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26일 기자회견은 마비상태에 빠진 정국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줬다.
최 대표는 "자신의 비리를 덮기 위해 민의를 짓밟았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특검법 거부를 성토했다.
비록 노 대통령이 '조건부'라는 토를 달아 특검법 거부의 구실을 찾았지만, 그 자체가 반'(反)헌법적 발상'이라며 재의요구 철회를 촉구했다.
최 대표는 회견에서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의 문제점을 따지기 위해 노 대통령과의 1대1 TV토론을 제의한 뒤 재의 요구가 철회될 때까지 단식농성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배수진을 치고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최 대표는 "노 대통령이 재의요구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국회 등원거부, 의원직 총사퇴, 대통령 하야투쟁 등 단계적으로 투쟁강도를 높이겠다"며 청와대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최대표의 벼랑끝 승부수=최 대표가 소속 의원 149명의 사퇴서를 쥐고 단식농성에 들어가겠다고 한 것은 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것이라는 데 파장을 낳고 있다.
헌법상 규정된 재의 대신 전면투쟁을 선택한 것은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내보임으로써 당의 단합과 투쟁력을 높이기 위한 고육책의 일환이라는 지적이 높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특검법 수용 여론이 높았고 재신임 카드에 이어 또다시 첨예한 정국대치를 유발시켰다는 점에서 청와대와의 더 이상의 타협 가능성을 접고 한판 승부를 벌여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최 대표는 이날 "나라를 거덜내고 국민을 못살게 하는 대통령의 잘못된 행태를 제1당 대표로서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도 비상대책위 등 강경파를 중심으로 최 대표의 단식투쟁과 의원직 사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25일 열린 의총에서 이병석 의원은 "최 대표가 단식농성에 들어가야 한다"고 외쳤고 정병국, 안상수 의원은 의원직 사퇴를 거론했다.
그러나 최 대표의 단식농성이란 '충격요법'은 정국을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무모하다는 의견도 있다.
소장파인 원희룡, 남경필 의원이 "대통령이 거부하면 재의를 통해 재의결하겠다던 입장을 갑작스레 바꾼 것을 국민들이 이해하겠느냐"고 반론을 제기했다.
또 "SK 비자금 사태로 궁지에 몰린 한나라당이 내년 총선을 의식, 정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반발이 터져나오는 상황이기도 하다.
◇본격화되는 정국파행=한나라당은 모든 국회활동을 보이콧하기로 결정했다.
25일 예결위에 불참하는 등 의안심사 거부를 시작으로 △등원 거부 △의원직 사퇴서 작성 △최 대표 무기한 단식농성 등으로 압박공세에 나섰다.
대신 의정활동을 거부한 의원들에게 지역구로 내려가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부당하다는 점을 적극 알리기로 하고 26일부터 귀향조치를 내렸다.
이재오 사무총장은 "노 대통령이 특검법을 거부한 것은 특검에서 드러나는 내용이 자신의 발목을 잡을까봐 두려워서"라며 "대통령은 무엇을 숨기고 국민을 선동할 게 아니라 자신과 측근비리를 밝히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산적한 국정현안과 새해 예산안, 각종 법률안 심의가 지연될 것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으로선 여간 부담이 아니다.
지방살리기 3대 개혁 특별법 처리라든지 한.칠레 FTA, 이라크 파병, 각종 정치개혁 현안 등 경기 침체와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한 각종 경제.민생 관련 법안이 처리되지 않을 경우 여론의 역풍도 우려된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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