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군주'...日, 황실은 종교였다

입력 2003-11-15 08:49:15

9.11테러와 같은 비상사태 때 미국 등지의 구미선진국이 '연출하는' 장면들 중 인상적인 것의 하나로 장중한 의례를 꼽을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미국의 전몰자에 대한 장례식은 때로는 죽음을 '미화'한다는 착각을 불러낼 정도로 장엄하기만 하다.

의례. 참으로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말이다.

하지만 전몰자 추도식과 같은 의례가 인민 다중을 '국민'(國民.nation)으로 만들어 내고, 그러한 국민이 곧 국가(國家.state)의 주인이라는 환상에 바탕을 둔 국민국가(nation-state) 형성의 가장 주된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시카고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 역사학자 다카시 후지타니(40). 샌디에이고대 역사학과 교수인 그는 저명한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가 개념화한 '시민종교'(civil religion)에 자극받아 근대 내셔널리즘 분석에 몰두하게 된다.

다카시에 따르면 근대 국민국가 형성에 닻을 올린 메이지정부가 천황을 정점으로 개발해 낸 다양한 의례행위가 바로 근대 일본의 '시민종교'였다고 주장한다.

최근 번역된 '화려한 군주-근대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한석정옮김, 이산펴냄)에서 다카시는 메이지정부가 만들어낸 순행(일종의 초도순시).황실결혼식.황실장례식과 같은 황실의례라든가 동상.기념비.국가 신사.천황의 궁성 등의 물리적 경관물이야말로 '일본 국민'을 형성하고 그러한 국민을 동원하기 위한 권력장치였다고 진단한다.

물론 이와 비슷한 주장은 꽤 많다.

하지만 다카시는 일본이 굴절된 근대화를 바탕으로 파쇼화되고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을 일으켰으며, 그 근본에는 봉건적인 천황제의 부활이 있다고 주장하는 마루야마 마사오 등의 주류적 주장을 부정한다.

다카시에 따르면 천황제는 일본이 근대 국민국가를 형성하는데 적지않은 역할을 수행했다.

천황제는 근대화의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추동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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