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은 아직 콩나물 교실

입력 2003-10-10 09:01:01

'초.중.고는 35명, 유치원은 40명'

각급 학교의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학급당 학생수 감소 정책이 꾸준히 추진되면서 내년에는 전국 모든 초.중.고의 학급당 인원이 35명 이하로 줄어들 예정이다.

그러나 대구시내 유치원 교실의 현실은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구시내 유치원의 학급당 원아 수는 35~40명. 보조교사가 있다고 하지만 담임교사 한 명이 이 정도의 유아들을 제대로 가르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법적인 문제는 없다.

현행법상 권장 인원은 학급당 3세아 20명, 4세아 28명, 5세아 33명, 혼합반 28명이지만 2000년 이전에 인가받은 유치원은 학급당 40명까지 편성할 수 있도록 돼 있는 것.

대구의 유치원은 공.사립을 합쳐 268개, 이 중 261개가 2000년 이전에 설립인가를 받았다.

2000년 이전 인가받은 사립유치원은 대부분 40명 안팎으로 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유아교사들은 "학급당 인원을 30명 이하로 낮춰야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아들은 저마다 발달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연령이 낮을수록 교사대 유아 비율이 낮아야 한다는 것. 교사 혼자서 40명 개개인의 잠재능력을 발견하고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유아들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다른 사람, 특히 교사에게 말하고 싶어합니다.

또 교사가 자기 말에 귀기울여 주기를 원하죠. 그렇지만 한 유아가 의견을 말하는 동안 여기 저기서 다른 유아가 말을 합니다.

어느 한쪽도 제대로 들어줄 수 없는 때가 많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유아들의 활동 참여율이 낮아지고 교사들이 어쩔 수 없이 방관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말한다.

올해부터 학급당 인원을 20명으로 줄인 한 유치원은 "인원을 줄인 후 훨씬 효과적으로 유아들을 지도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 유치원 김모 교사는 "예전엔 종일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한 원아도 있었지만 원아 수를 줄인 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유치원의 학급당 원아 수를 줄이는데는 필연적으로 교육비 인상 문제가 연결된다.

유치원 관계자들은 "학급당 원아 수를 줄이면 교사 증원, 시설이나 기자재 확충 등 비용 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에 교육비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곧 유치원 경영난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상당수 유아들이 교육비가 비교적 적게 드는, 미술.영어.음악 등을 가르치는 어린이집형 종합학원에 옮아갈 수 있다는 것. 학부모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도 자녀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같은 통합교육기관 대신 지식교육기관(어린이집 형 종합학원)으로 보내는 형편이다.

이에 반해 원아수 감소가 반드시 상당한 교육비 인상을 야기하지는 않는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한 유아교육 전문가는 "규모가 매우 영세한 유치원을 제외한다면 학급당 인원을 30명으로 줄인다고 해도 교육비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학급당 인원을 20명으로 줄일 경우 현재 15만~18만원인 교육비가 8, 9만원 정도 오를 것"이라고 했다.

올해 초 학급당 인원을 20명으로 줄인 대구시내 한 유치원의 경우는 월 7, 8만원 정도 교육비를 인상했다.

결국 유치원 학급당 인원 수 감소는 학부모들이 월 7, 8만원 정도의 추가 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달렸다.

추가 부담을 안고 더 나은 환경을 택할 것인가, 열악한 교육환경을 그대로 둘 것인가 부모들이 판단해야 할 문제다.

교육당국이 유치원 교육여건 개선에 얼마나 적극성을 갖느냐도 중요하다.

한 유아교사는 "유치원 운영자들이 경영난, 비용부담 등을 이유로 미루고 있는 상황에선 학부모들의 교육환경 개선 요구와 교육청의 적극적인 지도가 절실하다"고 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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