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구에 '기러기 아빠'

입력 2003-11-24 13:48:56

딸(14)이 대구 수성학군 고교에 배정받도록 하기 위해 5개월전 수성구 범어동의 한 주택을 3천만원에 전세 얻어 주민등록지를 옮긴 이모(43)씨. 실제로는 동구에 있는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이씨는 양쪽 집을 오가며 살아야 하는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됐다.

이달 초부터 대구교육청의 의뢰를 받은 수성구청이 위장 전입 여부를 가리기위해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의 일치여부에 대한 일제 조사에 나섰기 때문.

이씨는 "구청 단속이 엄격해 전셋집에 침대와 주방기기까지 갖춰 놨다"며 "딸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투자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수성구청이 11월초부터 이른바 '수성학군' 편입을 위한 위장전입자 단속에 나서면서 구청 단속반과 위장전입자 간에 한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몇년전만 해도 친.인척이나 지인들의 집에 주소지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별 문제가 없었는데 요즘은 가재도구를 갖추고 지속적으로 머물고 있느냐가 위장전입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구청 관계자는 "올 한해 동안만 수성구로 전입한 중 3학생이 1천555명에 이른다"며 "이중 상당수가 위장전입일 것으로 보여 단속이 엄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실제 경북고, 경신고, 정화여고 등이 몰린 범어 4동의 경우 경산 시지뿐 아니라 인근 지산.범물동 주민들의 전입도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초등학교와 중.고교 학급수의 비율이 경산이 10대 6, 7이라면 수성구는 6, 7대 10~12로 중.고교 학급이 초교에 비해 크게 많다"라며 "특히 범어4동 경우 수성구내 다른 동의 전입자도 1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수성구청이 한 초.중학교 앞에서 타 지역 차량 번호판을 조사한 결과 30% 가량이 경북 차량으로 나타나 초.중학교부터 수성학군으로 향하는 학부모들이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 해 범어동 친척집으로 가족이 통째로 주소지를 옮겼는데도 위장전입으로 적발된 정모(44)씨는 "공무원 일주일에 며칠씩 머무느냐, 학생 방이 어디냐고 꼼꼼히 친척에게 물어보는 바람에 들통이 났다"고 했다.

반면 수성구로 몰려드는 위장전입자로 인해 자신의 학군에 배정을 받지 못했다는 민원도 끊이지 않고 있다.

김모(46.지산동)씨는 "경산의 9천만원짜리 30평형대 아파트를 판 돈에다 5천만원을 보태 같은 평수의 아파트를 지산동에 겨우 마련했는데, 위장전입자때문에 원하던 학교에 아이가 배정받지 못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박모(44.욱수동)씨도 "걸어서 5분거리에 학교가 있는데 버스로 2정류장이나 떨어진 학교에 배정받은 것은 위장전입 러시 때문 아니냐"며 속을 태웠다.

한편 위장전입 조사를 맡은 각 동의 공무원들은 조사 기간동안 매일 한 사람이 한 가정을 방문, 실사를 벌이고 있는데 지난해 중3 전입학생 1천456명에 대한 조사에서는 주민등록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른 335명을 적발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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