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경제력은 남편에게 의존하고 살지만...

입력 2003-11-25 09:18:12

*남편은 주부에 모든걸 의존하는 걸요

가족이 밖에서 외식을 하면 요리사와 식당 종업원이 월급을 받는다.

가사 도우미는 집 청소를 하고 수입을 올린다.

하지만 가정에서 이런 일을 하는 주부에게 돌아오는 것은?

미국의 한 라디오 진행자가 직장여성 10명에게 "당신이 남자가 된다면 가장 큰 이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많은 여성들이 가사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움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소위 '솥뚜껑 운전사'로 비하되기도 하는 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는 얼마나 될까?

◇생산적 가치로 평가받지 못하는 가사노동

한국여성개발원의 연구에 따르면 전업주부 한 명의 월 평균 가사노동 가치는 85만6천∼102만6천원으로 평가된다.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평가액은 연간 60조∼70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3∼15% 수준. 우리나라 임금 총액의 30∼35%에 해당한다.

성균관대 김준영 교수의 연구에서는 주부 1인당 연간 가사노동 가치는 약 1천360만원, 월 113만원으로 산출됐다.

나이별로는 30대 주부의 노동가치가 월 139만원으로 가장 높다.

20대는 123만원, 40대 103만원, 50대 94만원, 60대 이상은 71만원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현행 보험제도나 이혼때 재산분할에서 가사노동 가치는 저평가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전업주부가 교통사고로 노동력을 상실하거나 사망했을 때 보상받는 금액은 도시 일용직 근로자와 같은 수준인 월 평균 73만여원에 불과하다.

국민연금 역시 주부의 가사노동을 중요하게 따지지 않는다.

현재 국민연금에서 전업주부는 남편이 든 연금의 피부양자일 뿐이다.

따라서 남편과 이혼하거나 남편이 사망할 경우 전업주부는 노후를 보장받기 어렵다.

◇남편보다 더 일하는 아내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전업주부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6시간 43분. 맞벌이 주부(3시간 45분)의 두배이다.

그러나 남편들은 맞벌이와 상관없이 하루 평균 1시간 정도 가사일을 돕고 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맞벌이 아내의 경우 하루 평균 약 13시간을 일한다.

여성부가 전국 20세 이상 남녀 1천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전업 주부의 가사분담률이 약 93%, 맞벌이 주부의 가사분담률이 81%로 나타났다.

◇가사노동은 주부가 당연히 하는 일?

대구가톨릭대 남인숙 교수는 가사노동의 성격을 "자발적 헌신, 봉사와 사랑을 바탕으로 물질적 보상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 무보수 노동으로 국민경제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가사노동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지었다.

△가사노동은 작업계획을 세워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

가족의 요구와 생활에 따라 계획은 항상 수정되고 변동된다.

△가사노동은 반복적이며 휴일 없이 365일 풀 가동되는 노동이다.

오히려 가족들이 쉬는 휴일에 주부의 가사노동량은 늘어난다.

△노동시장에서 대체 가능성이 제한돼 있는 순수한 종신 고용적 노동이다.

또한 완전히 기계화되거나 자동화할 수 없기 때문에 복잡성, 다양성, 반복성의 특징을 지닌다.

남 교수는 "이러한 가사노동의 성격은 주부를 자질구레하고 왜소하며 작은 일에 놀라는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만든다"고 했다.

가족에 대한 봉사에서 기쁨과 의미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나 동시에 무력감, 좌절감 등도 떨쳐버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중산층 주부들이 적잖다.

무기력감을 느끼고 초조해 하며 수면 장애, 신경과민 등 주부병을 앓거나 소비성, 사치성으로 불만을 풀기도 한다.

◇가사노동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가사노동은 사회의 근간인 가정의 기본을 이루는 일이다.

가족원들이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능동적으로 가사를 분담할 필요가 있다.

남 교수는 "사회적 노동, 직업활동만을 중요시하는 가부장적 가치관을 극복하고 가사노동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의 변화가 요청된다"고 했다.

또 "기존의 법률, 세제, 관행 등이 개선되어 가사노동의 가치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도록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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