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함께살기-소년가장 박양수군

입력 2003-10-23 11:34:43

"슬픔은 있어도 좌절은 없어요".

동구 신암동의 10평 남짓한 월세방에서 칠순을 바라보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박양수(18.가명)군에게 '불행'이란 단어는 어릴 때부터 따라다닌 꼬리표였다.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몇년전에는 어머니처럼 믿고 따랐던 누나마저 가출, 지금은 홀로된 할머니와 단둘이 지긋지긋한 가난과 병마와 싸우고 있다.

하지만 박군에게 더 큰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 진 것은 지난해 보일러 판매업으로 근근이 생계를 책임지시던 아버지가 빚을 갚지 못해 가출하면서부터다.

어머니와 누나의 가출 후 항상 정에 굶주려 있었지만 아버지의 가출로 인해 '경제적 빈곤'이라는 멍에까지 짊어지게 된 것.

이 때부터 박군은 5년전부터 베체트병(몸 내부 곳곳에 염증이 생겨 온몸이 붓고 여러 가지 합병증이 나타나는 질병)을 앓고 있는 할머니의 병 수발에다 가사 일까지 맡으면서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달려가 할머니의 병간호를 했다.

또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대신해 시장을 보는 등 잔심부름과 설거지.청소 등 집안의 온갖 궂은 일은 도맡았다.

얼마전에는 할머니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직접 생활 전선에 뛰어들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전에는 20만원에 세들어 살던 월세방마저 주인이 바뀌는 탓에 내놓아야 할 형편에 처했다.

하지만 보증금 50만원이 없어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다행히 이 소식을 들은 몇몇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얼마전 간신히 보증금 50만원에 22만원 짜리 월세방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박군의 불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학생 신분으로 딱히 수입이 없는데다 매달 50만원 남짓한 생활보호대상자 지원금으로는 할머니의 약값대기도 빠듯한 형편이기 때문.

이런 와중에도 박군은 공부를 빼놓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힘든 가사일과 할머니의 병간호로 파김치가 되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책과 씨름해 늘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박군의 장래 희망은 요리사.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을 혼자서 도맡아 하다보니 자연스레 요리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내친김에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 주위 사람들이 불편해 할 것 같아 항상 웃는다"는 박군은 "모든 것이 힘들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겠습니다 이 순간이 빨리 지나 나중에 돈벌면 넓은 집에서 할머니를 호강시켜 드릴겁니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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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희기자 cc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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