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보!케냐(하)-외지르의 소말리족

입력 2003-11-26 09:26:53

케냐에서의 마지막 공식 일정은 와지르(Wajir) 지역 서쪽의 그리프투(Griftu) 중학교 방문이다.

자동차로 1시간30분 정도 걸리는 거리.

마을을 벗어나니 또다시 반사막.반초원지대다.

역시 분홍빛 모래의 아세미 사막. 궁벽한 이 사막지대에서 아스팔트 도로를 기대하는 건 애당초 어리석은 일. 차는 한가운데의 모랫길로 천천히 달려간다.

가도가도 우리 일행이 탄 2대의 차밖에 없다.

메마른 덤불숲에서 간간이 새들의 노래소리가 들려올 뿐 사방은 적막하다.

어디선가부터 이상한 전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그레한 색깔의 높다란 흙더미들이다.

처음 한 두 개씩 나타나던 그것은 갈수록 점점 많아져 멀리서, 가까이서 거대한 붉은 혹처럼 불쑥불쑥 솟아있다.

무덤인가, 아니면…?

월드비전 케냐의 와지르지역 담당 직원인 존이 "개미탑"이라고 일러주었다.

아세미 사막에 서식하는 개미들이 1, 2년씩 걸려서 만든 것들이라고 한다.

작은 건 높이 1m 내외, 큰 것은 2, 3m는 너끈히 돼보인다.

둘레가 수백년 된 느티나무 둥치만한 것들도 많다.

어떤 것은 무너져 있고, 어떤 것은 만들어져 가는 것들도 있다.

만져보니 콘크리트 구조물마냥 딱딱하다.

작고 연약한 개미들이 이토록 엄청난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덤불 사이로 풀로 뒤덮인 움막들도 보인다.

이곳 역시 소말리족(族) 거주지역. 케냐 북동부 소말리아와의 접경지역인 와지르 지역은 원래 소말리아 땅이었으나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19세기에 강제로 케냐 영토로 편입되었다.

와지르의 소말리족은 원치않게 조국을 떠나 이국에서 살아가는 유민(流民)인 셈이다.

사막지대에서 문명생활과는 거리가 먼 핍진한 삶을 이어가는 그들의 얼굴에서 활짝 웃는 모습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고향을 잃은 슬픔탓인가.

인구밀도가 극히 낮은 이런 곳에서도 소말리 여인들은 이슬람식 전통차림새다.

얼굴만 빠끔 내놓았을뿐 전신을 가린 긴 옷에 머리도 스카프로 감추었다.

그러나 중동 여성들의 검은 차도르나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얼굴까지 뒤덮은 부르카와는 달리 초록.노랑.빨강 무늬 등 원색풍 옷차림이 많다.

등짝에 노란 색의 물통을 지거나 혹은 땔감을 인 단봉(單峰) 낙타 무리가 적게는 두세마리에서 많게는 10여마리씩 줄지어 가고 있다.

앞 녀석의 꼬리와 뒤 녀석의 목이 줄로 이어진 채 막대기를 든 여인네나 남자들, 아이들을 뒤따라 리드미컬한 걸음으로 걸어간다.

배가 볼록한 당나귀들도 저마다 물통 두어개씩 지고 간다.

아마도 땔감은 장터로 팔러가는 것일 테고, 물통은 사막 속 어딘가의 샘으로 물 길러가는데 쓰는 것이리라. 사막지대의 강한 햇살과 분홍모래, 원색옷의 검은 얼굴 여인들, 어디론가 느릿느릿 걸어가는 낙타떼…. 마치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 것 같고, 환영(幻影)같기도 한 풍경이다.

그리프투 중학교는 황량한 벌판 속에 서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월드비전 코리아, 월드비전 케냐가 재정적 후원을 하는 학교다.

수크리 알라소우 모하메드 교감은 2001년 개교한 이 학교가 첫 해 40명에서 올해는 전교생이 125명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남성중심의 엄격한 이슬람적 가치가 지배하는 소말리 사회라서일까, 아무리 남학교라고는 하지만 교장 비서 1명만 여성일 뿐 교장과 교감, 10명의 교사, 학생 모두 남자들이다.

전체 와지르 지역의 8개 중학교 가운데 남학교가 6, 남녀공학 1, 여학교가 1개교라고 한다.

교직은 상당히 인정받는 직종이어서 일반 공무원보다 봉급수준이 높다고 한다.

학생들이 우리쪽으로 몰려왔다.

하나같이 키가 후리후리하고 살은 얼굴뼈를 겨우 감쌀 정도로 비쩍 말랐다.

조금만 살이 붙으면 모두 잘 생긴 얼굴들인데…. 1학년인 오스만군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니 "의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한다.

루다이락의 마사이 마을도 그러했듯 이곳 역시 휘휘 둘러봐도 민가라곤 안 보이는데 어디서들 오는지 모를 일이다.

모하메드 교감이 "학생들 중엔 집이 멀어서 당나귀나 낙타를 타고 오는 아이들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한국 측의 재정후원으로 지었다는 식당에 가보았다.

식당이지만 식탁도, 의자도 없다.

그냥 시멘트 바닥에 앉아서 식사한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소말리인들은 어디서나 맨 땅에 잘 앉아있다.

시장통 같은데서도 여인들은 긴 옷자락을 깔고 삼삼오오 앉아있고, 아이들도 맨땅에 앉아 노는 모습을 흔히 보게된다.

오두막도 맨 땅인 걸 보면 맨바닥 생활이 습관화된 모양이다.

어설프긴 하지만 식당은 다용도 공간이기도 하다.

주민회의가 열리기도 하고, 작년엔 이곳에서 와지르 지역 8개 중학교의 공연이 열렸다한다.

주방은 아궁이 3개에 솥 3개만 걸렸을 뿐 황량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이들의 주식인 쌀가루 비슷한 메이즈(maize) 가루로 된 죽이 끓고 있고 다른 한 솥엔 역시 메이즈가루로 만든 떡, 나머지 솥엔 맹물이 끓고 있다.

멀건 죽 한 그릇에 맛없어 보이는 떡 한 조각, 물 한 잔이 모두인 식사. 한창 성장할 나이에 영양은 차치하고 최소한의 배를 채우는 수준의 식사밖에 할 수 없는 그들이 안쓰럽다.

하루에 몇끼 먹느냐고 차마 물어보진 못했지만 와지르 지역 주민 대다수가 하루 한두끼 정도에 그치며 그나마 외국 구호단체들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때문에 살찐 사람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깡마른 체격이다.

불과 50여년전 구호 강냉이떡과 우유를 받아먹던 우리들의 모습이 그들의 까만 얼굴 위에 겹쳐지면서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원조대상국이었던 한국이 이제는 원조국이 된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월드비전 케냐의 관계자들이 귀국을 앞둔 우리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와지르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긴급한 사안들이 많습니다.

보건소며 화장실도 더 지어야하고, 에이즈방지교육과 여성할례 반대운동도 계속 펼쳐나가야 하며, 식량확보도 당면문제입니다.

우리는 가난하고 외부의 재정후원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시면 우리의 이런 활동을 널리 홍보해 주십시요".

전경옥기자 siriu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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