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단풍

입력 2003-10-21 08:53:12

지난 달 25일 설악산 정상에서 시작된 단풍이 하루 25km씩 남하해 오면서 대구.경북지역의 경우 다음 주쯤 절정을 이룰 것이라 한다.

가을까지 질금거린 비 탓에 올 단풍은 신통찮을 것으로 예보되기도 했지만 시월들어 날씨가 건조해지고 일교차도 커지면서 당초 예상보다는 빛깔이 고와 평년작은 될 거라 한다

봄에는 화신(花信)이 남에서 북으로 종종걸음치더니 가을엔 거꾸로 북에서 남으로 단풍소식이 달려온다.

참으로 공평한 대자연의 섭리다.

가을산이 붉게, 노랗게 물들어 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롭다.

차가운 산꼭대기에서부터 살금살금 능선을 타고 내려오다 어느 순간 사방 온 산이 불타듯 달아오른다.

마치 '서프라이즈 파티(Surprise Party)'처럼, 화들짝 놀라움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만산홍엽(萬山紅葉)이다.

질박한 전라도 사투리가 듬뿍 밴 영랑의 시구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중략)…'는 가을바람에 실려온 붉은 감잎에 뺨도 마음도 붉히는 누이의 마음이 따스한 체온으로 전해져와 우리 마음마저 불그레 물들인다.

봄날의 유록빛이나 여름 오후의 진록빛 이파리도 싱그럽지만 아무래도 가을 단풍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할 것 같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때를 중국인들은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나무의 한세상에서도 화려하게 단풍진 때가 그러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한국미에 남다른 혜안을 가졌던 혜곡 최순우도 "봄엔 신록과 꽃, 여름엔 풍성한 녹음, 가을엔 홍엽과 열매…"라고 가을단풍을 찬탄했었다.

단풍은 그 고운 빛깔에 감추어진 파토스(pathos: 비애감) 때문에 더 우리 마음을 끌어당기는지도 모른다.

낙엽이 되기 직전 마지막 온 힘을 짜낸 듯한 절명시(絶命詩) 같기도 하고, 만인에게 보내주는 이별의 가을편지 같기도 하고….

단풍을 두고 기후변화에 따라 잎 속의 엽록소가 분해되고 새로 안토시안이라는 색소가 생성되는데 따른 현상일 뿐이라고 자로 재듯 분석만 하는 건 그래서 참 메마르고 냉랭하다.

슬기로운 이들은 '봄꽃을 보고 인생의 가을을 생각한다'고 한다.

평범한 우리네야 그렇게 멀리까지는 볼 줄 모르지만 불타는 홍엽이 영원하지는 않음을, 결국엔 가지를 떠나 사라지고 마는 것임은 안다.

단풍처럼, 유한한 것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지는 가을이다.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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