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행정수도 이전의 과정

입력 2003-11-27 14:45:00

청와대 '신행정수도 건설추진기획단'이 마련한 신행정수도 건설 일정은 연내에 특별법을 제정하고 기본방향과 입지선정 기준을 확정한 뒤, 내년 연말까지 입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입지가 결정되면 바로 용지 매수에 들어가서 2007년 하반기부터 건설공사를 시작하고, 2012년부터 중앙 행정기관을 단계적으로 옮긴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특별법을 다룰 국회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위원회'구성 결의안이 여야 4당 총무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지난 21일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수도권 의원들을 비롯해서 비충청권 의원들의 반대가 많아 나타난 결과다.

이에 충청권 의원들은 정파를 초월해서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는 등 또 다른 지역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을 엿보이고 있다.

특위안의 국회 상정을 전후해서 신행정수도 건설의 최대 이해당사자격인 수도권의 반대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서울시.경기도 의회 등 수도권 주민 대표들과, '신행정수도 재고를 촉구하는 국민포럼' 등 기성.신설단체들도 부당성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아직 행정부만 옮길지 입법.사법부도 함께 옮겨갈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신행정수도'라는 말이 합당한지도 알 수 없는 단계지만 행정부만 몽땅 옮기더라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 뻔한 한국적인 풍토에서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역사 속의 천도(遷都)와 다름없는 국가적 중대사이다.

그런 점에서 국회가 제동을 걸어 국민적 논의를 촉발시킨 것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함직하다.

나라의 수도 이전 문제가 분당.일산 등 이른바 신도시 건설이나 핵폐기장 부지 선정보다 결코 가벼이, 일방적으로 다뤄질 일은 아닌 것이다.

신행정수도는 국민의 것인 까닭에 국민적 합의는 필수적이다.

수도를 꼭 옮겨야 하는가 하는 문제부터 논의돼야 한다.

수도권인사 등 반대론자들은 수도권의 심각한 문제와 국토의 불균형 발전을 인정하면서도 수도 이전으로 그런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수도권 인구 50만명을 줄이기 위해 45조원을 써야 하는가"하는 반문을 던지며 국가 사회적 엄청난 비용의 소모를 우려한다.

정부는 이런 반대론자들의 반론에 대해 답변과 설득을 준비해야 할 것이고, 반대론자들은 수도 이전 없이 수도권 과밀 해소와 지역균형발전을 어떻게 도모할 수 있을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전국의 11%에 불과한 면적에 전체 인구의 46%인 2천200만명이 몰려 사는, 세계 최악의 과밀 수도권과 지방의 빈곤화는 시급히 해결해야할 국가적 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동안 갖가지 개선책에도 불구하고 효과를 거두지 못했기에 수도 이전이 유력한 방안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현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수도 이전이 전제된다면 다음은 새 수도를 어디로 정할 것이냐가 문제다.

최근의 신행정수도 논란과 관련해서 불가사의한 것 중 하나는 '신행정수도=충청권'이라는 불변의 등식이다.

대통령 후보가 일방적으로 지목했다고 해서 아무런 저항없이 통용되는 것은 이상현상이다.

물론 충청권이 남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수도 이전 대상지역으로 검토돼온 전력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옛날 일이다.

시대가 급변해 이미 대전까지 수도권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는 형편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충청권 이전에 다른 의견을 전혀 내놓지 않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아마도 신행정수도 문제를 지방분권.지역균형발전 방안과 함께 들고 나옴으로써 지방자치단체들이 신행정수도 이전을 지방분권과 동질의 사안으로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서울에서 수도를 박탈하기만 하면 지방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행정수도 이전과 지방분권은 성격이 다르다.

지방분권 없이 수도를 충청권으로 옮긴들 달라질 것이 별로 없다.

오히려 신행정수도와 거리상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된 다른 지방들이 더욱 피폐화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 경기도 충청권이 통합된 거대한 신수도권에 밀려 여타 지방은 더욱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수도권 공화국'을 더욱 공고히 할 가능성을 안고 있는 신행정수도 충청권 이전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현행대로 충청권내에서만 입지를 고르는 것은 공민권 제한과 비슷한 불공정한 일이다.

김천이나 상주지역이 신행정수도 후보 반열에 오를 수도 있지 않은가.

지난 5월 방한한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장 찰스 스티거 박사는 "수도는 지형적으로 국가 중심부에 있는 것이 바람직하고 교통망을 활용, 주요 도시로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시설계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스티거 박사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폭적인 논의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열(논설위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