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적 업적을 찬양하고, 역사적.국가적.종교적.전설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주제를 고상한 문체로 다룬 이야기체의 장시가 '서사시(敍事詩)'이다.
그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영웅시대의 전설과 구전으로 이뤄진 '전통적 서사시'와 세련된 시인들이 전통적 서사시 형태를 특수한 문학적.사상적 목적에 적용해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문학적 서사시'가 그것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전자로 볼 수 있고,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와 밀턴의 '실낙원'은 후자의 범주에 들어가는 서사시이다.
▲가장 오래된 서사시는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로 알려지고 있지만, 최초의 문학적 서사시는 BC 900~750년에 완성된 호메로스의 시로 꼽힌다.
우리의 서사시는 고구려 건국과 관련해 해모수.동명왕.유리왕 3대의 이야기를 다룬 이규보의 '동명왕편'이 그 효시다.
현대로 넘어오면서는 민중들의 삶을 조명하는 변모를 보이기도 했는데, 1967년에 발표된 신동엽의 '금강'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동순(李東洵, 영남대 교수.국문학)씨가 5부작 10권의 방대한 규모의 서사시 '홍범도(洪範圖)'를 내놓아 이 장르의 장을 새롭게 열었다.
백두산 포수 출신의 항일의병장 홍범도(1868~1943) 장군의 생애와 당시 의병들의 모습 등을 생생하게 재현한 이 국내 최대 규모의 서사시는 신동엽의 '금강' 이후 한국 서사시의 계보를 잇고 있으며, 20여년의 집필 끝에 완성됐다.
▲이제 시로 부활한 홍범도 장군은 평양에서 태어나 일제 침략으로 포수들의 생계가 위협받자 항일에 나섰던 인물이다.
그는 1910년 일제 강점 이후 만주 일대에서 평생 독립운동과 후진 양성에 몸을 던졌던 무장 항일투사였다.
여러 항일전투를 주도했으며, 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 등 굵직한 독립투쟁에서 승전을 이끌어냈음에도 천민 출신이라는 계급 갈등, 사상 대립 등으로 왜곡되고 평가절하돼 역사의 그늘에 묻혔다가 뒤늦게 빛을 보게 된 셈이다.
▲이 서사시는 일본군들이 이름만 들어도 도망갈 정도로 용맹을 떨쳤던 홍범도 장군의 업적과 생애를 집중적으로 조명, 근대사에 가려졌던 진실을 되찾은 '역사의 복원'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다른 한편으로는 유장하고 감동적인 흐름을 거느리면서 그 현장감들을 시어 하나하나에 함축적으로 되살려냈다는 점에서 문학적 서사시의 괄목할만한 개가다.
내일 영남대 국제관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 이 교수의 '민족사의 자존심을 되살리는 계기를 제공하고 싶었다'는 소회도 깊이 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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