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 잡으면 안돼! 망가져야 흥행한다

입력 2003-11-13 09:24:27

'엽기적인 그녀' 이후 한국 영화계는 바야흐로 코미디물 전성시대를 이루고 있다.

웃기기 위해 옷을 벗기도 하고, 술을 엄청 마시기도 하고, 막춤까지 추기도 한다.

하지만 제멋 대로인 것 같은 코미디물에도 일종의 '웃음 방정식'이 있다.

바로 배우 망가뜨리기. 최근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이 배우 망가뜨리기의 공통된 코드를 살펴보기로 한다.

#토사물을 활용하라

아무래도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이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다.

긴 머리칼을 찰랑이며, 완벽에 가까운 허리선을 돌리던 TV 브라운관에서의 그녀는 이슬만 먹고 살 것처럼만 느껴졌다.

그랬던 그녀가 술에 마구 취해 지하철에서 '우웩~' 소리와 함께 구토라니…. 게다가 토사물을 다시 삼키기까지. 예쁜 척 하지 않고 몸바쳐 망가진 그녀 덕분에 영화도 성공했던 게 아닐까.

'위대한 유산'의 김선아는 후발주자임에도 한 수 더 뜬다.

만취상태의 그녀는 임창정에 이끌려 여관방에 끌려오는데, 침대에 누워있던 그녀의 입에서 갑자기 분수처럼 발사되는 밥알들. 숫제 관객들이 더 당황스럽다.

게다가 컵라면을 급하게 먹다 혀를 데자 눈을 질끈 감고, 혀만 쑥 내민 채 혓바닥 위에 노란 단무지 하나를 턱 올려놓고 뜨거움을 식히는 그녀의 모습에 관객들은 실컷 웃었다.

오상훈 감독은 작품에 들어가기 전 김선아에게 "이번에 너의 유작을 만들어주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 열연함으로써 '몽정기'에서의 역할이 단지 예쁜 조연만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눈이 풀렸다

한때 최민수처럼 눈에 힘을 팍 준 채 목소리를 낮게 까는 것이 남자다움인 적이 있었다.

뒤를 이어 많은 남자 배우들이 말수를 줄였고, 눈빛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했다.

하지만 이제 스크린에서 망가지는 것은 여배우들만의 몫은 아닌가 보다.

남자들도 무겁던 눈빛을 풀고 기름기 빠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정우성은 영화 '똥개'를 찍으면서 "이 영화는 정우성이 망가지는 것을 보는 재미"라고 했다.

폼잡고 싸움 잘 하던 그가 세상만사 귀찮고, TV 보는 것이 인생의 낙이며, 꿈이 뭐냐고 물으면 눈만 껌뻑이다 비로소 "몰~러"라고 대답한다.

계란프라이 하나를 두고 아버지와 젓가락 싸움을 벌이는 꼴이라니…. 정말 어깨 힘 쫙 뺀 모습이다.

똥개가 정우성의 이미지를 구겼다면, '영어완전정복'은 장혁이 망가지는 영화다.

'짱', '화산고' 등에서 반항아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며 '제2의 정우성'으로 우뚝 섰던 그는 '영어완전정복'을 통해 어설픈 바람둥이로 돌아왔다.

14일 개봉될 '최후의 만찬'의 이종원은 '생양아치'를 연기한다.

빡빡 깎은 깍두기 머리에 "에이~ 개쉐이"를 입에 달고 사는 그는 편의점에서 야한 잡지 뒤적이는 게 취미다.

그는 일곱 번째 출연하는 이번 영화에서 "100% 최선을 다한다"고 할 만큼 열정을 쏟고 있다.

드라마 출연도 고사한 채 "제대로 망가져 보겠다"고 장담하는 '카리스마' 이종원. 그동안 강렬하게 비쳐졌던 그의 눈빛이 어떻게 변했는지 자못 궁금하다.

#CF의 청순함은 가라

"여러분~ 부자 되세요"를 외치던 빨강 코트의 소녀. 김정은 반짝이던 눈빛, 촉촉한 입술의 그녀가 입을 연다.

"그려. 우리 아버지 깡패여. 그래서 네가 뭐 보태준 거 있다냐". (가문의 영광) '불어라 봄바람'에서는 촌스런 파마 머리에 입가에 까만 점까지 붙이고선 나타나 껌을 찍찍 씹는다.

더이상 청순한 이미지로 TV에 나타날 수 있을지가 궁금하기만 하다.

한술 더 떠 '영어완전정복'에서의 이나영은 앞으로 CF를 찍지 않을 모양이다.

"everyday new face"라고 깜찍하게 떠들던 그녀. 정말 새로운 얼굴을 매일 보여주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두꺼운 뿔테 안경, 촌스런 갈래머리, 우스꽝스러운 일자머리…. 목욕하면서 발을 까딱이며 "확실한 사~랑의 도장을 찍어~"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은 엽기적인 그녀를 능가한다.

상상 속에서 대례복을 입고서조차 예의 그 뿔테안경을 벗지 않고 외친다.

"나는 이 나라의 9급 공무원이다". '명성황후'를 패러디한 짧은 컷이지만 그녀의 망가진 인상은 강하게 남는다.

#막춤 퍼레이드

여자배우는 무조건 망가뜨려야 흥행에 성공한다는 충무로의 공식은 그녀들의 다양한 엽기적 막춤을 탄생시켰다.

'첫사랑 사수궐기 대회'의 손예진은 비키니를 입고 요염한 포즈로 남자를 유혹하다가 퇴짜를 맞는가 하면 오히려 물벼락 세례를 받기도 한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하늘은 더 어설프다.

내기에서 지게 되면서 약속대로 대학 축제 때 딴에는 섹시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결과는 엉거주춤한 막춤에 그치고 만다.

그렇게 엽기적 춤을 추는 연예인도 드물지 싶다.

만약 그것이 단순한 연기였다면…. 그녀는 프로다.

한국판 아멜리에를 염두에 둔 모습으로 등장한 배두나가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에서 고무장갑을 낀 채 추는 개다리춤은 엽기 그 자체이다.

두 눈을 동그랗게 크게 뜬 채 양다리를 벌린 그녀만 생각하면…. 그녀의 모습은 춤만큼이나 도발적이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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