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어머니의 입시

입력 2003-11-14 14:28:49

"대한민국에서 일반계 고등학생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형극의 길을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수능시험은 수험생만 치르는 게 아니라 어머니도 함께 받아야 하는 평가인 게 우리의 현실이죠".

수능시험이 끝났다.

새벽별을 보고 집을 나갔다가 밤별을 보고 돌아오는 수험생과 어머니의 숨막히는 일과도 함께 마감됐다.

하지만 아직 수험생 어머니의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다.

자녀의 가채점 결과를 들고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지원할 지, 어떻게 대비할 지 따져보는 일이 남았다.

지금 시점에서 더 바쁘고 더 답답한 것은 수험생의 어머니다.

지난 11일 모 입시학원 진학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한 어머니. 상담실장 앞에 종이 한 장을 내민다.

빼곡한 글씨. 자녀의 가채점 결과에서부터 내신 성적, 학교생활기록부 결과 등이 적혀 있다.

내신성적은 평어(수우미양가)로 할 경우와 석차 백분율로 할 경우, 봉사활동 기록과 동아리 활동 내용, 아파서 결석 두 번 한 것 등이 조목조목 정리돼 있었다.

가채점 점수에 맞춰 지원가능한 대학과 학과도 합격가능선별로, 모집군별로 적혀 있었다.

상담실장도 혀를 내두르는 눈치였다.

"대구권 대학들은 모두 분할모집하니까 추가합격 기대하기도 힘들 것 같고, 수도권 대학 분교는 경쟁률이 높아 쉽지 않을 것 같고…". 30여분 상담한 어머니는 학교 담임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다며 자리를 떴다.

이즈음 어머니는 입시 전문가가 돼야 한다.

대학별 전형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고3 담당 교사든, 학원 입시 전문가든 전국 모든 대학의 전형방법을 속속들이 알기란 불가능하다.

수능 점수나 다른 전형요소에 맞는 대학과 학과를 찾아내는 건 수험생과 어머니 손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12일 한 고교 3학년 교무실. 한숨을 내쉬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수능시험 성적으로는 정시 합격이 어려울 것 같아요. 수시모집에 일단 응시할까 하는데요. 애는 무조건 정시로 가 보고 떨어지면 재수한다는데 어떡하죠?" "일단은 합격 가능성이 높은 쪽을 택해야 합니다.

수시에 우선 응시한 뒤 합격하면 등록하고, 떨어지더라도 정시에서 한 군데는 합격이 확실한 곳을 지원해야 합니다.

반수가 안전합니다". 담임 교사와 상담을 마치고 교무실을 나서는 어머니는 "반수를 하려면 대학 등록금에 학원비에 만만찮을텐데…"라며 고개를 저었다.

수능시험, 이 한 번의 승부로 그 동안의 모든 과정을 평가받는 입시체제 아래에서는 단판 승부에 총력전을 쏟아야 한다.

무수하게 투입되는 사교육비도 결국엔 이 승부를 향한 것이다.

문제는 어머니의 땀과 고통으로도 이것만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은 국내 가구당 월 평균 사교육비 지출 실태를 발표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서울 강남지역의 사교육비가 국내 평균보다 두배 이상 많은 62만7천원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월 평균 수입이 300만~400만원일 경우, 500만원 이상일 경우 등의 지출 통계에다 매달 700만원씩 지출한 가구도 있다는 사례까지 소개했다.

전국 광역시 가구에서는 19만2천원, 기타 지역은 16만3천원을 쓴다는 이야기는 언급만 됐을 뿐이다.

갈수록 벌어지는 지역간 교육 불균형, 빈익빈 부익부 문제는 어머니의 힘만으로 극복하기 힘든 일이다.

수능시험 결과를 두고 행복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어머니는 과연 몇 %나 될까. 외형이 아무리 바뀌어도 단 한 줄로 전국의 모든 수험생이 줄을 설 수밖에 없는 입시제도 아래에서 자녀의 진정한 소질과 특기를 억눌러보지 않은 어머니는 또 몇 %나 될까. 그러고도 높은 사교육비 어쩌고 하며 호들갑을 떠는 언론보도를 자녀 앞에서 슬그머니 숨겨야 하는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가.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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