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365-기다림의 미학

입력 2003-12-04 09:28:07

얼마 전 '캣츠'라는 뮤지컬 공연을 봤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어두운 공간 속에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짧은 순간이 있었다.

조명이 켜지고 고양이 복장을 한 배우들이 등장할 때까지의 기다림은 많은 관람객들에게 묘한 기대감을 즐기게 했다.

조국을 위해 왜국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신라 박재상의 부인이나 백제 정읍사에 얽힌 기다림은 목숨을 건 숭고함이 배어 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모든 일에 있어 기다린다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우리들 아닌가. 그래서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급행료를 주거나 주변의 배경을 동원해 남보다 먼저 모든 것을 처리해야 직성이 풀린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무능하게 보이고 마치 무슨 큰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다.

또 항상 무엇에 쫓기듯 허둥거리며 살고 있다.

더욱이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신호등이 채 바뀌기도 전에 출발하거나 자기 앞에 끼어들면 경적을 울리고 차창 밖으로 고함을 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또 관광지에서 줄을 서지 않거나 식당에서 일행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식사를 하는 사람, 휴게소에서 음료수를 마시지 않고 버스에 가지고 가서 마시는 일 등 때와 장소를 망각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우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신호등이 없는 거리인데도 경적소리나 운전자의 고함 소리 없이 자연스레 움직이는 방콕 시내의 자동차들, 식당에서 조용히 담소하면서 식사를 즐기는 모습, 공공장소에서 두 사람만 모여도 줄을 서는 모습, 공항이나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책을 읽는 모습 또한 시끄럽게 사는 우리들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보인다.

동해안을 따라 강릉에 가면 바다와 호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경포대가 있다.

이곳에는 다섯 개의 달이 뜬다고 한다.

바다.

호수.하늘.술잔.님의 눈동자에 비친 달 등등. 이들을 감상하기까지의 기다림도 낭만과 여유 속에서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인생이란 긴 여행을 하고 있다.

힘이 들면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마음이 급하면 한숨 돌리는 여유도 부린다.

설사 우리가 다하지 못한 일들은 다음 세대가 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미래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래서 기다림은 새로운 잉태를 위한 소중함을 담고 있는가보다.

이희도

(주)우방관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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