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아직도 남아선호?

입력 2003-12-06 10:36:35

지난 30여년간 사회 경제적 발전은 급속한 도시화 및 산업화를 가져왔고, 여성의 사회참여율이나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도 상당한 진전을 보여 성평등적 의식구조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 남아선호관념은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 있어 출생성비 불균형이라는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전 세계적 통계에 의하면 정상 상태에서의 출생성비는 여아출생 100명당 남아 출생수가 105명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남아 비율이 높은 것은 연령이 진행되면서 남자의 사망률이 여자의 사망률보다 높은 것을 감안한 자연의 섭리로 인식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른바 '가족계획정책'이라고 불리는 인구억제 정책의 성공으로 출산력이 급격히 저하된 1980년대부터 출생성비가 본격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자녀를 적게 낳는 데는 동조하면서도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이중적 가치관속에서, 일부 여성들은 자신의 건강을 담보로 태아성감별과 인공임신중절, 심지어는 아예 임신수단 자체에서부터 원천적으로 여아의 임신을 막는 등 비이성적인 사회현상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남아선호'를 넘어 '남아선호병(病)' 내지 '남아선호교(敎)'라고 할 정도로 목숨바쳐 아들을 낳아보려고 한다는 점에서 이미 개인적 차원을 넘어섰다고 본다.

전국 규모의 한 연구에 의하면 아들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꼭 있어야 한다' 는 의견이 30%로 나타났으며, 경북의 경우 약 84%로 나타나 경북지역의 남아선호관념이 매우 높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남성보다는 여성, 직업이 없는 여성보다는 직업을 가진 여성에게서 남아선호가 더욱 강하다는 연구결과는 결국 지금도 여전히 여성의 역할과 지위가 아들을 통해 규정되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과 사회참여를 하는 여성의 경우 오히려 아들을 낳음으로써 시댁에 더욱 떳떳할 수 있다는 현실적 모순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남아선호에 따른 성비불균형 현상은 각종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가령 출생성비의 불균형은 결혼적령기의 성비불균형으로 이어지면서, 2010년경에는 결혼적령기 여자 100명당 남성 124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국외로부터 신부를 수입하겠다는 플래카드를 보는 일이 그리 신기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배우자를 찾지 못하는데서 오는 성범죄의 증가나 동성애 문제, 독신의 증가. 결혼연령이나 결혼 풍속의 변화 등 복합적인 사회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편 산모는 태아성감별, 낙태라는 불법행위를 함으로써 도덕적 가치관의 혼란을 경험하게 되고, 자신이 여성이면서도 여아보다 남아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심리적 모순에 대한 갈등을 감내해야 하는 실정이다.

또한 인공임신중절, 성감별 낙태 등으로 인한 생명경시 풍조가 확산되고, 이에 관한 의료비용도 의료보험 급여대상에서 제외돼 그 규모가 한해 약 200억에 이른다고 하니 가계의 부담뿐만 아니라 실로 국가적인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동성동본금혼법 폐지, 남성위주 호주제도 폐지 등의 개혁과 아울러 사회에서 여성 지위의 향상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선호관념을 극복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의 의식구조상 단기간에 불식될 수 없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주의와 가족이기주기의 결합으로 인한 편익과 부계중심 가부장적 가치관의 견고한 결합의 결과일 것이다.

즉 자녀를 적게 갖기를 원하면서도 대(代)를 이을 아들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는 관념, 그리고 아들은 그 구체적인 '대'라고 보기 때문에 남아 출산결정은 때로 가족단위에서 내려지고 강요되기도 한다.

남아선호관념을 극복할 근본적인 해소책은 바로 개인 및 가족 스스로가 일상에서 남아선호를 개혁하는 범국민적 의식 전환운동의 전개가 필요하다.

또한 남녀차별을 시정할 제도적 장치가 더욱 개선되고 여성지위향상에 대한 실질적 정책이 이루어짐으로써 제도와 현실사이의 괴리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아들이 없어도 된다'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동시에 '아들을 낳았으면 좋겠다'라는 양면성, 양성평등적 의식을 수용하면서도 여전히 잠재의식 속에는 남아선호가 폭넓게 남아 있어 아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과감히 떨쳐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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