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멍든 가슴 경찰 소극대응 '또 멍'

입력 2003-11-29 10:55:24

주부 정모(43)씨는 지난 20일 새벽에 당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온 몸이 떨려온다고 했다.

대구 동구 신천1.2동 파출소 앞에서 남편에게 심한 구타를 당해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이 오히려 파출소 현관문을 잠가두고 거들떠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정씨는 "이날 남편이 다른 사람과 싸움을 벌인뒤 파출소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기분이 나쁘다며 이유없이 구타를 했다"면서 "겨우 도망쳐 파출소 현관문을 두드렸지만 경찰은 '남편분 데리고 집에나 가라' 했다"고 말했다.

허모(45.북구 노원동)씨도 "지난달 집에서 남편으로부터 몇시간을 구타 당하다 경찰에 신고했으나 출동한 경찰이 '남편에게 잘못했다고 빌고 조용히 끝내라'면서 그냥 돌아갔다"고 전했다.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이 경찰의 소극적인 조치에 한번 더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다.

98년 7월 가정폭력범죄처벌 특례법이 제정되면서 가정폭력 사건에 대해 경찰이 적극 개입, 대처토록 했지만 아직까지 경찰은 심각한 가정폭력을 사소한 집안문제로 돌리고 있는 탓이다.

대구여성의 전화 조경화(37) 상담부장은 "상담소에 오는 상당수의 주부들이 남편 구타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가정문제 탓으로 돌리며 피해여성을 적극 방어해 주지 않고 신고를 이유로 더 심하게 구타 당했다고 호소한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가정법률상담소에서 가정폭력 피해여성을 상대로 경찰의 신고시 대처정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90% 가까운 여성들이 경찰대처가 불만스럽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나 문제의 심각성을 대변하고 있다.

가정법률상담소의 권경숙 상담원은 "가정폭력은 더 이상 집안의 '사랑싸움'이 아닌 분명한 범죄로 인식하는 사고전환이 필요하다"며 "가정폭력 사범에 대해 좀 더 강력한 처벌을 내려 법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게끔 가정폭력법의 개정을 여성부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한편 대구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 발생건수는 1999년 692건(734명), 2000년 709건(767명), 2001년 841건(904명)으로 조금씩 증가하다 지난해 1천322건(1천549명)으로 크게 늘었고, 올 9월말까지도 964건(1천93명)에 이르러 해마다 폭증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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