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효자 이야기를 하나 하지. 효자 이야기라고 하면 어쩐지 고리타분하고 재미없을 것 같지? 그렇지만 이 얘긴 안 그럴걸. 어디 한번 들어 볼래?
옛날에 늙으신 아버지와 젊은 아들이 살았어. 아버지는 젊을 때 기운이 세고 팔팔했지만, 이제 늙어서 기운이 빠지고 둔해졌지. 하루는 아버지와 아들이 산에 돌배를 따러 가지 않았겠어? 돌배나무가 까마득하게 높은데, 한 사람은 나무 위에 올라가 돌배를 따고 한 사람은 나무 밑에서 돌배를 줍기로 했거든. 그런데 글쎄 늙으신 아버지가 자꾸 나무에 올라가겠다고 그러는 거야. 아들은 간곡하게 말렸지.
"아버지, 높은 데 올라가는 것은 위험하니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다.
내가 올라가마".
"제가 올라갈 테니 아버지께서는 나무 밑에서 이래라 저래라 가르쳐만 주십시오".
"내가 올라갈 테니 너는 나무 밑에서 돌배나 주워라".
"아버지께서 일흔이 넘은 연세에 어찌 아찔하게 솟은 나무에 올라간다고 그러십니까? 제가 올라가겠습니다".
"어허, 내가 올라가겠다는데 무슨 잔말이 그리 많아?"
아버지가 끝까지 고집을 피우니 어떻게 해. 할 수 없이 아들은 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했어. 아버지가 나무에 올라가고, 아들은 나무 밑에서 조마조마하게 쳐다보고만 있었지. 아버지는 성큼성큼 나무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보아란 듯이 돌배를 따다가 밑으로 던졌어. 아들은 나무 밑에서 돌배를 부지런히 주웠지.
돌배를 다 따고 나서 아버지가 나무를 타고 막 내려오려고 하는데, 아뿔싸, 그만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눈앞이 캄캄해지네. 그 동안 기운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런가 봐. 머리는 어질어질, 다리는 후들후들, 손에는 진땀이 바작바작 나고 등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니 꼼짝을 할 수가 있나. 그냥 나무둥치를 부둥켜안고 벌벌 떨고만 있는 거야.
밑에서 쳐다보던 아들이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물었어.
"아버지, 아버지. 왜 그러십니까? 어디 편찮으십니까?"
그래도 아버지는 대답을 못 해. 정신이 아득해서 눈도 입도 안 떨어지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아들이 갑자기 성을 버럭 내면서 마구 소리를 지르네.
"에잇, 바보 같은 영감탱이. 내가 올라가겠다고 해도 부득부득 제가 올라가더니 이게 무슨 꼴이람. 죽든지 살든지 난 모르겠으니 내려오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요!"
아 글쎄, 이렇게 험한 말을 마구 내뱉고 나서 돌배 자루를 어깨에 메고 주춤주춤 걸어가거든. 그 바람에 나무 위에서 깜빡 정신을 잃었던 아버지가 그만 정신이 번쩍 들었어. 아니, 저렇게 괘씸한 놈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느냔 말이야. 일껏 저를 생각해서 늙은 몸으로 나무에 올라가 돌배를 따 줬더니, 그 은혜를 모르고 아버지한테 저런 막말을 해대니 분해서 참을 수가 있나.
"네 이놈, 게 섰거라. 내가 죽더라도 너 같은 불효자식을 혼내 주고 죽을 테다".
울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이를 악물고 정신을 바짝 차려서 나무에서 내려왔어. 그제야 아들이 달려와서 넓죽 엎드려 절을 해.
"아버지,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고생이나마나, 너 아까 나보고 뭐라고 했느냐?"
"아버지께서 정신을 잃으실 것 같아서 일부러 분을 돋우어 드리려고 그랬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제야 아들의 뜻을 안 아버지가 아주 감탄했다는 이야기야. 아버지 살리려고 일부러 험한 말을 했다는 효자 이야기지.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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