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금융기관의 빚은 물론 각종 세금, 전기.전화요금 등을 연체하는 가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농촌은 더욱 심각하다.
그나마 목돈을 만질 수 있었던 특작농사도 궂은 날씨 때문에 망쳤고, 주요작물도 작황이 나빠 농민들은 허탈한 심정으로 한숨만 쉬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지역인 의성은 올해 고추농사가 거의 폐농에 가까운데다 마늘 또한 잦은 비로 병해를 입어 극심한 돈가뭄을 겪고 있다.
게다가 태풍 '매미'로 쌀농사마저 망쳐버리자 농촌은 말 그대로 '빈사상태'에 놓여 있다.
사정이 이 지경에 이르자 군청과 금융기관 등은 각종 체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특히 농협의 경우 연체비율이 작년 6%대보다 무려 배이상 늘어난 14%대를 기록, 연말을 앞두고 채권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금융기관들이 채권자들에 대한 가압류와 경매조치가 뒤따르면서 법원 또한 경매물량이 작년에 비해 15%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는 등 서민 생활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안동시 모 농협의 농민 대출총액은 460억원, 이중 상호자금이 330억원, 정책자금이 130억원으로 연체비율이 작년보다 2% 정도 불어 12%를 넘었다.
조합원 중 약 10%가 신용불량자로 등록돼 영농자금도 빌리지 못하는 처지다.
내년에는 농사를 짓고 싶어도 농비가 없어 주저앉을 판이다.
농협도 심각한 경영압박을 받고 있다.
부실채권을 순전히 자체적으로 책임져야 할 상호자금 대출이 정책자금 보다 월등히 많고 부채비율도 높아 농민과 공멸하는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축산농가 빚도 늘고 있다.
안동시의 경우 지난 1994년부터 97년까지 농어촌 구조개선사업에 따른 축산부분 경쟁력 강화를 위해 127개 한우 사육농가와 72개 돼지 사육농가에 105억원을 지원(융자)했다.
축산농가가 떠안은 부채 대부분은 이때 지원된 정책자금. 막연한 희망에 시설자금은 정부로부터, 운영자금은 가계대출이나 사채로 조달해 축산을 시작했지만 연이은 소값 파동에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때문에 농민 신용불량자가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다.
당초 축산정책자금 융자금 상환은 3년 거치 7년 균분상환 조건이었다.
지난 98년 이후 3차례의 농가부채 경감조치로 상환기간이 계속 연장되고 있다.
그러나 상환기간이 연장되면서 1년 이상 이자를 못내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가 안동에서만 자금지원농가의 16%인 32명에 이른다.
축산을 중단하거나 경영 악화로 이자조차 못낼 처지에 놓인 잠재 신용불량자는 50여명 이상. 이들은 사실상 파산상태이고, 운영자금이 고갈돼 더 이상 축산을 할 수 없다.
고령지역 역시 올 들어 각종 농작물의 작황이 나빠 농가 부채가 크게 늘었다.
농협 고령군지부 산하 조합원(농민)들의 연체 대출이 작년에 83억6천만원에서 올해 계속 늘어나 현재 115억원에 이른다.
이는 전체 대출의 7.94%에 이르는 수치. 작년 5.88%보다 훨씬 악화됐다는 증거다.
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지방세 체납액도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
일부 시.군의 경우 각종 체납액이 외환위기 이전보다 3배이상 늘어나 농촌 경제의 피폐함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농업이 중심인 지자체의 경우 제때 예산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도로 포장 등 시.군 자체사업이 계획 단계에 머물러 추진되지 못하는 등 관공서 체면이 말이 아닌 실정.
봉화군의 경우 지난 10월말까지 각종 지방세 체납액은 자동차세가 33%로 가장 많고, 취득세 27%, 재산세와 종합토지세 각각 10% 등 모두 5억2천700만여원에 이른다.
군청 재무과 권진기(33)씨는 "군세만 따질 때 봉화의 재정자립도는 3.7%"라며 "심각한 조세 저항마저 우려된다"고 했다.
청도군은 최근 5년간 체납된 지방세가 15억원에 육박해 외환위기 이전 4억5천만원에 비해 무려 10억5천만원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주시의 경우 체납 지방세는 무려 50억5천여만원에 이르며, 작년보다 19% 가량 증가했다.
체납세 중 징수가능한 세금은 31%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징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재산이 전혀 없는 경우가 18%에 이르렀고, 행방불명이 17%, 부도.폐업이 29% 등이었다.
고의악성 체납자도 많지만 세금을 내고 싶어도 당장 입에 풀칠할 돈도 없는 생계형 체납자도 크게 늘었다.
자동차세 17만여원을 체납한 강모(51)씨는 불황 때문에 직장에서 강제 퇴출됐다.
올해로 3년째 실업자인 그는 공사장을 전전하며 근근히 생계를 잇고 있다.
농촌에는 일거리가 없어 차를 타고 인근 시.군을 찾아다녀야 하는 강씨는 체납 때문에 번호판을 떼일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 공무원은 "고질, 고액 체납자의 경우 재산압류와 형사고발 등 강력한 조치를 펴고 있지만 실제로 돈을 받아내기 민망할 만큼 형편이 어려운 경우도 적잖다"고 했다.
정경구.이희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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