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km 걸어 출퇴근하는 윤수국(59)씨

입력 2003-10-08 15:03:48

29년째 대구에서 왜관까지 통근하는 윤수국(59.왜관 순심고교사.대구시 수성구 수성4가 우방사랑마을 103동 707호 )씨. 윤 교사는 운전면허를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차도 없다.

운전면허를 가질 수 없는 신체적 결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차를 살 형편이 못되어서도 아니다.

그냥 필요성을 못 느껴서다.

윤 교사는 하루 두 번 기차를 탄다.

아침에는 대구역에서 왜관역까지, 수업이 끝나면 왜관역에서 대구역까지. 그가 출.퇴근을 하면서 이용하는 교통편은 그게 전부다.

집이 대구역에서, 학교가 왜관역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

하지만 대구역은 그의 집에서 4㎞, 학교는 왜관역에서 1㎞ 정도 떨어져 있다.

보통 사람 걸음으로 각각 1시간,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그는 출·퇴근을 위해 하루에 두 번씩 이 길을 걷는다.

그뿐만 아니다.

집에 도착해 9년째 병치레를 하고 있는 아내(58)를 대신해 설거지를 하고 나면 그는 또 신천변으로 나간다.

그는 걸으면서 자신이 추월하는 사람 수를 센다.

수성교에서 출발해 상동교에 도착할 때까지.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다.

워낙 오래 그리고 자주 걷다보니 그의 보행 속도는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다.

요즘은 시간당 평균 6㎞를 걸을 수 있다.

그도 아내가 위급해 병원에 가야할 때는 택시나 아들의 승용차를 탄다.

하지만 진료를 마치고 돌아올 땐 아내와 딸만 차를 태워 보내고 자신은 집까지 걷는다.

동료 교사들과 회식하러 갈 때도, 약속 장소에 갈 때도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는 걷는 데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날도, 자동차 매연이 코를 찌르는 도심에서도 걷는다.

비가 와도 좋단다.

다른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걷고 달린다지만 그가 걷는 이유는 그것도 아니다.

"기차 아닌 다른 차를 타면 구속되는 것 같아 답답해요. 걸으면 즐겁고요. 무엇보다 자유로워요. 많은 것을 볼 수도 있고요. 쉬고 싶으면 쉬고, 가고 싶을 때 가고…".

윤 교사 스스로도 유난히 걷는 데 집착하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비칠 수 있다고 시인한다.

"제가 왜관읍내에서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동료들을 보면 까닭없이 슬프듯이 그들도 저를 이상하게 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몸을 혹사시킨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

걸을 때 신는 운동화가 4켤레나 된다는 그는 요즘 들어 좋은 운동화를 보면 부쩍 탐이 난다고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는데 요즘에는 하루 종일 서서 수업한 뒤에 걸어서 집에 오면 다리도 아픕디다.

잠도 안와요. 무릎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무리하지 말라고 해요. 좋은 운동화를 신으면 좀 나을까 싶어서지요. 하지만 10만원이 넘어가는 것은 살 엄두가 안나데요".

그는 국내에서 걷기대회가 열린다면 모든 일을 제쳐놓고 참가한다.

작년과 올해 2년 동안 참가한 대회만도 20개가 넘는다.

그가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대회는 지난해 11월 참가했던 제1회 신라의 달밤 걷기대회. "국내 걷기대회 코스 중 제일 긴 거리인 165리(66㎞)를 오후 6시쯤 출발해 다음날 낮까지 무박2일로 걷는 대회인데 300여명의 참가자 중 10분의 1정도만 완주했습니다.

저도 완주자 중의 한 명이었고요. 암곡마을에서 본 달빛과 별빛, 토함산의 일출 등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습니다".

대부분 교사들이 꿈꾸는 교감.교장 승진에도 그는 무관심하다.

"몸담고 있는 학교의 교장 선생이 제보다 10년 후배지만 하나도 안부럽습니다.

교감으로라도 승진하면 수업에 못들어가잖아요. 직접 학생들을 접할 수 없게 되는 날, 그날은 바로 저의 퇴직일이 될 것입니다".

올해는 11일부터 열리는 이 대회에 제자 20여명과 함께 참석할 꿈에 부풀어 있는 윤 교사의 바람은 단 하나다.

"아내가 병석에서 빨리 일어나 저와 함께 손잡고 걷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송회선기자 s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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