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군 주부축구단

입력 2003-11-15 15:00:00

"축구를 하니 기본체력이 길러지고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돼요", "생활의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성격도 명랑해져 정말 좋아요".

지난 5월 거창YMCA는 거창군 주부축구단을 창단했다.

축구를 남성 전용 스포츠로만 알고 있던 주부들은 공을 직접 차보니 생각보다 힘이 들지않고 너무 재미있단다.

주부축구단의 회원 12명은 매주 화.목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거창읍 공설운동장에서 정기적인 합동훈련에 나선다.

축구를 통해 협동심과 겸손을 배우고 우의도 다진다.

모두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축구지만 공차는 재미에 푹 빠지면서 나날이 실력도 쌓이고 있다

총무 이정희(30.거창읍 대평리)씨는"세살짜리 막내 딸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운동하러 올 때마다 데리고 다닌다"며 "축구를 하기 전에는 운동장 반 바퀴도 돌지 못했으나, 지금은 2, 3바퀴를 돌아도 숨이 차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이들이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여자가 무슨 축구냐? 남세스럽다"며 반대한 남편과 가족들이 적잖았다.

그러나 아내와 엄마가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들도 이제는 합동훈련을 할 때마다 가끔씩 운동장을 함께 돌아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처음 아내가 축구를 한다고 했을 때 저도 10여년간 조기축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터라 찬성했어요. 하지만 아내가 수술을 받는 등 몸이 허약한데다 체력소모가 많은 운동을 시작하는 것에 걱정이 많았어요. 그래도 막상 시작하고 보니 더욱 건강해져서 마음이 놓입니다.

게다가 회원끼리 친목도모도 잘 되고 자녀교육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는 등 가정생활과 정서적으로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회원 박경분(35)씨의 남편 이천진(36.거창읍 대동리)씨는 "정말 잘 시작했다는 생각이 듣다"며 축구예찬론을 폈다.

회원 윤명화(27.거창읍 중앙리)씨는 "축구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다 처녀가 축구를 한다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워 무척 망설이다 결정했다"면서 "지금은 스포츠 중에서 축구가 가장 관심있는 종목이 되었다"고 말했다.

윤씨는 "가까운 주위 사람들에게도 축구를 홍보한다"며 "결혼을 하더라도 축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축구단 주부들은 친선게임이나 다른 시.군과 공식경기가 있을 경우 며칠씩 합동훈련에 들어간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팀웍을 갖추지는 못했다.

때문에 막상 경기에 출전하면 축구선수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필수 장비를 제대로 챙기지 않아 경기장을 곧잘 웃음바다로 만든다.

지난달 17일 경북 문경시에서 열린 새재여성축구팀 초청경기에서는 경기를 앞두고 팀 전원이 축구선수들의 필수장비인 무릎 및 정강이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심판이 경기를 진행할 수 없다고 하자 급한 김에 함께 출전했던 대구시 동구 여성축구팀의 장비를 빌려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대구팀과의 경기에선 주눅이 들었다.

대구 여성축구팀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강팀이어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던 것. 공은 거창팀 골문 부근에서만 맴돌았다

골 막기에 급급했던 거창 주부축구단 골키퍼 위성희(34.거창읍 상림리)씨는 다급한 나머지 상대팀에게 "제발 나에게 공을 보내지 마세요"라고 소리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위씨는 이 초청경기가 너무 인상 깊어 '시골 주부축구단 상경기'란 제목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주부축구단은 또 지난달 3일 거창 창동초등학교 운동회에 초청을 받아 거창YMCA 학부모단 아빠선수들과도 친선게임을 치렀다.

경기가 시작되자 주부들은 남편들과 과격한 몸싸움도 서슴지 않았다.

또 사소한 일로 언성을 높이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특히 경기도중 몇몇 남편들은 공을 놓고 아내와 서로 맞부딪칠 경우 자기편 선수들이 지켜보는데도 슬쩍 아내에게 공을 패스해줘 관중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주무 이지은(34)씨는 "남편들과의 시합은 승부보다 경기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 영원히 잊지못할 추억거리가 됐다"며 "운동회에 참석했던 수백명의 관중들도 모두 주부축구단을 응원했다"고 했다.

주부축구단 회원 남편인 거창전문대학 김순백(39) 교수는 "사회적 편견이 여성축구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며 "다른 시.군과 마찬가지로 여성축구의 저변확대와 활성화를 위해서는 후원단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장 박은정(32.거창읍 중앙리)씨는 "도전 정신을 살리고 싶어 축구에 입문했다"며 "경기를 할 때마다 웃지못할 해프닝이 자주 일어나지만 모두 즐거운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축구는 생각만큼 과격하지 않고 체력이 달리는 중년 여성들의 건강유지에 적합한 운동"이라면서 "많은 여성들이 축구에 호기심을 갖고 있지만 남성들의 운동이라는 고정 관념과 주위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선뜻 접근을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코치 김홍섭(33.거창군 청소년문화의 집 관장)씨는 "축구가 과격한 운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유연성을 요구하는 운동이라 중년 여성들도 충분히 할 수 있고 재미도 있다"며 "지구력이나 힘은 남성들에게 못 미치지만 기술습득은 여성들이 훨씬 빠른 것 같다"고 추켜주었다.

축구단은 회원들이 매월 1만원씩 내는 회비로 운영된다.

그러나 운영비가 부족해 매주 두 번씩하는 합동훈련의 식대 등 경비는 그날 그날 회원들끼리 갹출해 해결하고 있다.

특히 친선경기나 시합이 있을 때는 예산이 턱없이 모자란다.

유니폼을 하나 구입하는데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김 코치는 "주부축구단이 거창 YMCA 소속이므로 시합비용 등 모든 경비를 구단측에서 해결해 주어야 하나 구단 자체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충분히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며 "행정기관의 지원과 사회단체의 후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 시골이다 보니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하다.

잔디구장이 없어 공설운동장 등지에서 연습을 하다보니 넘어지고 부딪치면서 다치는 경우도 잦다.

회원들 모두가 팔.무릎 등에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성한 곳이 없다.

"창단 초기에는 친목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러나 합동훈련을 반복하면서 실력이 늘고 우의도 돈독해졌습니다.

내성적이었던 회원들의 성격도 적극적으로 바뀌면서 활동성이 높아졌습니다.

지금은 회원들 모두 연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팀웍을 다지고 있습니다". 회장 김경혜(33.거창읍 대동리)씨는 "전국 아마추어 여성축구대회 참가를 목표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며 "거창 주부축구단 파이팅!"을 거듭 외쳤다.

거창.조기원기자 cho1954@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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