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발갛게 익어가는 마을. 대구에서 1시간 거리인 청도군 매전면 북지리에는 이방인들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자그마한 암자가 하나 있다.
수법사.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둥그스름한 산세의 효양산 한가운데에서 주지인 지수 스님과 비구니 스님들이 가을맞이에 한창이었다.
척박한 자갈땅에서 자라 씨없이 살이 오른 감은 옷을 홀라당 벗은 채 마당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하나 주워 입에 무니 졸깃졸깃한 곶감 맛이 들어 있었다.
뒷마당에서 농사지은 들깨도 한쪽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스님, 이건 김이 아닙니까?"
내리쬐는 가을 햇볕에 김 색깔이 더 짙어 보였다.
잣과 계핏잎으로 예쁘게 모양을 내 손을 대기도 조심스러웠다.
"김이 아니라 감태라는 것이지요. 옛날부터 자연산 감태는 맛과 향이 좋아 식욕을 돋우는 특별한 해조(海藻)로 최고급 음식 재료로 꼽힙니다".
지수 스님은 감태에 고추장 양념을 발라 말린 감태고추장부각이라고 설명했다.
조금 뜯어 먹어 보니 싸한 계피향과 함께 매콤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독특했다.
"산사에서는 겨울 석달을 나기 위해 가을 햇볕에 무엇이든지 말립니다.
무 등 채소는 말할 것도 없고 도토리묵까지 말리지요".
스님은 작대기처럼 단단하게 굳어 긁히면 상처가 날 정도인 건조 도토리묵으로 잡채를 만들어 먹으면 아주 별미라고 했다.
"당면을 물에 불리면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도토리묵도 손가락 길이만 하게 채를 썰어 말려 한 주머니씩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물에 불려 파란, 빨간 고추와 같이 볶아 잡채로 만들어 먹으면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아주 좋습니다".
스님은 강원도 원주에 천일기도를 갔다가 묵공장에 이같은 '건조 묵 볶음' 요리법을 알려준 이후 원주와 서울 호텔에서 고급 한식요리로 나올 정도라고 했다.
"산에서 사는 방법은 음식을 버리지 않고 가공 방법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먹다 남은 두부도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두부를 얇게 썰어 프라이팬에 바짝 구워 물기를 없앤 뒤 끓인 간장과 함께 졸여 놔두고 먹으면 오징어 씹는 것처럼 고소하고 쫄깃한 맛이 납니다".
스님은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에 좋고 요리를 잘 해먹는 방법이라고 했다.
가을 홍시나 누런 호박으로 가을 김치도 담가 먹을 수 있다고 했다.
홍시를 으깨 거른 물이나 누런 호박을 끓인 물을 찹쌀풀 대신 이용하는 것. 배추가 물러지게 만드는 설탕을 안 넣어도 되고 조미료를 안 써도 비타민이 풍부한 가을 김치가 된다.
"대대로 전해져 오는 사찰음식은 100% 자연식입니다.
간단하면서도 영양을 파괴하지 않는 조리법으로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특징입니다.
전통 한국음식은 찌는 요리가 대부분인데 현대식 퓨전 요리로 변하면서 기름에 튀기거나 굽는 요리가 많아져 위장을 혹사시키고 있습니다
순박하고 단조로운 음식이 바로 건강식인데 말입니다".
불교방송국 대구지부 문화센터에서 사찰음식 강의를 하고 있는 지수스님은 오는 25, 26일 대구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2003년 대구음식박람회'에 50가지의 사찰음식을 선보여 자연 조리법에 대한 관심을 높일 예정이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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