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순기자의 인력시장 체험

입력 2003-12-06 08:58:00

요즘같은 침체경기에 가장 민감한 사람들은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다.

새벽부터 인력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잡일거리라도 얻으면 다행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공사장 일감도 뚝 떨어진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일용직 구직자들을 찾아 나섰다.

4일 새벽 5시. 매일 새벽 인력시장이 열리는 영주시 영주2동 성누가병원 앞 도로변으로 향했다.

면장갑을 끼고 모자달린 두툼한 점퍼 차림인데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새벽 공기가 무척 차갑다.

금세 코가 시려온다.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하루 일감을 얻기위해 벌써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인도위에서 서성이고 있다.

모두가 작업복 차림이다.

털모자를 쓴 40대가 힐끗 쳐다보고는 말을 건넨다.

"일하러 나왔소?" 머뭇거리다 "예"라고 대답했다.

"이쪽으로 오소". 공사장 폐목으로 불을 지핀 화목난로 곁으로 불렀다.

잠시 뒤 다시 말을 건넸다.

"실직했수?"

뭐라고 말할까 망설이는 순간 봉고차 한대가 길가에 섰다.

우르르 사람들이 차로 몰려든다.

공사현장에서 인부들을 구하러 온 모양이다.

차에서 한 사람이 내려 대여섯명의 사람들을 골라 태우고서는 영주역 방면으로 떠났다.

남은 사람들은 다시 난로가에 둘러섰다.

조금 전 실직했느냐고 묻던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오늘 처음 나왔는데 어떻게 해야지요?" 하지만 아래 위를 훑듯 쳐다보고는 말이 없다.

다시 1t 트럭이 멈춰 섰다.

차창이 내려지고 "질통 질 사람"이라며 외치자 사람들이 앞다퉈 뛰어 간다.

"당신 타소. 당신은 말고… 어이, 당신도 타소". 적재함에 10여명을 태운 트럭은 곧바로 인력시장을 떠났다.

푸르스름하게 먼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구두를 신고 공사장 가려 했소? 차림새가 그래 가지고서야". 타박을 듣고서야 신발을 내려다 봤다.

하긴 이런 차림으로 나왔으니 누가 일을 시키려 할까.

"장이 끝났으니 이제 집으로 그만 가소". 고개를 들자 함께 남아있던 네댓 명도 저만치 발길을 옮기고 있다.

다들 힘이 빠진 터덜 걸음이다.

하긴 저들에게 힘든 것은 질통을 지는 것도, 추운 날씨에 벽돌을 나르는 것도 아니다.

가장 큰 실망은 일이 없을 때다.

"아직은 아니지만 조금 더 있으면 동절기 공사 중지로 일감이 없어요. 아예 다른 곳에서 일감을 찾아보는 게 좋을 거요". 멍하니 혼자 남은 게 안쓰러웠던지 충고 한마디를 남기고 그도 발길을 돌렸다.

5일 새벽 4시반. 차림새를 정비했다.

아예 장화를 신고 나갔다.

목장갑도 구두닦던 헌것으로 바꿨다.

일하는 사람의 복장을 갖췄다.

"이, 타이소". 이 날은 운수가 좋았던지 복장이 그럴 듯했는지 여럿 사이에 끼여 쉽게 트럭을 탈 수 있었다.

트럭이 멈춘 곳은 영주시내를 떠나 풍기읍내 4층짜리 신축 상가건물의 콘그리트 타설 현장. 아직 동이 트지않은 새벽임에도 라이트를 켠 레미콘 트럭이 분주히 오가는 중이다.

배정된 일감은 콘크리트가 굳은 옹벽에서 거푸집을 떼어내는 일. 해머와 '빠루'라는 연장을 이용해 단단하게 굳은 콘크리트에서 거푸집을 벗겨내는 일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일을 해보겠다는 욕심에 6m 아랫쪽 옹벽 밑으로 내려갔다.

"어이, 거기 왜 내려 가는 거야? 위험해! 올라 와!"

현장 감독인 우상길(45.안동시 용상동)씨가 마구 고함을 지른다.

지난 여름부터 공사장에 나와 하루 일당 8만원을 받는 전종호(35.영주시 휴천1동)씨도 한마디 보탠다.

"이 양반 큰일 날라고 그러나". 거푸집과 각목, 비계 쇠파이프가 무너지는 옹벽 아래쪽에서 어물쩍거리다 된통 혼쭐이 났다.

대여섯명이 한꺼번에 하는 작업인 거푸집 해체는 오전내내 이어졌다.

점심을 해결하고 공사장으로 돌아오자 먼저 식사를 끝낸 인부들이 곳곳에서 스티로폼을 침대삼아 눈을 붙이고 있다.

오후 1시. 4kg쯤 되는 거푸집 판넬 200여장을 옮겼을까, 다시 같은 작업이 반복됐다.

그러나 공사장 인부답지 못한 서툰 몸짓을 보고 초보자임을 눈치챈 듯 오후 새참 때쯤 철망 담장을 치는 용접 공사 현장으로 쫓겨났다.

"이리 오소". 온통 얼굴이 용접연기에 그을린 박광식(48.영주시 하망동)씨가 종이컵에 막걸리를 건네며 싱긋 웃는다.

"막걸리 안주는 김치가 최고지". 올해로 20년째 용접일을 하고 있다는 그의 일당은 10만원. "갈수록 용접 일감이 줄어 들어 다시 울산으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늘어놓는다.

오후 6시. 온종일 움직이다 보니 배가 무척 고팠다.

모처럼 고된 일을 한 탓인지 허리도 아파온다.

해질 무렵쯤 되자 현장 사무실에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적으러왔다.

오늘 일한 사람들 머릿수를 확인하는 것. 일당 7만원은 바로 받지못했다.

15일쯤 사무실에서 지급한다는 말을 듣고 현장을 떠나는 트럭 적재함에 몸을 실었다.

영주.권동순기자 pino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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