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오늘은 집에서 저녁 먹는다는데요".
"진짜 와야 오는 거지…".
제 남편은 집에서 신용불량자로 찍힌 지 오래입니다.
일찍 퇴근한다는 말을 하고도 갑작스런 술 약속 때문에 늦는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속는 것도 한두번이지, 시어머니와 저는 '또 어디 술자리로 불려갔겠지' 하는 생각에 밥할 생각도 않습니다.
처음엔 진짜 오는 줄 알고 따끈따끈한 밥을 해놨다가 식은 밥 만들기 일쑤였거든요.
그런데 저녁 8시가 넘어 남편이 진짜로 왔습니다.
저녁시간에 만나기 힘든 아빠를 보곤 아이들이 좋아하는데 남편의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남편 왈. "응? 노래방 아니다.
집에 왔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더군요. 딸아이의 피아노 치는 소리가 상대방이 전화로 듣기에는 노래방 음악으로 들렸던 모양입니다.
하기야 남편이 초저녁부터 집에 있으리라는 생각을 못 했기 때문이겠지요. 남편은 급하게 차린 밥을 먹자마자 제 눈치를 슬쩍 보곤 술자리로 나갔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라면서요.
남편의 '귀가(歸家) 기피증'은 이미 총각시절부터 습관으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별 약속이나 할 일이 없는 날도 회사에서 시간을 때우며 일찍 집에 오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요. 그래서 아침에 남편을 깨우며 몇 시에 왔느냐고 묻는 일이 일상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 남편은 "12시 조금 넘어 일찍 왔다"고 합니다.
새벽 2, 3시까지 술을 마시는 날에도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제가 잠이 들어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얼마전 대구로 온 40대 남자 회사원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에서는 2, 3일전에 아내에게 저녁 약속이 있다는 걸 미리 알리지 않으면 일주일내내 시달립니다.
그런데 대구에서는 오후 4, 5시 퇴근시간이 돼갈 때쯤 갑자기 술 약속이 잡힙니다.
평상시에는 아내에게 늦는다는 전화도 잘 안하더군요. 오히려 일찍 들어가는 날 전화를 해 저녁밥 해놓으라고 하더군요".
'이 집은 누구인가'를 펴낸 건축가 김진애씨는 집이 남자를 밖으로 내몰고 있다는 재미있는 분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직장과 술집은 훤히 꿰뚫고 있지만, 집에서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는 등 무력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는 거지요. 남자에게 집은 '텔레비전 보기'와 '잠자기', '드문 식사하기' 정도의 '기능'적 장소로밖에는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다고 설명합니다.
귀가 기피증에 걸린 한국 남자들이 프랑스에서 산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같이 이혼을 당할 게 뻔합니다.
몇 해전 프랑스에서 만난 한 여성은 "프랑스에서는 남편이 이유없이 한달에 2, 3번 정도 집에 늦게 오면 이혼사유가 된다"고 하더군요.
'대구는 남자들의 천국'이라는 말이 하나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구의 남편분들, 아내 속 좀 그만 썩이는 게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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