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숙제는 줄었지만 공부는 늘었다

입력 2003-12-05 15:5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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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이 다가왔다.

하지만 방학을 맞는 분위기는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는 것이 학교 관계자의 말이다.

들뜬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고, 종업식날 좋아서 함성을 내지르는 아이들도 별로 없다는 것.

방학 동안 적게는 3, 4개 많게는 7, 8개의 학원을 다녀야 하는 현실이 방학의 신명을 빼앗아 가버린 것은 아닐까. 고교생들의 경우 등교는 물론이고 학원 수강까지 내몰려야 하니 0교시 수업, 보충수업으로 늦은 밤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했던 학교 생활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올해는 특히 예년에 비해 방학이 늦어지는 대신 2월 학사 일정이 거의 없어진다.

학생들로선 겨울방학이 더 짧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봄방학이 길다고 해도 그때는 새 학교, 새 학기 준비에 쫓기기 때문에 과거 겨울방학이 주던 지루할 정도의 푸근함은 생각하기 힘들어졌다.

◇늦어진 방학=교육부가 지난해 공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2월 학기와 봄방학 운영 여부를 학교장 재량에 맡긴 이후 방학 시기나 기간이 학교마다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는 지역 대부분의 학교들이 방학을 예년에 비해 열흘에서 보름 가량 늦출 예정.

초등학교의 경우 내년 1월초 방학에 들어가 2월10일을 전후해 며칠 등교했다가 13일쯤 졸업식과 동시에 학년을 마친다.

2월 학기 수업일수는 고작 5, 6일뿐인 것. 중.고교는 아예 내년 1월10일쯤 방학에 들어가 졸업식 등으로 2, 3일 등교하는 것을 빼곤 2월말까지 이어진다.

개학과 동시에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셈. 이는 학년말에 교육과정이 사실상 종료돼 2월 한달간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대구시 교육청 관계자는 "2월에 이뤄지는 교육과정을 겨울방학 이전으로 흡수, 2월 수업 일수를 최소화함으로써 졸업식과 종업식, 입학식 준비 등으로 과중된 교원의 업무를 줄여 학생들에 대한 생활지도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방학이 끝나면 곧바로 신학기에 들어가니 만큼 겨울방학은 이제 학년을 마무리하고 새 학년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로 바뀌고 있다.

◇빼앗긴 방학=과거의 방학은 그야말로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쉬어 가는 휴식기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요즘은 입시교육의 연장선이 돼 버린 상황이다.

학부모들은 방학 동안의 노력 여하에 따라 새로운 학년에서의 위치가 어느 정도 정해진다고 여기고 선행학습을 시키는 데 몰두한다.

학원을 쫓아다니느라 학생들은 학기중보다 더 바빠진다.

한 중학교 2학년생은 "올 겨울에도 어떤 학원에 다닐지 대충 결정됐는데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기간은 2, 3일 정도뿐"이라며 "방학 때 학원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학원 선생님께는 집에서 며칠 쉬다 오겠다고 인사해야 할 정도"고 했다.

더욱이 올해는 중.고교의 방학이 늦춰지는 대신 2월말까지 계속되다보니 새 학기 준비도 학원에서 해야 할 판이다

학부모들은 "누구는 방학 동안 뭘 배우고 누구는 어디를 다닌다며 야단인데 우리 애라고 그냥 놀릴 수만은 없지 않느냐"며 이를 당연시한다.

선행학습이 주는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거나 지나친 사교육 의존은 학생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보고서 따위는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반응이다.

이웃의 또래들이 하는 건 나도 시키겠다는 학부모의 조바심에 방학은 이미 사교육에 빼앗겨버린 것이다.

◇방학을 돌려주자=최근에는 방학에 대한 개념도 달라지고 있다.

방학 기간이 학교장 재량에 의해 정해지고, 무리하게 많은 과제를 요구하기보다는 새로운 교육과정에 맞춰 '학생들이 생활을 통해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바꿔가는 추세다.

방학은 학교에서 미처 배우지 못한 것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된다.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봉사의 땀을 흘리는 일, 사회적 이슈에 대한 참여 등은 학생들에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일깨우는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폭넓은 독서로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취미나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는 것도 방학 때나 가능한 일이다

관심과 흥미가 자발적인 학습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억지 공부는 오히려 관심과 흥미를 떨어뜨려 쉽게 지치게 만든다.

대구시 교육청 중등과 권충현 장학사는 "7차교육 과정과 2005학년도 이후 입시는 단순 암기에서 벗어나 창의력과 논리력, 사고력을 요구한다"며 "이는 단시간에 습득되는 것이 아닌 만큼 방학 기간 다양한 체험과 폭넓은 독서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글: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사진: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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