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빈곤시대(5)-자포자기 생계형 범죄

입력 2003-11-29 11:20:43

"어머니 제사상에 소고기는 올려야 할 것 같은데 주머니 사정은 빠듯하고 순간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었습니다".

새시 일을 하는 김모(52.부산시 부산진구)씨는 지난달 12일 어머니 제사를 모시기 위해 고향 김천에 도착했다.

제수용품을 사러 김천시 평화동 농협하나로마트에 들른 김씨는 집에 돌아갈 차비, 조카들 줄 용돈 등 돈 계산만 하다 진열대에 있던 쇠고기 한근(1만2천여원) 정도를 점퍼 주머니속에 품고 마트를 빠져 나왔다.

이때 김씨의 행동을 수상힌 여긴 직원이 김씨를 붙잡았고, 절도혐의로 입건됐다.

지난 26일 낮 12시50분쯤 포항시 송도동 주택가 2층 옥탑방에선 주인 김모(39)씨가 주방의 LP가스통을 폭발시키는 바람에 집이 모두 불에 타고, 자신도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했던 김씨는 작년 겨울 간경화 말기 판정을 받았고, 식당에서 일하는 아내(40)가 생계를 책임져 왔다.

생활비와 두 자녀의 뒷바라지에도 벅찬 일당 3만원이 수입의 전부.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 4천만원이 됐지만 정작 김씨는 돈이 없어 일년간 치료 한번 받지 못했다.

김씨는 폭음으로 날을 지샜고 우울증도 심해졌다.

아내와 두 자녀는 집이 불에 타는 바람에 병원 복도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팍팍한 세상살이.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는 빚. 오죽하면 자신의 집에다 불을 지르고 자신의 목숨을 끊을까.

지난 6월18일 김천시 남면의 김모(84) 최모(81.여)씨 노부부가 신병을 비관, 함께 농약을 마시고 신음중인 것을 주민들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모두 숨졌다.

할아버지는 폐질환 투병 중이었고, 할머니는 2년째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 있었으나 장기간 병치레로 평소 싸움이 잦았다.

그때마다 노부부는 "우린 죽어야 한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실직 상태를 비관한 30대가 자신의 집을 방화하는 자포자기적 범죄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엽기성의 강도만 다를 뿐이다.

지난 4일 오후 9시30분 부산 사상구 삼락동 전세방에서 이모(33)씨가 결혼도 못한 채 장기간의 실직 상태에 빠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신의 집에다 불을 놓았다.

부산지역의 명문 대학 무역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잠깐 직장생활을 경험했을 뿐 이후 6년 동안 별다른 일자리도 없이 실직의 늪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했다.

이날 이씨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소주 5병을 마시고 귀가한 뒤 안방에 있던 옷가지를 마룻바닥에 쌓아놓고 불을 붙였다.

집주인 김모(76)씨가 이를 빨리 발견해 다행스럽게 피해는 없었다.

소극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범죄를 저지른 이씨의 경우와 다르게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적극적인 조직범죄에 가담하는 일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최근 부산지역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손쉽게 거금을 일시에 만질 수 있어 별다른 죄의식 없이 가담하는 대표적인 조직범죄 중 하나가 중국 조선족 여성과의 위장결혼.

부산경찰청 외사수사대는 지난 4일 옛날 택시회사 동료 및 지인들에게 공짜 중국관광과 400만원의 사례비 지급을 내세워 중국 조선족 여성과 위장결혼을 알선한 브로커 및 위장결혼자 12명을 적발했다.

위장결혼 브로커 채모(42.부산시 금정구 서동)씨는 다른 브로커에게 조선족 여성과 위장 결혼할 사람을 소개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중국에 건너가 450만원과 성 접대 및 향응을 받고 조선족 여성 김모(50)씨와 위장 결혼한 이후 국내에 들어와 구청에 혼인사실을 허위로 신고했다.

채씨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옛날 택시회사 동료 및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 중 홀아비, 노총각들에게 접근해 조선족 여성과 위장 결혼을 알선했다.

이 과정에서 채씨는 공짜 중국관광과 사례금 400만원 지급을 약속했다.

문제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일반 서민들이 별다른 죄의식없이 이런 범죄에 쉽게 빠져드는데 있다.

경찰은 위장결혼사범에 대한 강력한 단속에도 위장결혼사범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이유와 관련해"불경기 여파로 서민들이 400만∼600만원의 거금을 준다는데 현혹돼 이러한 범죄에 가담하기 때문"이라며 "도덕적 비난의 정도가 낮아 죄의식도 결여됐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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