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끼리 티격태격 싸움질하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새삼스런것도 없지만 가끔씩 어린애 골목싸움 같은 하찮은 시비거리로 아웅대거나 대변인까지 나선 입씨름을 보면 한심스러울때가 있다.
며칠전엔 의원 명패를 한글로 바꾸자는 쪽과 한자(漢字)명패 그대로 두자는 쪽으로 갈려 티격대더니 끝내 국회의사당 안에 한글 명패와 한자 명패 두가지가 갈라져 얹혀졌다.
도대체 국회의원 이름이 한글로 새겨져 있으면 어떻고 한자로 씌어있으면 의정활동하는데 뭐가 달라지는지 모르겠지만 명패글자 하나도 마음 맞춰가며 통일 못시키는 국회가 민족통일 국론통일은 무슨 재주로 따지고 의논해 내는지 한심해 보인 대목이다.
의사당 의원석 앞에 자기명패 얹어놓고 앉아있는 분들로서는 이름 석자가 자랑스럽고 그래서 한자로 쓸까 한글로 쓸까 이 궁리 저 궁리 해보는 재미도 쏠쏠찮을지 모르지만 제이름 귀한줄 알면 그에 합당할만큼의 이름값을 해야 이름도 같이 빛난다는 이치쯤은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SK 뒷돈먹은 얘기로 오금저린 의원이 한둘이 아닌 경황에다 제이름 석자가 검찰입에서 튀어나올까봐 전전긍긍 하는 판국에 명패 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지 않을 수없다.
이름의 역사를 뒤적여보면 고대 그리스인 경우 행동의 특성이나 생김새의 특징을 보고 지었다고 한다.
뚱뚱한 사람은 '푸스코' 어진 사람은 '메우에르 케네스', '여드름이 많으면 '술라'로 짓는 식이었다.
로마인들도 장남에게는 좋은 이름을 지어 줬으나 밑으로는 '퀸투스'(다섯째), '섹스투스'(여섯째), 옥타비우스(여덟째 자식) 같은 번호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들이 한국의 일부 국회의원 이름을 지어줬다면 무어라 지었을까. 싸우느라 코끝이 성할 날 없는 '개코투스'나 아예 번호도 없다는 '누메리우스'쯤일까.
우리나라도 삼국시대 이전까지는 '을파소' '온달' '개소문'식의 이름만을 썼다.
한때 우리 어린이들의 이름에도 순수한 우리말로 짓는 '멋'이 유행된 적이 있었다.
80년대 무렵이었던가 그때 한글쓰기 바람을 타고 지은 이름중에 '새벽'이니 '샛별' '보람' '이슬' '하늘' '슬기' 같은 예쁜 이름들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 그때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어린애처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법원에 개명(改名) 신청을 하는 사례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대구지법에 의뢰해본 통계로는 98년 이후 2003년 현재 계속 늘어나고 있고 수성구청과 중구청의 자료에 의하면 5년사이 3배 이상이다.
우리말 이름을 한자이름으로 다시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집안 족보의 돌림자가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자기만의 다른 이름으로 바꿔달라는 개명신청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젊은 세대의 이름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고 있고 법원 역시 그런 경우의 개명신청까지 허가해주는 추세에 있다.
그런 세태는 미국에도 마찬가지다.
전체 미국인 이름 1만개 가운데 3분의 2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없었던 이름들이라고 선데이 타임스가 보도했다.
'영자'나 '삼돌'이가 줄어들듯이 '존'이니 '톰'같은 이름은 한물 가고 이름보다는 이름 주인의 '이름값하기'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됐다.
어제 교황으로부터 '복자' 칭호를 받은 데레사 수녀의 이름이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이 데레사란 이름이 예뻐서가 아니라 그녀의 헌신과 봉사의 숭고함이 아름답고 존경스러워서다.
이름값이란 그런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명패에쓴 이름값을 제대로 하려면 명패 앞에 앉아 얼마만큼 높은 이상과 맑은 정치철학을 가지고 당리당략을 떠나 국가의 이익과 민족의 장래를 위한 양심적 의사결정을 했는가 자문했을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재신임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만약 노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이 국민의 존경과 사랑속에 기억되는 이름으로 남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노.무.현 으로 쓰나 盧武鉉으로 쓰나 다를바 없듯이 코드인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로들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않고 말실수와 전투적인 언론야당 대응자세를 못벗어나면 재신임하나 안하나, 재신임 받으나마나 결과는 마찬가지, 그의 이름은 사랑과 존경의 이름으로는 기억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막상 대통령 해보니 그거 아무나 하는게 아니더라. 경제 더 나빠지기전에, 민심 더 떠나기전에, 측근비리 더 터지기전에 나라의 장래를 위해 지금 바로 깨끗이 물러나겠다.
프로급 지도자 뽑아서 다시 시작해달라'고 한다면 그의 이름은 대인(大人)의 이름으로 길이 남을지도 모른다.
어느 지식인 독자가 한 얘기다.
이래저래 이름이란 짓기보다는 이름값 지키기가 더 어려운가 보다.
'개혁정부''386''코드''사랑모임'....그럴듯한 이름들이 이름값 제대로 하는 날을 기다려 본다.
김정길〈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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