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특별구'(3)-고소득층 "딴곳엔 못살아"

입력 2003-10-11 11:22:08

대구 달서구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 이모(44)씨. 이씨는 친구 등과 모임을 가진 후에는 항상 '수성구로 이사' 문제를 놓고 고민 한다.

의대 동문 대부분이 수성구에 살고 있어 만나기가 쉽잖은데다 부인도 생활 여건을 들먹이며 평소 이사를 주장해 왔기 때문. 특히 지난주 다녀온 고교 동문회에서 '비(非)수성구지역 고교들의 의대 진학률이 갈수록 떨어진다'란 이야기를 듣고는 이사간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몇년사이 교육여건과 집값에서 다른 지역과 격차를 보이며 '특별구'로까지 불리고 있는 수성구는 얼마나 다를까. 일단 전국 집값 상승의 진원지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와 비교할때 아주 비슷해보인다.

'우수한 교육여건-수요 급증-집값 상승-확산'이 되풀이되면서 이른바 고소득층을 끊임없이 불러모으고 있다.

몇가지 지표만 따져보더라도 '수성특별구'는 확연히 타지역과 차이가 난다.

2002년말 기준 대구시내 60평이 넘는 아파트는 모두 2천68가구. 이 가운데 57%인 1천187가구가 수성구에 밀집해있다.

실 거래가는 따지지 않더라도 이같은 수치는 달서구(396가구)의 5배, 남구(246가구)의 8배가 넘는다.

60평 이상이 한채도 없는 달성군이나 서구(12가구)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더욱이 올들어 수성구에서 분양된 60평형 이상 아파트만 136가구에 달해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또 대구은행의 경우 대구 시내 점포 131곳 가운데 25곳이 수성구에 위치, 8개 구.군 가운데 가장 많으며 가입조건을 예금액 1억원 이상 또는 전문직 종사자로 제한하고 있는 VIP클럽도 전체 3곳 가운데 2곳이 수성구에 개설돼 있다.

백화점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 대구 한 백화점의 경우 백화점 신용카드로 연간 1천만원 이상 구매한 고객 가운데 약 40%가 수성구 주민으로 조사됐다.

모 건설업체 마케팅 관계자는 "변호사의 80%, 교수는 60%, 상장기업 기업주는 90% 정도가 수성구 주민일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시를 비롯해 법원.검찰.경찰청 등 주요 기관 관사도 거의 수성구에 자리잡고 있어 일부 수성구 중.고교에선 한 학급 학생의 절반 이상이 부모가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이거나 고위 공직자일 정도라는 말까지 나돈다.

의사 김모(34.수성구 지산동)씨는 "같은 아파트단지에 사는 대학 선배.동기가 여럿 된다"며 "칠곡.청도 등지에 개업, 출퇴근시간이 1시간이 넘으면서도 수성구에 사는 친구들도 꽤 있다"고 귀띔했다.

사교육 환경도 수성구 열풍을 부채질 하고 있다.

영어 학원을 운영하는 정모(43)씨는 "요즘 유행하는 체인 학원의 경우 성공하려면 우선 지산.범물 지역 등에 1호점을 낸뒤 유명세를 타야 다른 지역에 2호점을 낼 수 있다"며 "공교육뿐 아니라 사교육에 있어서도 차이가 상당하다"고 했다.

실제 이 지역 유명 학원의 경우 수강생의 20~30%가 타지역에서 찾아오는 학생들이 차지한다.

모 학원 강사 최모(36.여)씨는 "같은 체인점이라 하더라도 수성구 지역 학원 강사의 월급이 높은 경우가 많다"며 "일부 인기있는 고액 과외 교사는 이동 시간 등을 이유로 타 지역으로는 과외를 나가지 않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결국 서울이 한국 사회 전체의 경제.사회.문화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듯 수성구는 대구의 또다른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블랙홀'이 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타지역에 살고 있는 대다수 시민들에게는 이러한 현상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북구 칠곡에 살고 있는 공무원 김모(39)씨는 "솔직히 올초까지만해도 수성구에 민감하지 않았지만 집값이 폭등한 이후론 동료들 사이에서 수성구 이야기만 나오면 왠지 우울해 진다"고 했다.

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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