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영화보기-'영매'

입력 2003-10-16 09:08:37

'영매'는 선뜻 먹고싶지는 않지만, 먹고 나면 꺼이꺼이 목이 메는 굿 음식 같은 영화다.

피 속에 흐르는 한국인 특유의 '한(恨)의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서울에서는 영화평론가가 이성을 잃고(?) 눈물을 줄줄 흘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굿은 해원(解怨)의 몸부림이다.

살아 풀지 못한 한을 죽어 푸는 산자의 한풀이다.

그 제사장이 바로 영매, 이른바 무당이다.

귀신이 들락거리는 바람에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고, 굿을 하지 않으면 몸이 아파 할 수 없이 판을 벌여야 하는 기구한 운명의 사람들이다.

평생 남의 고통을 짊어지고, 신들린 이유로 천시 받으며 살아야 했다.

박기복 감독의 '영매-산자와 죽은자의 화해'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무당들의 한과 한숨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다시 태어나면… 예쁘게 태어나… 노래부르는 가수가 되고 싶어". 깊게 파인 주름에서 그동안 풀지 못한 그들의 설움을 짐작하게 한다.

'영매'는 3년에 걸쳐 경북 포항의 별신굿, 전남 진도의 씻김굿, 서울의 한양굿과 인천의 황해도굿 등 전국의 굿과 무당들을 담담한 눈으로 채집한 작품이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고, 돼지의 피로 얼굴을 씻으며 작두를 타는 굿판이 섬뜩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도 삶의 무게와 한 서린 신내림으로 고통받고, 또 살고, 그리고 죽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평생팔순을 바라보는 당골(세습무) 채정례. 악사인 남편과 함께 아직도 신을 모시고 있다.

평생 천시 받아 8남매를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씻김굿으로 진도를 뒤흔든 엄마를 따라 네 딸이 모두 무당의 길에 들어섰다.

지금은 중풍 걸린 언니와 둘만 남았다.

그나마 언니가 죽고, 동생은 언니를 위해 필생의 씻김굿을 준비한다.

요즘 같이 영악(?)한 관객들을 울리기란 쉽지 않다.

'영매'가 관객의 마음을 흔든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의 힘이다.

카메라의 시선이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냉정할 정도로 담담하다.

그럼에도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감독은 확실히 그들 무당 속에 빠진 것 같다.

'영매'는 지금까지 개봉된 한국 다큐멘터리로는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서울의 좌석 점유율은 49.7%. 다큐멘터리로는 유례가 없는 기록이다.

영화배우 설경구가 무료로 내레이터를 맡았다.

예술영화전용관이 아니었다면 대구에 개봉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달착지근한 드라마에 익숙한 눈을 한판 '다큐멘터리 씻김굿'으로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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