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 기자의 영화보기-'미스틱 리버'와 이스트우드

입력 2003-12-04 09:02:16

뱁새눈을 한 더티 해리가 악당에게 내뱉는다.

"Make my day!". '운수좋은 날로 만들어달라'는 뜻이지만 그냥 "너 잘 만났다"로 번역된다.

선전포고 같은 이 대사 이후 악당들은 해리의 총에 무자비하게 살륙된다.

가공할 위력의 매그넘총을 휘두르며 악당 보다 더 잔인한 형사 더티 해리. 클린트 이스트우드하면 '더티 해리'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또 한 작품이 있다.

담배를 질근질근 씹으며 총을 쏘는 '황야의 무법자'. 두 편 모두 권선징악의 단순 명료한 캐릭터. 악에는 악으로 맞서며 오랫동안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돼 왔다.

그의 나이도 이제 74살이 됐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년)에서 연로한 모습에 비까지 맞아 여간 처량해 보이지 않았던 그지만 왕성한 창작력은 여전하다.

지난해 '블러드 워크'에 이어 올해는 '미스틱 리버'(5일 개봉)를 내놓았다.

이제까지 59편에 출연했고, 26편을 감독했다.

일흔 고개를 넘고도 매년 1편의 작품을 연출하고 있는 그의 창작력은 놀랍기만 하다.

'블러드 워크'에선 심장까지 이식하고 살인자를 쫓는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출세작이 권선징악의 B급 오락물이지만, 그가 추구하는 영화들은 'A급 영화'라는 점이다.

심리스릴러 '어둠속에 벨이 울릴 때좦, 인간의 탐욕을 그린 '추악한 사냥꾼', 재즈영화 '버드', 수정주의 서부영화 '용서받지 못한자'…. 늘 다양한 장르에서 인간미 넘치는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락영화도 그가 만들면 인간의 냄새가 난다.

이번 주 개봉하는 '미스틱 리버'도 마찬가지다.

미스틱 강이 보이는 허름한 동네에 살던 세 친구가 있다.

데이브(팀 로빈스), 지미(숀 펜), 숀(케빈 베이컨)은 변치 않는 우정을 맹세한 사이다.

어느 날 데이브가 사내들에게 납치돼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25년 후. 지미의 딸이 살해당하자 데이브는 살인용의자로, 지미는 피해자로, 숀은 수사관으로 다시 재회한다.

영화의 결말에 미스틱 강물이 삼킨 숨겨진 반전이 자리잡고 있지만, 영화는 내내 죄책감과 불신의 세월을 담아내고 있다.

연민과 슬픔, 비겁함과 복수의 톱니바퀴가 한치의 어긋남 없이 묶여 돌아간다.

'LA컨피덴셜'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브라이언 헬겔랜드의 잘 짜여진 시나리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노련한 연출, 노장감독에 대한 존경이 묻어나는 톱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 거기에 심장을 뜯어 잘근잘근 씹는 듯한 드라마.

B급 오락영화 '더티 해리'에 맺힌 한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또 한번 푼다.

137분. 15세 관람가.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