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좀 빨랑빨랑 먹어 버릇 혀".
"아, 알았다고".
아침마다 일어나는 다툼. 아니 다툼이라기보다는 할머니의 잔소리에 대한 나의 짜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방 좀 제자리에 둬라, 옷 좀 정리해라, 그리고 밥 먹을 때 밥 좀 모아가며 먹어라. 언제나 귀에 붙어다니는 할머니의 잔소리이다.
그런 잔소리를 들으면 나는 울컥 짜증부터 솟아나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곤 했다.
그러면 할머니께서는 "그래, 오냐, 내가 잘못했다.
내가 너한테 그런 말이나 들으려고 한 게 아닌데" 하시며 속상해 하셨다.
이런 나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 할머니께서는 서울 이모집에서 일주일을 계시게 되었다.
나는 이제 일주일간은 지긋지긋한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짜릿함에 혼자 흥분해 있었다.
할머니께서 서울에 올라가신 그 다음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눈을 떴다.
할머니께서 안 계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준비를 하는데. 그리고 보니 아침밥 생각이 났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텅 빈 부엌은 물론 이제서야 일어나신 엄마!
"엄마, 나 아침밥은?"
"아이고, 엄마가 깜박하고 늦잠을 자서…".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날 아침 우리가족은 조용히 미싯가루 한 잔으로 입을 다물었다.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아침 준비로 분주하시던 할머니 보고 너무 시끄럽다고 불평하던 내가 새삼스레 떠올랐다.
집에 돌아오자 역시 아무도 없었다.
매일 일을 나가시는 엄마와 할아버지는 물론이거니와 서울에 가신 할머니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자유로움에 휩싸여 가방을 휙 집어던지고 TV부터 켰다.
이 시간대에 연속극 재방송을 보시던 할머니께 TV를 뺏길 일도 없었다.
좀 못된 것 같지만 이 은근한 뿌듯함을 누가 알리오? 나는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히히덕 거렸다.
하지만 이 자유로움도 며칠 가지 못했다.
집에 들어서면 휑하니 아무도 없었다.
그 차가움을 바꾸려 빈 집안에다 대고 큰 소리로 '다녀왔습니다!' 하고 소리치기도 했다.
어딘가 다녀왔을 때 꼭 어른이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어린 아이도 아닌데, 하는 부끄러움도 있었다.
하지만 빈 집에 들어설 때의 약간의 쓸쓸함과 아쉬움, 허무함은 스스로에게만은 숨길 수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계시다가도 손녀 올 시간 됐다며 얼른 자리를 뜨시는 할머니께 내가 어린아이도 아닌데 정말 부끄럽다며 투정을 부리던 나. 그러면 친구들과 먹다가 너무 맛있어서 남겨 왔다며 빵 따위를 내게 주시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그리웠다.
배고프다고 하면 라면을 끓여 주시며 '네 엄마처럼 맛있는 것 못 해준다'며 미안해 하시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 날 저녁, 이모집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집으로 전화를 하셨다.
"할머니! 빨리 와. 내일이면 오지? 몇 시에 와? 잘 있지?"
내가 먼저 촉새처럼 반가워했다.
"은진이 잘 있었어? 할머니 없으니까 속편하게 잘 지냈지?"
할머니의 그 농담에 내가 할머니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데, 하는 섭섭함에 코끝이 찡해질 지경이었다.
내가 할머니께 얼마나 못 해드렸으면 그러실까?
귀찮다고만 생각되던 할머니가 내 생활에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니, 생활만이 아닌 내 마음 속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도.이제는 일주일만이 아닌 어쩌면 평생 마음 속 할머니의 자리를 비워둬야 할지도 모른다.
난 정말 중요한 것들을 배웠다.
내가 잔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할머니께서 내게 심어주는 소중한 사랑이라는 것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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