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날 밤에 울퉁불퉁한 길을 걷는 기분입니다".
첫 시집 이후 23년만에 두 번째 시집 '그리운 남풍'(문학동네)을 낸 도광의(62) 시인. 사십년의 시력(詩歷)을 갖춘 중진시인임에도 자신의 시들이 독자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 지 조심스러워했다.
1980년에 첫 시집 '갑골(甲骨)길' 이후 두 번째 시집을 '늦게' 낸 이유부터 물었더니 도 시인은 대구 시단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다운 대답을 내놨다.
"친구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다보니 악착같이 작품에 매달리지 못했어요. 그리고 시를 쓴다는 것은 언어를 보석처럼 갈고 닦아야 하고, 음악성도 갖춰야 하는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는 수십번씩 퇴고를 한 후에 시 한편을 내놓기 때문에 과작(寡作)이란 얘기를 듣고 있다.
경산에서 태어나 경북대 국문과를 졸업한 도 시인은 196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해변에의 향수'가 당선돼 등단했다.
그 후 대건고에 재직하면서 시인, 시조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숱한 문인제자들을 길러내 대건문학의 '대부'로 일컬어지고 있다.
두 차례에 걸쳐 한국문협 대구시 지회장을 역임하는 등 지역 문단에서 폭넓은 교유와 남다른 친화력을 지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일년에 한 번씩 시집을 내는 시인들도 적지 않는 마당에 오랜 각고 끝에 23년만에 시집을 낸 만큼 '그리운 남풍'에서는 시인의 시력(詩力)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다.
'대낮에 뻐꾸기 울면, "아이고, 고놈 참 팍팍하게도 운다"고 하시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먼젓번에 살았던 집을 찾아가보았다 버들꽃 날리는 대낮 그늘에 어머니의 수척한 모습이 남아 있었고, 당신이 심은 하얀 접시꽃이 마당에 자라고 있었다 밝고 밝은 대낮에 뻐꾸기만 더욱 팍팍하게 울고 있었다'-'대낮'. '향수와 자연 회귀의 미학'을 체현한 그의 시들은 무엇보다 쉽게 읽히는 게 매력이다.
그러면서도 시 행간에 예민한 감수성, 까다로운 언어감각을 감춰놓았다.
무르익은 서정세계에 녹아든, 삶과 인간을 보는 애정 어린 시선은 읽는이에게 긴 여운을 준다.
오랜 산고(産苦) 끝에 선을 보인 시집인 만큼 그의 시에 대한 문인들의 관심도 각별하다.
"오로지 고고하게 자연과의 친화가 두드러지는 서정시의 외길을 걸으면서, 그 세계를 한결같이 갈고 다듬는, 남다른 열정을 부둥켜 안고 있다"(이태수 시인). "도광의 시인의 시는 늦은 가을 감나무에 높게 매달려 시리고 푸른 하늘에 대비되어 붉게 반짝이는 홍시처럼 외롭게 보이지만 아름답다.
스스로 외롭기에 오히려 그의 시가 사람의 훈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김명인 시인.고려대 교수).
도 시인은 최근 시단의 흐름에 대해 안타까움이 섞인 질타도 했다.
"현학적이거나 말놀음만 무성한 가짜 개성의 시, 바람이 든 시, 거품이 든 시가 난무하고 있어요. 시인 스스로도 정확한 의미조차 모르는 시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는 그는 볼펜과 종이를 챙겨 떠오르는 시상을 일일이 메모한 후 이를 바탕으로 시를 쓴다.
"산에 올라갈 때보단 내려올 때, 또 가을이나 봄에, 그리고 저녁무렵에 시상이 많이 떠올라요. 요즘도 집 근처인 도원동을 거닐다보면 시상이 절로 떠오릅니다".
도 시인은 자신의 시를 서정성과 회화성, 그리고 스토리가 있는 시라고 얘기하면서 더욱 시에 정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 독자가 없는 시대라고들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나의 시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계속 시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저물 무렵
-도광의
산에서 울던 목청 높은 산꿩이
해질 무렵엔 무밭으로 내려와
낮은 목청으로 운다
기우는 햇살이 설핏해지면
입술 퍼런 산그늘이
주막 쪽으로 내려온다
이 시각 또한 비어 있는 마음들도
주막 쪽으로 하나둘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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