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시간강사들의 비애

입력 2003-10-23 09:32:38

한달 전 경북대 시간강사 300여명이 노조를 결성했다.

국립대로는 전국에서 처음있는 일이었다.

영남대 시간강사들은 이미 노조를 만들어 대학당국과 임단협 교섭을 벌이기도 했다.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해 보려는 몸부림이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를 한 대학 강사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자조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느 교수는 공룡과 같은 대학조직에 맞서려는 이들을 두고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에 비유하기도 했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검투사였던 스파르타쿠스가 노예해방을 기치로 반란을 일으켜 한때 큰 세력을 과시했으나 결국은 로마의 거대 군단에 무릎을 꿇었던 역사적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지역의 몇개 대학을 시간강사로 뛰고 있는 한 역사학자는 시간강사를 아직도 일용잡급직 취급하는 대학풍토를 개탄했다.

강의시간과 전공과목 배정에서 학과장과 사실상 주종관계인 데다, '그만두라'는 전화 한통이면 언제든 보따리를 싸야 하는 신세가 로마시대의 노예와 다를 바가 무엇이냐는 얘기다.

지난 국감 감사자료에 따르면 대학 시간강사의 급여소득이 국민 기초생활보장 수준인 월평균 102만원(4인 기준)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대학강사의 월평균 임금이 56만원이며, 평균 연봉이 1.2학기 30주 기준으로 420만2천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에 유학가서 박사학위를 받아온 대학의 시간강사들이 생활고를 비관하며 자살을 하거나 심지어 범죄행각에까지 내몰리는 세태가 되었다.

이같은 일이 불거지자 시간강사들의 처우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고정 월급을 주고 국민건강보험 혜택도 부여하는 방안이 추진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말 발표된 교육인적자원부의 2004년 교육예산에는 시간강사 처우개선을 위해 신규로 요청한 사업비 1천442억여원이 전액 삭감됐다.

철학을 전공한 지역대학의 한 시간강사는 "바닥에 떨어진 자긍심과 최저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경제난을 견디기 어렵다"며 "'시간강사'라는 호칭에 녹아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호칭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사학위 소지자 중 시간강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전업자가 전체의 3분의1에 이르는 만큼, 일정 요건을 갖춘 강사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예우를 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변상출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 위원장(영남대.독문학)은 "시간강사에게 교원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강의료를 현실화하는 것은 대학교육의 양질화와 직결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시간강사들이 대학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대구대의 경우 시간강사 담당 강좌율이 59.3%로 절반이 넘고, 영남대.경북대.대구한의대도 30~50%에 가까운 비율을 보이고 있다.

시간강사를 제외한 대학교육이란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시간강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시도들이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처럼 예견된 패배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연한 대학의 교원이요, 최고급 인력인 이들을 '시간강사'라는 이유만으로 언제까지 '노예'처럼 박대할 것인가.

조향래 사회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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