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길라잡이

입력 2003-12-05 08:57:55

일본의 한 무사 이야기입니다.

떡을 훔쳐먹었다는 이유로 떡집 주인에게 쫓겨 집으로 뛰어든 아들을 두고 '우리 아들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며 뒤쫓아온 떡집 주인과 옥신각신하던 무사는 이런 제안을 했답니다.

자기가 검으로 아들의 배를 갈라 그 속에 떡이 들어 있으면 그 놈은 도둑이니 죽어 마땅하고, 만약 떡이 없으면 떡집 주인 또한 무고한 생명을 죽게 한 죄로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떡집 주인도 이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결국은 떡 때문에 두 목숨이 순식간에 사라졌답니다.

이 무사 이야기와 조선초기 대제학까지 지낸 윤회의 일화를 견주어보면 어떨까요. 그가 먼 길을 가던 중 하룻밤 신세를 진 집에서 진주를 훔친 도둑으로 몰렸으나, 그 진주를 삼킨 거위를 살리기 위해 온갖 굴욕적 언사를 참아내고는 이튿날 아침, 그 거위의 똥을 뒤적여 진주를 찾아주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조급한 일본 무사보다 거위가 똥을 눌 때까지 기다린 윤회의 처사가 훨씬 더 인간적이지요.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 표출되는 집단이기주의의 악다구니를 지켜보면서 이 말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극렬한 행동보다는 우선 말로 해야지요. 그런데 말에도 조급함의 열기가 그대로 묻어 있는 천박한 말이 있는가 하면, 격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분노까지도 서늘하게 삭인 표현으로 그 뜻을 더 크게 전달하는 멋있는 말이 있습니다.

①"…날 품에 안고서 사랑을 속삭였잖아/사랑의 눈을 뜨게 해놓고 이별을 가르쳐 준 너…나를 한 번 안아주세요/너의 뜨거운 눈빛 너의 떨리는 손길 깊이 간직할거야/날 여자로 만들어 준 너…". ②"늦겨울 눈 오는 날/날은 푸근하고 눈은 부드러워/새살인 듯 덮인 숲 속으로/남녀 발자국 한 쌍이 올라가더니/골짜기에 온통 입김을 풀어놓으며/밤나무에 기대서 그 짓을 하는 바람에/예년보다 빨리 온 올 봄 그 밤나무는/여러 날 피울 꽃을 얼떨결에/한나절에 다 피워놓고 서 있습니다".

①은 왁스가 부른 유행가 가사이고 ②는 정현종의 시입니다.

남녀 관계도 ①에서처럼 혀 끝으로만 말하면 경박한 가 되지만, ②에서처럼 눙쳐서 멋스럽게 표현하면 이 되지요. 농담이나 해학에서조차 품격을 잃지 않는 말이 시의 말입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좋은 시를 많이 읽고 시의 어법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은 아름다운 미래사회의 초석을 놓는 일이지요.

올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킨 말로 "대통령 못해먹겠다"가 꼽혔다지요.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수긍이 가는 말이지만 만약 이 말도 시적으로 표현되었다면 또 다른 파장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요? 김동국(아동문학가.문성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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