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구 선생 저서 등 유품 23점 문화재 지정

입력 2003-11-18 09: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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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학문은 100년 이후에야 빛날 것".

다산 정약용과 같은 시대를 산 베일 속 실학자 일수 이원구(李元龜:1758~1828) 선생의 유언이다.

그의 저서와 유품들이 문화재로 등록되면서 일수의 사상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일수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평생을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독학으로 일관한 '처사형 학자'였기 때문이다.

일수 실학사상의 특징은 '인륜(人倫)과 산업(産業)은 결코 이분할 수 없다'고 강조한 점이다.

인륜과 산업은 삶의 두 축으로서 인륜은 삶을 이끌고, 산업은 삶을 가꾸는 것으로 어느 한 쪽이라도 결여되면 전체로서의 생명은 손상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도덕의 당위성만을 강조한 주자학과 이용후생을 강조한 실학 사이에서 중용의 길을 제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일수 사상이 학계에 알려진 것은 해방 후 한국 학술계의 거목 故 박종홍 서울대 교수가 일수의 저서 '심성록'에 주목하면서부터다.

박 교수는 '인륜과 산업과의 불가리(不可離)의 관계를 역설한 이원구의 사상'이란 논문을 통해 그의 존재를 최초로 밝혔다.

이후 재야 서지학자 박영돈씨가 종손과 고택.고문서 등을 발굴하고, 이선경씨는 일수의 역학사상을 주제로 성균관대에서 지난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상필(진주경상대 한문학과) 교수를 비롯한 경남도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들은 지난달 30일 선생의 저서 및 관련문서 등 23점을 경남도 유형문화재로 최종 지정했다.

특히 저서인 '심성록'(心性錄)과 '이기비은'(理氣費隱)은 물론 선생의 독특한 학설 인륜구도(人倫九道)와 산업육사(産業六事)를 도식화한 구륙도설(九六圖設) 병풍 등은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위원회는 "이 자료들은 채 200년이 되지않아 문화재 지정이 어려웠으나 그의 학문이 조선유학 사상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해 보호할 가치가 높아 대량으로 지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선생의 본관은 성산, 본향은 경북 칠곡면 약목이며 경남 합천군 쌍책면 상신리 도방마을로 이사온 뒤 학문에 정진했으며 묘소는 쌍책면 건태리에 있다.

합천.정광효기자 khje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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