지 못해 억지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정부가 아무리 획기적인 농촌 정책을 수립한다 해도 이제는 믿지 않는다"고 했다.
영양군 석보면 김모(50)씨는 지난 수해때 주택이 반파돼 면사무소로부터 위로금 20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통장에 입금된 이 돈을 한푼도 만져보지 못했다.
김씨는 농협의 신용불량자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주택복구사업 지원금 700여만원을 부인 명의로 받아 집을 짓고 있다.
같은 면에 사는 이모(58)씨는 올해 고추수매를 다른 사람 명의로 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수매를 하면 농협 빚 때문에 통장 입금액이 바로 인출되기 때문. 영양지역 입암농협과 산하 석보지소의 경우 각각 20, 30명의 농민들이 신용불량자로 올라 있다.
이들은 신용회복 전까지는 이웃 또는 친척에게 부탁해 남의 명의로 각종 농자금을 받아야 한다.
상주시 화서면 한모(42)씨는 직장 생활을 하다 회사의 부도로 농촌에 돌아와 3년째 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그러나 가격폭락으로 은행 빚만 수천만원으로 늘어났다.
최근엔 월 3만원에 불과한 전기요금도 몇개월째 못내 단전예고 통보를 받았다.
귀향 당시 투자한 돈에다 은행 빚을 갚기 위해 집까지 경매처분해야 한다.
딱히 살 곳이 없는 한씨는 가족들과 함께 한겨울에 거리로 나앉을 형편이다.
농민 후계자로 30년간 농사를 짓고 있는 장모(50.성주군 대가면)씨는 지난해 태풍 '루사'와 올해 잦은 비로 참외농사에 실패했다.
벼농사마저 부진해 영농자금 상환은 커녕 지방세 120만원도 못내는 실정이다.
장씨는 "2년 연속 불어닥친 태풍으로 빚만 늘었다"며 "내년 농사준비를 해야 하지만 영농자재비조차 마련하기 힘들어 30년 지어온 농사를 포기할까 신중히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장영화.최윤채.정창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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